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료가 고기류인 해장국을 얘기하면서 자꾸 못 먹었던 얘기만 하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게 들릴 것 같기도 하다. 육류를 즐겨 먹지 않았던 시절이 길다 보니 처음 시도한 음식들이 많기는 하다. 설렁탕과 비슷한 곰탕도 사실 늦게서야 먹기 시작한 음식 중 하나다. 설렁탕을 먹게 되면서부터 곰탕도 자연스레 먹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곰탕이나 설렁탕이 같은 음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곰탕과 설렁탕을 같은 음식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연히 따지면 곰탕과 설렁탕은 다른 음식이다. 설렁탕은 소의 사골과 도가니 등의 뼈로 우려내 국물이 뽀얗고, 곰탕은 소의 살코기와 내장에 무, 다시마 등을 넣고 끓여서 설렁탕에 비해 국물이 맑다. 또 설렁탕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먹고, 곰탕은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서 먹는다고 한다.
곰탕이란 이름은 은근한 불로 오래 푹 고아서 만든다고 해서 고음, 고음국이라고 불렸다. 지금은 곰탕이라는 단어가 좀 더 익숙 하지만 곰탕이나 곰국은 같은 의미이다. 곰탕과 설렁탕은 소를 주재료로 이용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설렁탕은 주로 뼈로, 곰탕은 살코기로 끓이는 차이점 때문에 곰탕은 귀한 음식으로 설렁탕은 서민적인 음식으로 분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세간에 떠도는 말 중에 주부들이 장기간 외출할 때 곰탕을 한가득 끓여놓고 나간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곰탕을 끓이는 냄새가 나면 남편들은 아내가 외출을 하려나보다 지레짐작하기도 한다는 재밌는 말들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기억에 엄마가 친정에 가시거나, 먼 친척들의 결혼식에 다니러 가실 때 주방 가스레인지 위에는 곰탕이 올려져 있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고, 오래 두어도 잘 상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곰탕이다. 그러니 나름 현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제는 대기업에서나 밀키트 형태로 곰탕 제품들이 잘 나와서 오랫동안 고을 일도 줄었지만 말이다.
곰탕에 대한 이야기는 옛날 옛적 웃픈 스토리로 남아있게 될 것 같다. 오늘날의 남편들은 아내의 긴 외출에 긴장할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집안 가득한 곰탕 냄새를 주부들이 더 싫어할 것 같다. 곰탕은 점점 보양식 개념의 외식 메뉴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곰탕의 참맛에 눈을 뜬 건 나주에서였다. 나주의 한 대학교에 출강을 나간 적이 있었다. 매번 바쁘게 다니다 보니 나주의 향토 음식 중 하나이면서 그토록 유명한 나주곰탕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다.
결국 벼르고 벼르다가 학생들 시험 기간에 시간을 내어 나주곰탕집 중에 제일 유명하다는 곳으로 갔다. 유명한 맛집들 중에는 은근 기대에 못 미치는 곳이 있기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겨우겨우 만들어 낸 소중한 기회를 날릴 수는 없는 일이니깐 말이다.
다행히도 곰탕의 맛이 몹시 만족스러웠다. 왜 이제야 왔을까 하는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어깨춤이 절로 나는 맛에 신이 나 있었다. 그 결과 양손에는 곰탕과 수육이 포장된 채 들려있었다. 이 맛을 나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가족들에게도 맛 보여야 한다는 사명감 가득한 마음이었다.
지금은 나주에서 먹었던 곰탕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일부러 먹고 포장을 하러 가기도 한다. 나주 곰탕집은 여행 삼아 움직이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포장한 곰탕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깊은 속내를 모르는 지인들은 아마도 나를 곰탕 마니아쯤으로 알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곰탕은 나에게 또 다른 소통의 의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