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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Oct 07. 2024

잘 두들긴 북어로 끓여야 제맛인 북어해장국

공감의 해장국

 황태는 강원도 인제가 최대의 생산지라고 한다. 당연히 황태해장국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거리상의 이유로 제대로 맛본 적이 없지만 강원도에 가서 제대로 된 황태해장국을 꼭 먹어보고 싶다.


 사실 나는 요리를 제대로 배우기 전에는 황태, 명태, 생태, 동태가 헷갈렸다. 참고로 명태를 갓 잡아 얼리지 않은 것을 생태라 하고, 생태를 얼린 것이 동태라 한다. 명태를 겨울 차가운 바닷바람에 얼리고 녹기를 수차례 반복시킨 것이 황태라고 한다. 이렇게 말린 황태는 명태보다 단백질량이 2배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북엇국은 바로 황태와 북어로 만든 국을 말하는 것이다. 북어는 숙취 해소에 탁월한 식재료 중 하나이다. 논문에서도 북어의 혈중알코올농도 분해 속도가 빠르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명태는 우리나라의 국민생선이라고 불릴 정도로 값이 싸고 많이 잡혔었다. 조선 시대 중기부터 먹기 시작했던 명태는 조선 말기에는 어획량이 최고 많고 값도 저렴했다고 한다. <한국의 음식문화와 스토리텔링>

 명태는 명태탕, 황태찜, 동태 전, 북어포, 북어구이 등의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다. 이렇게 다양한 메뉴로 즐겨 먹던 명태는 관혼상제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생선이다.      


 생태의 내장은 젓갈을 담그면 창난젓이 되고, 알로 담그면 명란젓이 되고, 아가미로 담그면 아가미젓이 된다. 또 머리와 껍질은 육수 낼 때 쓰일 만큼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생선이다. 이름만큼이나 요리법도 다양한 것이 바로 명태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명태이다. 이런 명태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조리서에도 명태로 만든 명태조치, 북어 보푸라기, 북어무침, 어선, 알탕, 완자탕, 황태 해장국 등의 조리법이 쓰여 있다. 이 중에 내가 좋아하는 요리는 북어 보푸라기다. 의외로 만들기도 쉽고 밥반찬이나, 죽상에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북어 보푸라기는 북어를 곱게 갈아서 세 가지 양념으로 무친 후 동그랗게 뭉쳐놓은 형태이다.      


 예전에 세계 슬로시티 행사로 각국의 대사님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한 적이 있다. 그때 전채 음식으로 올린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북어 보푸라기였다. 여러 대사님들이 삼색의 북어 보푸라기 맛있고 신기하다며 영어로 질문을 쏟아냈다. 와우... 정말 이날만큼 간절하게 영어를 잘하고 싶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짧은 단어로 설명을 해드려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대충 알아들으시고 감탄사와 함께 엄지 척해주셔서 그날의 피로가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북어 보푸라기는 역사도 깊은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간신히 재료와 조리법만 설명했다. 여담이지만 내가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그날 이후였다. 자칭 음식 러버로써 우리나라의 훌륭한 음식들을 제대로 설명하고 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속도는 더디지만 지금도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북어 보푸라기라는 말이 아닌 ‘북어무침’이라고 쓰였다. 저자미상의 1800년대 말 조리서인 <시의전서>와 1913년 저자 미상의 조리서인 <반찬등속>에도 북어무침이라 쓰였다. <시의전서>에는 “북어를 가늘게 찢어 손으로 싹싹 비벼서 가위로 썰어 기름, 깨소금, 고춧가루, 꿀, 진간장을 넣고 무친다”라고 쓰여있다.     


 북어는 명태를 통으로 완전히 말려 건조한 것이라고 한다. ‘명태를 너무 빨리 말리면 물이 빠지며 근육 사이가 오그라들어 돌처럼 딱딱한 북어가 되기 때문에 방망이로 두들겨 살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 옛날 아버지가 술 드신 다음 날 북어를 힘차게 두들기셨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두들기셨을까? 아니면 애꿎은 북어에게 화풀이를 하신 걸까? 이제 와서 물어보면 뭐라 하실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을 듯싶다. 그렇게 북어를 세차게 두들기건만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무시는 아버지가 신기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북어는 패야 제맛이라는 속된 얘기도 있고, 전통 혼례를 치를 때 풍습으로 새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용도로 말린 북어를 쓰기도 했다. 회사나 상점을 오픈할 때, 또는 자동차를 새로 사면 고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때에도 북어가 쓰이기도 한다. 신장개업이나 이전개업 고사를 지낸 뒤에는 주둥이가 벌어진 북어를 명주실에 묶어서 사업장의 정문 위에 걸어 놓는다고 한다. 이는 사업장으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북어가 먹어 버린다는 믿음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북어는 음식으로서만이 아닌 신과 인간의 매개체로서도 역할을 해 온 것이다. 한편 북어는 시와 수필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북어가 몹시 존경스러워진다.


