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채윤 Jan 26. 2024

꼬인 인생을 위로해 준 양평해장국

해장국 한 그릇으로 다시 용기 내어 시작했듯/위로의 해장국

 친구들끼리 술을 거하게 마시다 보면 가끔은 서로에게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때론 욕설이 오가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잠들어 버리거나 좀체 몸을 추스르지 못하기도 한다. 까르르 웃음 쏟아내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이런 걸 바로 술. 주. 정이라고 한다. 만에 하나 주먹이 오고 가면 술자리가 사건 현장이 되는 참사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일이 당연히 없어야겠지만 친구들과 수다가 말실수로 번져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기분 좋게 만나서 각자 스트레스를 풀어보려다 벌어지는 해프닝인 것이다. 이럴 때 꼭 해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날 서로의 실수와 오해를 푸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해장은 해소가 되어가나 보다. 이렇게 술꾼 멤버들이 다시 해장국 멤버가 되고,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것이다.    

 

 어떤 이는 해장국을 생각하면 빨간색, 지옥 불, 새벽 5시, 콩나물, 커피, 아이스크림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열해 보니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중 독특했던 키워드로 City light라는 노래가 떠오른다고 한 사람이 있다. 그가 취준생 때 술을 마실 때면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상태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 해 준 게 바로 해장국이라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의 이야기는 도시의 불빛처럼'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백 퍼센트 공감은 못하지만 그때의 혼란스러움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그런 시절을 건너고 있거나 건너왔을 테니 말이다. 술에 취한 듯한 인생의 혼란스러움을 해장국을 먹으면서 따뜻한 위로를 얻었으리라 짐작된다.


 비슷한 키워드로 해장국은 ’ 귀국행 비행기 같다 ‘라는 말도 있었다. 신나고 즐거운 여행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만, 집으로 향한다는 편안함을 주는 귀국행 비행기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즐겁게 술을 마시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해장국을 먹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생뚱맞게 들렸는데 나름 회귀본능과 같은 인간의 심리를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막냇동생은 한때 나랑 함께 식당을 운영할 정도로 요리 실력도 좋고 미각도 남다르다. 더군다나 우리 4남매 중에 제일 주량도 세고, 음식을 많이 먹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맛집도 해장국 위주로 꿰고 있다. 내가 처음 해장국과 관련된 글을 쓰고 싶다고 하니 두 손 두 발 들고 찬성하며 자신의 연차까지 빼서라도 나랑 해장국 투어도 함께 해주겠다고 한다.


물론 비용은 내가 지불하겠지. 일석 이조를 노린 게 틀림없다.


 웃자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니 고맙고 또 용기가 생겼다. 내심 해장국에 나만 진심이면 어쩌지 싶은 마음도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동생의 해장국 스토리를 듣기 시작했다.


 동생이 처음 해장국을 먹은 곳은 양평 해장국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연이 좀 씁쓸하고 짠하다. 동생은 한때 연극을 전공했었고, 꿈과 희망을 품고 서울살이를 했었다. 그때 이야기인즉슨 서울에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었다. 때마침 대학시절 알고 지내던 극단 선배가 외국으로 나가면서 자기가 살던 곳을 전전세 형태로 저렴하게 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던 어느 날 집세 너무 많이 밀렸다면서 집주인이 찾아왔단다.      

 짐작하겠지만 그렇게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동생도 믿고 따랐던 선배였는데 허무하고 허탈해서 처음에는 화도 나질 않았다고 한다. 이미 연락은 두절되고 따질 곳도 없어진 마당에 갑작스레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막막하기만 했다고 한다. 울컥하고 속상한 마음에 다른 선배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바로 나오라고 했단다. 그렇게 그 선배를 따라나선 곳이 바로 내장이 잔뜩 들어간 내장탕이 유명한 양평 해장국집이었단다.  

    

 그야말로 눈물의 해장국이었을 것이다. 그 선배는 감사하게도 선뜻 본인과 함께 지내자고 제안했단다. 덕분에 그다음 날 바로 짐을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 한심한 한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세상 아량 넓은 한 인간에게서 치유받은 것이다. 아주 오래된 얘기라지만 동생은 아직도 씁쓸해 보였다. 그 당시 동생의 입장을 생각하자니 나 또한 화가 치솟았다.      


 하여튼 동생은 다시 용기를 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오디션도 보고 열심히 극단 생활을 했다. 그때 그 선배가 사주었던 얼큰한 해장국 한 그릇과 따뜻한 마음이 다시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그 선배와 아직 잘 지내고 있고, 또 물론 동생은 이제 평범한 직장인이다. 내가 물론이라 하는 건 동생이 유명해졌으면 여기에 소개도 못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동생이 그 추억의 장소로 다시 해장국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조만간 날을 잡아 봐야겠다. 그 선배만큼의 감동은 못 주겠지만 큰누나로서 인생 선배로서 또 한 번 잘 살고 있다고 따뜻한 위로를 함께 전해주리라.


 어느 뇌과학자가 “인생이 꼬이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능력치를 열어주는 것이다"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동생의 꼬였던 인생도 해장국 한 그릇으로 다시 용기 내어 시작했듯이 이글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새로운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피로를 풀어준 나의 소울푸드 콩나물해장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