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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Oct 07. 2024

알고 보면 은근 예민한 순대국밥

소통의 해장국

 생각해 보니 나는 딱히 비건은 아니었다. 성인이 다 되도록 고기를 안 먹는다고 버텼건만 곱창이며, 순대, 간, 내장은 먹었다. 심지어 소의 생간을 기름 소금장에 찍어 맛있게 먹기도 했다. 나도 나의 식성 변화를 알 수 없는 게 지금은 오히려 고기는 먹어도 다른 내장류는 잘 먹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미스터리한 식성이다. 아! 곱창은 여전히 최애템이기는 하다.     


 지금도 김밥, 떡볶이, 순대를 짝꿍 지어 김떡순이라고 주문하듯이 나의 청소년 시절에도 순대와 떡볶이는 당연히 짝꿍 중에 짝꿍이었다. 순대와 간을 먹다가 목이 메면 물보다는 매콤하고 달달한 떡볶이 국물에 먼저 찍어 먹었다. 찍먹이라는 단어가 없을 때의 우리도 나름 찍먹의 맛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튀김을 상추에 싸 먹는 게 유행이었는데 거기에 김밥과 순대를 싸 먹기도 했다. 순대를 시킬 때는 ‘간이랑 내장 많이요’를 자주 외치기도 했다.     


 친구들도 고기는 잘 안 먹으면서 내장류는 잘 먹는 나를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해장국의 대명사인 순대국밥을 처음 먹었던 날 갑자기 만난 피비린내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토록 맛있게 먹었던 순대였는데 이건 왜 이러지 싶었다. 알고 보니 바로 피순대로 끓인 순대국밥이었던 것이다. 이제껏 내가 먹었던 순대는 당면 맛이 9할이었구나 하는 걸 안 순간이기도 했다. 진정한 순대 애호가들은 당면이 들어간 순대보다 피순대를 선호한다던데 나는 여즉 힘들다. 그렇게 나는 점점 순대와 멀어져 갔다.    


 순대는 지역별로 맛이 다양한데 전주와 곡성, 순창 등 호남 지방에서는 선지를 가득 채운 피순대를 즐겨 먹는다. 특히 전주는 콩나물국밥 못지않게 피순대 국밥도 유명하다. 피순대는 돼지의 소창이나 대창에 선지를 가득 채우고 찹쌀을 불려서 넣어준다고 한다. 당면순대와는 식감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주 유명 피순대 국밥집에 가면 피순대도 따로 파는데, 주로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피순대는 선지가 대부분이다 보니 삶고 나면 색이 진한 와인 색이나 검은색에 가깝다. 그래서 블러드 푸딩 또는 블랙 푸딩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나 보다.   


 한 지인이 어머니와 함께 순대 국밥집을 운영했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피순대 안에 대파를 넣어주면 느끼함을 잡아주고, 소기름을 잘게 썰어 넣어주면 부드러움을 준다고 한다.  콩가루를 넣으면 느끼함과 냄새도 잡아준다고 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피순대는 선지가 신선해야 하므로 그날그날 만들어야 잡냄새가 안 난다고 한다.


 순대를 싸는 내장은 주로 소창을 많이 쓰고, 막창을 쓰면 벽이 두꺼워 씹는 맛이 좋다고 한다. 대신 막창은 냄새가 많이 나고 가격도 비싸다고 한다. 가격이 제일 싼 것은 대창이라고 한다.  맛을 더 신경 쓰는 곳은 막창을 쓰는데 냄새를 없애는 노하우들이 있다고 한다. 한 가지 들은 팁은 막창 속에 흐르는 물을 계속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순대 속을 채울 때 당면을 안 넣고 양배추, 양파, 대파, 당근 등 채소를 넣었다고 한다. 채소를 써는 것도 중노동 중 하나여서 항상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곤 했다 한다. 순대 속을 채울 때 소가 너무 많이 들어가거나 삶을 때 물 온도가 높으면 옆구리 빵 터진단다. 순대를 데울 때도 김이 잘 올라왔을 때 올려야지 아니면 터지거나 기름이 빠져 맛이 없어진다고 했다.


 피순대나 선지를 먹을 때 녹차나 와인 등과 함께 먹으면 그 속의 탄닌 성분이 선지 속의 철분 흡수를 방해해서 궁합이 좋지 않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순대가 이토록 예민할 줄이야.


