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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Feb 11. 2024

요리대회 금상을 안겨준 추어탕

추어탕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음식이다/공감의 해장국

공감의 해장국

 추어탕을 생각하면 미꾸라지가 떠오른다. 주재료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미꾸라지에 대한 나만의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이지 나만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에피소드다. 내가 어릴 적의 어른들은 많은 민간요법을 알고 있었고, 또 많이들 따라 하셨다. 그중에 하나가 미꾸라지를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아이가 침을 안 흘린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에게 미꾸라지를 잡아 오라는 오더를 내리셨다. 둘째 동생이 침을 질질 흘린다고 걱정이 많으셨던 엄마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미꾸라지 잡기는 나에게 즐거운 놀이었었는데 그날 이후로 노동이 되었다. 미끄덩거리는 미꾸라지를 잡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나름 할당량을 채우려다 보니 고된 노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K-장녀의 비애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엄마는 내가 잡아 온 미꾸라지를 어린 동생에게 구워 주셨고, 야금야금 잘도 받아먹던 동생이 얄밉기도 했다.     


 이런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이 지금은 나만의 보양식 일 순위이다. 사실 추어탕을 먹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추어탕을 보양식 중에 보양식으로 꼽는 이유는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한다.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진로에 도전하기 위해 나는 만학도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늘 조바심을 내어야만 했다. 조카뻘 되는 한참 어린 친구들에게 뒤처진 시간을 메꿔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방학에 새로운 걸 배워보겠다고 2달 동안 고시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아침 8시에 나가 저녁 6시에 돌아오는 일과였다. 하루종일 초콜릿과 설탕공예를 배웠다. 나름 집중력과 체력에 필요했던 모양이었는지 하루하루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몸살기에 겨우 고시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대로 들어가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면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 눈에 띈 게 추어탕집이었다.


 평소 잘 먹지 않던 음식이었지만 왠지 그날은 꼭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영양 가득한 한 그릇을 비워야만 내가 살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열이 올라 뜨거워진 몸으로 들어선 추어탕 집의 열기에 점점 더 지쳐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추어탕 뚝배기에 무턱대고 공깃밥 한 그릇을 다 말아버렸다. 그렇게 말은 추어탕을 한 입 넣는 순간 처음으로 밥알이 모래 같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한 뚝배기를 다 해치웠다.      


 사실 그때의 추어탕 맛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추어탕까지 담아서 더욱더 무거워진 몸뚱이를 끌고 고시원으로 가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사실 언제 어떻게 쓰러졌는지 조차도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그대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런데 전날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내가 너무도 말짱하게 일어나 버렸다. 그때 이후로 나는 몸이 피곤하거나 피곤할 일이 생기면 꼭 추어탕을 먹는다. 일종의 나만의 루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나의 추어탕 사랑은 함께 공부했던 조카뻘 동기생들에게도 유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시험 기간마다 매번 추어탕을 먹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의식 같은 이 행위에 많은 동기들이 함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학 시절을 추억할 때 나오는 얘기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추어탕 이야기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때 그 추어탕집의 단골손님이다. 내가 올 수 있는 한 이 집이 계속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주 가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이 추어탕집에 오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들려주신 추억이 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우리 부모님들은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아버지에게 친척 어르신이 사주신 이 한 그릇의 추어탕이 두고두고 생각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 시절에 추어탕은 나름 사치의 음식이었고, 그 이후로 한동안 먹고 싶었지만 사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추어탕집에 올 때마다 포장한 추어탕을 꼭 들고 간다.     

 

 추어탕은 해장용으로도 완벽하다. 단백질이 한가득한 추어탕을 먹고 나면 땀이 쭈욱 나면서 알코올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술 마시느라 바닥난 체력을 보충하기에도 추어탕은 안성맞춤인 것이다. 이래저래 나의 추어탕 사랑은 아무래도 영원할 것 같다.     


 누군가 아프면 먹을만한 음식으로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대체로 죽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예상대로 나는 단연코 추어탕을 추천한다. 국물이 까슬거리고 우거지가 좀 걸리적거리긴 해도 이 한 그릇이 죽보다 더 많은 영양과 빠른 회복을 도울 거라 생각된다. 추어탕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음식이다. 보양식도 되고 해장식도 되니 말이다.      


 2023년에 30년 지기 친구의 권유로 함께 남원 이색 추어 요리대회에 나갔다. 같은 지역에 살아도 제대로 대화할 시간 없던 우리라 이참에 긴 데이트를 할 겸 나가기로 했다. 대회 도중 인터뷰에도 친구 따라 강남이 아닌 남원에 왔다고 했을 정도로 친구와의 장시간 데이트가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얼떨결에 출품한 추어 버거가 금상을 받아서 제대로 추억을 쌓았다. 상품성 있는 제품을 위주로 본다고 했고, 불특정 대상의 시식단의 평가 점수와 전문가분들의 점수로 순위를 정했다니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또 추어탕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얻었다.    

 

 오랜만에 남원에 왔으니 당연히 추어탕도 먹었다. 가장 유명하다는 곳을 먼저 방문했는데 깔끔한 상차림에 기대가 되었으나 맛은 아쉬움이 남았다. 추어탕이라기보다 우거지 해장국에 가까운 맛이었고 반찬도 대체로 짠 편이었다. 추어탕 먹을 때 옵션으로 먹는 추어튀김도 가격 대비 아쉬운 맛이었다.  

    

 대회 시상식 때문에 다음 날 또 남원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날은 현지인에게 직접 추천을 받은 추어탕집으로 갔다. 주차장에서 식당 입구로 들어가는데 추어탕을 끓이는 큰 솥이 걸려있었고, 주인아주머니가 본인 키 절반만 한 나무 주걱으로 추어탕을 저어가며 끓이고 있었다. 이걸 보는 것만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위풍당당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정성스레 추어탕을 젓고 계셨으니 이미 맛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현지인의 추천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깔끔하고 간도 잘 맞는 밑반찬은 리필을 해서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이곳의 추어튀김은 깻잎으로 감싸거나, 감자를 함께 넣은 게 아니라 순수 미꾸라지를 정말 바삭바삭하게 튀겨서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먹을 때는 너무 맛있게 먹느라 몰랐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입안에 맴도는 젠피 향이 조금 거슬렸다. 먹으면서 그래도 전주의 추어탕집이 내 입맛에는 더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 젠피 향의 차이였나 보다. 남원의 추어탕은 기본적으로 젠피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전주는 옵션으로 젠피를 비치해 두는 경우가 더 많다.      

 생각해 보니 밑반찬도 조금 달랐다. 남원은 콩나물을 밑반찬으로 주고 부추무침을 주거나 부추를 탕에 올려주었다. 전주는 겉절이김치에 나물 반찬, 그리고 부추는 생으로 접시 채 내어주고 리필도 해준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취향에 따라 남원에서도 전주에서도 가까운 거리에서 추어탕을 먹을 수 있으니 이 또한 나에겐 작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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