 ‘북어“ 너의 매력의 끝은 어디인 거니?    


 포르투갈의 대표 음식인 바깔라우(bacalhau)는 명태 사촌인 대구를 염장해 말린 것으로 많이 만든다고 한다. 내가 포르투갈에서 먹었던 바깔라우는 염장한 맛이 아닌 신선한 대구의 맛이었다. 대구로 볶음밥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맛있기도 했다. 그래서 신메뉴로 개발해 볼까 해서 여러 번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실패했다. 생선요리는 산지에서 바로 구한 것으로 요리하지 않는 이상은 힘들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 계기였다.     


 해장국으로도 유명한 대구가 본가인 친구는 아버지가 끓여주신 북어 해장국이 최고의 해장국이라고 한다. 수많은 북어 해장국을 먹어 봤지만 아버지의 그 맛을 내는 곳을 보질 못했단다. 그래서 그 비법을 물으니 먼저 들기름에 무와 북어를 정성스럽게 달달 볶아준다고 한다. 그러면 국물이 뽀얗게 변하고 진하고 담백한 북엇국이 완성된다고 한다. 또 대파의 흰 뿌리 부분을 많이 넣으면 달달 하면서 시원한 맛을 내준다고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해장국을 끓여주시기도 한다는데 감칠맛이 확실히 시중의 여느 해장국 하고는 다르다고 한다. 이렇게 친구 아버지의 해장국 솜씨를 전해 듣다 보니 문득 대구의 해장국도 궁금해진다. 아마도 북어 해장국은 이 친구의 기억 속에 ‘아버지의 해장국’이라는 키워드로 추억과 함께 평생 남아있을 것이다.     


 보통 북어 해장국은 북어와 무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 후 맑게 끓여준다. 여기에 콩나물이나 두부, 계란 등 부재료를 넣기도 한다. 또 들기름에 무를 볶아서 하기도 하지만 황태를 먼저 넣어서 육수를 낸 후 무과 기타 재료를 넣고 끓이기도 한다. 전주는 대체로 북어해장국에 콩나물을 넣어준다. 전주 콩나물에 대한 부심이 엿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국물 요리는 국간장으로 간을 많이 하는데 북엇국도 국간장과 소금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간장은 콩의 아미노산이 감칠맛을 더해주니 조미료가 따로 필요 없는 것이다. 소금은 국물을 맑고 깔끔하게 해 주니 취향껏 선택하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국간장을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북어가 주는 감칠맛과 시원함으로 충분하지만 말이다.  


 충청도 지역은 북엇국에 수제비 반죽을 띄워내기도 한다고 한다. 다슬기탕에 띄워 낸 수제비는 많이 봤는데 북엇국에 수제비를 띄워낸 것은 본 적이 없어 새롭다. 다음에는 꼭 수제비를 띄워서 북엇국을 끓여봐야겠다. 나는 궁금한 건 잘 못 참는 편이라 아마도 곧 끓여볼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명태가 잘 잡히지 않는다 한다. 애기태라고 하는 생후 1년 정도의 명태를 노가리라고 한단다. 그런데 바로 이 노가리를 너무 열심히 먹어서 씨가 말라 버려서 그렀다는 항간의 소문도 있다. 한때 맥주와 노가리를 열심히 씹었던 나도 반성을 한다. 나이 들수록 말을 아끼라고 했는데, 말도 술도 노가리도 아끼도록 해야겠다.     


 근래 우리가 먹는 명태는 원양태라고 불리는 러시아산이다. 그마저 가격도 비싸서 금태라고도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태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이기에 다시 우리 바다에서도 명태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본다. 그래야 아주 가끔은 노가리와 함께 즐거운 수다 타임을 가져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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