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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Feb 14. 2024

비가 오면 생각나는 도가니탕

생각해 보니 이토록 훌륭한 도가니탕이었다는 건가/공감의 해장국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라는 노래가사처럼 나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도가니탕이다. 또 스산한 찬 바람이 불 때도 마찬가지다. 날이 습하거나 찬 바람이 불 때면 시큰거리는 뼈마디가 ‘날 좀 챙겨줘’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이런 날에는 주변 지인들도 가끔 ‘아이고! 도가니야‘를 외칠 때가 있다. 이제 이런 외마디를 자주 외쳐야 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도가니탕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도가니가 안 좋으니 도가니탕이나 먹으러 가자고 얘기하고는 한다. 나이 들어 아픈 곳이 늘어가는 건 속상하지만 그럴 때 핑계 대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같다.     


  도가니는 소의 도가니를 말하며 무릎 뒤 오목하게 들어간 부위이다. 이 부위에는 결합 조직인 콜라겐과 엘라스틴이 많은 부위이다. 사실 관절이 있는 곳이면 마찬가지로 콜라겐 많이 들어있다. 사람들이 무릎의 연골이 닳아져서 관절이 아프기 시작하니 소의 도가니를 먹으면 이 연골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먹기 시작한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MBTI 관점에서 이성적인 T의 관점으로 말하면 도가니탕의 콜라겐이 흡수되어 무릎의 연골로 직행하지는 못한다. 또 콜라겐이 흡수된다 한들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과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백질함량이 높으니 보양식으로는 충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너무 기대를 무너뜨리는 얘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과학적인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이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고, 즐겁게 먹으면 몸에 좋으니 그러면 된 거지라고 생각한다. 그 유명한 플라세보 효과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뽀얀 국물에 송송 썬 대파를 듬뿍 띄우고, 후춧가루도 취향껏 뿌린 다음 한 숟가락 ’쓰읍’하고 먹고 나면 벌써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한 번은 친구랑 서울의 오래된 노포의 도가니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날씨도 스산하니 도가니에 바람도 들어오고 도가니탕 먹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노포의 명성도 명성이거니와 맛이 좋다 보니 영업 전부터 줄을 서서 대기해야만 했다. 30분가량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친구의 말 때문에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다. 바로 “도가니탕 먹으려다 도가니 나가겠다”라고 말이다. 주변에 있던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일행도 함께 웃으시며 맞장구를 쳐주셨다. 얼결에 우리 팀과 아주머니 팀은 그 자리에서 절친 모드가 되어버렸다.     


 기다림 끝에 들어간 식당에는 대기 순으로 번호가 있어서 테이블도 정해진 곳에만 앉아야 했다. 때마침 같이 농담을 주고받았던 아주머니들도 옆 테이블에 배정이 되었다. 도가니탕을 주문하고 서로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쌀쌀한 찬 바람을 맞고 들어와서인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풍겨오는 푹 고아진 고기 육수 냄새 때문인지 테이블에 앉자마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대기인원수를 파악해 놓아서였는지 도가니탕은 식당 안의 손님들에게 빠르게 배식되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흡사 전투태세로 도가니탕을 먹기 시작했다. 밖에서도 웃음 나오게 했던 친구는 한 수저를 떠먹자마자 “이제 도가니가 펴지는 느낌이다”라며 또 한 번 우리 일행과 옆 테이블의 일행까지 웃게 만들어줬다.


 그렇게 즐겁게 웃으며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오는데 아까 그 친구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 친구의 손에는 부모님께 드릴 도가니탕이 손에 들려있었다. 항상 재밌기만 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효심도 깊은 친구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사실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시던 아주머니 일행분들이 나른히 도가니탕을 한 그릇씩 포장해서 가셨다. 그 모습을 보고 차마 부모님을 외면할 수 없기도 했을 것 같다. 사실 나도 일정만 아니면 부모님께 포장해서 가져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맛집의 명성의 무색하지 않게 이 집의 도가니탕의 도가니는 쫀득쫀득한 젤리 같은 식감과 고기 냄새 말고는 잡내 하나 나지 않는 뽀얗고 진한 국물이었다. 가끔 씹히는 고기마저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어서 갑자기 갈비탕을 파셔도 맛있게 잘 만드시겠다는 생각도 했다.


 갑자기 밀려오는 직업 정신으로 이 집 맛의 비법은 무엇일까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노포 답지 않게 정갈한 내부와 얼핏 보이는 주방도 깔끔했다. 맛으로 보나 메뉴판을 보나 식재료도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아무리 누린내나 잡내를 없애는 비법이 있다고 해도 신선한 재료의 맛만큼은 따라갈 수 없다. 무엇보다 시종일관 웃으며 손님을 대하시는 사장님의 진심이 바로 이 맛을 내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     


 도가니탕의 콜라겐이 몸에 흡수가 되든 안 되든 맛있는 시간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역할을 다한 것이다. 비슷한 음식으로 우족탕과 꼬리곰탕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해장국 겸용이 아닌 식사 느낌이 더 나는 건 사실이다.

 

 전날 얼큰한 안주를 먹었거나, 되려 안주를 부실하게 먹었을 때 구수하고 진한 도가니탕은 해장국이 되어 또 훌륭한 역할을 수행해 낼 것이다.     


 도가니가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해주었듯 구수한 이 도가니탕 한 그릇으로 나의 몸과 정신도 다시 잘 연결되기를 바라본다.


생각해 보니 이토록 훌륭한 도가니탕이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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