 지인은 대학 시절 어머니를 도왔던 시절이라 주말에 기숙사로 돌아갈 때면 피순대를 잔뜩 싸 들고 가고는 했다고 한다. 덕분에 주말마다 본의 아니게 순대파티가 벌어졌다고 한다. 매주 이 시긴을 기다리는 기숙사 친구들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피순대를 못 먹었던 친구들도 졸업할 때 즈음에는 대부분 순대 마니아가 되어서 나갔다고 한다.


순대 홍보대사를 뽑는다면 당연 이 친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공로상이라도?


 그런데 정작 본인은 순대 국밥집을 그만두고 한동안 순대국밥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실 그 시절 엄마와 함께했던 고생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가끔 생각이 나서 순대국밥을 먹으러 다닌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이나 가족이 운영했던 음식 메뉴에 질려서 안 먹기도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듣기도 했다. 나는 100% 공감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예전에 분식집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렇게 수많은 김밥을 말았건만 지금도 김밥은 자주 생각나는 메뉴 중 하나다.  

  

 육식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가끔 정육점에서 막 잡은 소의 곱창과 간, 양 등을 사 오시고는 했다. 그러면 엄마는 큰 대야(흔히 말하는 빨간 대야)에 곱창은 지방을 제거하고, 양은 박박 문질러 씻으며 냄새를 없애려 애쓰시곤 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인지 나는 속없이 엄마가 손질하는 속도가 빨랐으면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야 물컹거리기도 쫄깃거리기도 한 곱창을 빨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나 곱창을 씹었을 때 나오는 고소한 곱을 무척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곱창은 꽉 차있었으나 나는 참 속이 없었다.


 대학 생활을 할 당시에 대다수의 학생들이 해장용으로나 식사 대용으로 순대국밥을 참 좋아했다. 만학도로 다시 한 대학 생활이지만 덕분에 낯설지가 않았다. 전주는 남부시장에 유명한 순대 국밥집들이 많아서 순례하듯 이 집 저 집의 순대국밥을 찾아서 맛보러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랑 친하게 지내던 조카뻘인 동기생들은 순대국밥을 안 좋아하는 나 때문에 나름의 애로 사항이 있었다고 한다. 안 좋아하는 걸 뻔히 아는데 나를 조를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 애달픔 때문일까? 그 친구는 지금 순대국밥은 기를 쓰고 먹으러 다닌다.     


 그때의 그 친구들은 이제 너무도 훌륭하고 멋진 직장인들이 되어 각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가끔 전주에서 만나면 무조건 순대국밥을 먹어야 한다고 외친다. 물론 나도 따라나선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는 자리를 혼자서 못 먹는다고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뚝배기를 다 비워내는 일은 없다. 그래도 한 자리에서 함께 순대를 예찬하고 돌아온다. 한편으로는 함께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외로움이 동시에 자리 잡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내 입맛에 맞는 순대국밥 집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조건은 피비린내가 안 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피순대 고유의 피비린내가 안 난다는 건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공식 같은 것이다. 아직 딱 ‘이 맛이다’하는 순대국밥 집을 찾진 못했지만 난 포기하지 않을 테다.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도 한몫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순대국밥 러버들인 그녀들과 오래도록 순대 예찬을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예전에 진행했던 일 중 피순대를 활용한 이색 메뉴 개발이 있었다. 피순대를 잘 먹지 못하는 내가 피순대를 수도 없이 먹어야 할 상황이었다.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느낌이었다. 바로 잘 먹지 못하는 식재료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날이 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해봤지만 실제로 닥치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나름 철저한 직업 정신으로 시장 안의 피순대 집을 다 돌아다니며 피순대를 맛봤다. 그중에서 가장 맛이 좋은 집을 찾아서 메뉴 테스팅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메뉴들을 만들었는데 그중에 순대 강정이 제일 인기가 좋았다. 튀겨낸 음식인데 뭔들 안 맛있겠는가.


 피순대를 튀겨내니 특유의 비린내가 사라지고 바삭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났다. 강정소스에 버무려지니 달콤함까지 더해져 누구나 아는 그 맛, 바로 양념치킨 맛이 나왔다. 시식에서도 제일 빠르게 사라진 메뉴가 바로 순대 강정이었다. 덕분에 이제 나도 피순대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즐겨 먹진 않지만 말이다.     


 이제껏 수많은 도전을 하며 살아왔기에 피순대를 정복할 날도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그때 가면 왜 이제야 이 맛을 알았을까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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