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렀다.
숙청의 피바람이 지나간 후, 솔로몬의 왕국은 번영했다. 사방의 나라들이 조공을 바쳤고, 무역로가 열렸고, 금과 은이 예루살렘으로 흘러들어왔다. 솔로몬은 웅장한 성전을 지었다. 야훼의 이름을 위한 성전. 다윗이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을 아들이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 번영의 그늘에서, 나단은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굳혔다.
* * *
나단은 왕의 가장 신뢰받는 조언자가 되었다.
솔로몬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나단의 의견을 물었다. 외교 문제, 내정 문제, 종교 문제. 나단은 언제나 현명한 조언을 내놓았고, 솔로몬은 그의 말을 따랐다.
"선지자의 지혜는 야훼께로부터 온 것이오."
솔로몬은 신하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나단을 높이는 말이었다.
나단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야훼의 지혜라.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왕이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었다.
변방의 선지자에서 왕국의 중심으로. 그의 여정은 길었지만, 결국 목표에 도달했다.
* * *
나단의 영향력은 날로 커졌다.
그는 예루살렘의 가장 좋은 지역에 저택을 얻었다. 넓은 정원이 있고, 종들이 시중을 들었다. 한때 변변한 거처조차 없이 떠돌던 선지자가, 이제는 귀족처럼 살게 된 것이다.
"나단 선지자님을 뵙고 싶습니다."
왕궁의 대신들이, 지방의 관리들이, 심지어 외국의 사신들까지 그의 저택을 찾아왔다. 그들은 선물을 들고 왔다. 금과 은, 값비싼 옷감, 이국의 향료. 나단의 영향력을 빌리고 싶어서였다.
나단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받을 것은 받고, 들어줄 것은 들어주었다. 물론 대가를 챙기면서.
"야훼의 뜻에 따라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단은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야훼의 뜻. 그것은 편리한 말이었다.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는 말.
* * *
나단에게는 아들들이 있었다.
그는 아들들을 잘 키웠다. 좋은 스승을 붙여 학문을 가르치고, 왕궁의 예법을 익히게 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들을 요직에 앉혔다.
큰아들 아사랴는 솔로몬의 관리가 되었다. 왕의 비서관으로, 중요한 문서를 다루고 왕의 일정을 관리했다. 왕과 가장 가까운 자리 중 하나였다.
둘째 아들 사불은 왕의 벗이 되었다. '왕의 벗'이라는 칭호는 솔로몬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공식적인 관직은 아니었지만, 그 영향력은 어떤 관직보다 컸다.
나단의 다른 아들들도 각자 좋은 자리를 얻었다. 제사장, 서기관, 지방 관리. 나단의 가문은 왕국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아버지 덕분입니다."
아들들이 절하며 말했다.
"야훼의 은혜다."
나단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도 알았다. 이 모든 것이 야훼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계략과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 * *
그러나 세월은 누구도 피해가지 않았다.
나단도 늙었다. 한때 날카롭던 눈빛은 흐려졌고, 곧게 섰던 허리는 굽어졌다. 걸음도 느려졌다. 왕궁까지 걸어가는 것이 힘들어졌다.
어느 날부터 기침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기침이었지만, 점점 심해졌다.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의원이 말했다.
"선지자님, 몸을 많이 상하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셔야 합니다."
나단은 알았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 * *
나단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아들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나단은 담담했다.
"너희들은 물러가 있거라. 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들들이 물러갔다. 나단은 홀로 남았다.
창밖으로 예루살렘의 하늘이 보였다.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붉은 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단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다.
* * *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변방의 작은 마을. 가난한 집안. 어린 시절부터 나단은 알았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힘은 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서 온다는 것을.
그래서 선지자가 되었다. 야훼의 말씀을 전하는 자. 그것은 힘이었다. 왕도 두려워하는 힘.
그러나 변방의 선지자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중앙으로 가야 했다. 권력의 중심으로.
다윗의 밧세바 사건이 기회였다. 다른 제사장들은 왕을 두려워하여 입을 다물었지만, 나단은 달랐다. 잃을 것이 없는 변방의 선지자였기에 오히려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그 직언이 다윗의 마음에 들었다. 아니, 마음에 든 것이 아니라 두려워진 것이다. 나단을 적으로 돌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나단은 왕궁에 발을 들였다.
* * *
밧세바.
나단은 그녀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적이었다. 나단이 다윗의 죄를 꾸짖었을 때, 밧세바는 나단을 증오했다. 자신의 수치를 드러낸 자라고.
그러나 권력의 세계에서 적과 아군은 쉽게 바뀌는 법이다.
다윗이 늙고, 아도니야가 왕위를 노렸을 때, 밧세바에게는 나단이 필요했다. 그녀의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나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밧세바와 손을 잡았다. 적과의 동맹. 위험했지만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동맹은 성공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
밧세바는 얼마 전에 죽었다. 나단보다 먼저. 그녀의 장례에 나단도 참석했다. 한때 적이었고, 동맹이었고, 공범이었던 여인의 장례에.
그녀가 죽었을 때, 나단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슬픔은 아니었다. 허무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함께 권력을 쥐기 위해 싸웠던 자가 사라졌다는 허무함.
* * *
아히도벨.
나단은 그 이름을 떠올렸다. 다윗의 모사. 한때 왕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불렸던 사람.
나단은 아히도벨을 만난 적이 없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하여 자결했을 때, 나단은 아직 변방에 있었다.
그러나 나단은 아히도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지혜, 그의 계략, 그의 비극적인 최후.
아히도벨은 다윗을 배신했다. 왜? 밧세바 때문이라고 했다. 밧세바가 아히도벨의 손녀딸이었다고. 다윗이 자신의 손녀를 취하고 그녀의 남편을 죽인 것에 분노하여 반역에 가담했다고.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히도벨은 패배했다. 그리고 죽었다.
나단과 아히도벨. 둘 다 왕의 참모였다. 둘 다 지혜를 무기로 삼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아히도벨은 반역자로 죽었고, 나단은 승자로 살아남았다.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나단은 생각했다. 아히도벨은 정의를 추구했다. 다윗의 죄에 분노했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래서 반역에 가담했다.
나단은 달랐다. 나단은 정의를 추구하지 않았다. 권력을 추구했다. 다윗의 죄를 꾸짖은 것도, 솔로몬을 왕으로 만든 것도, 숙청을 도운 것도, 모두 권력을 위한 것이었다.
정의를 추구한 자는 죽었고, 권력을 추구한 자는 살아남았다.
그것이 이 세상의 법칙인 것일까.
* * *
나단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행복했는가?
권력을 얻었다. 부를 얻었다. 명예를 얻었다. 아들들도 잘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
그러나... 행복했는가?
나단은 대답할 수 없었다.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도, 그는 늘 불안했다.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 언제 적에게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다. 항상 경계하며 살았다.
친구도 없었다. 모든 관계가 이해관계였다. 누군가를 만나면 항상 계산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이득을 줄 수 있는가.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가.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아들들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에도 계산이 섞여 있었다. 아들들이 성공해야 자신의 권력이 유지된다는 계산.
평생을 권력의 게임 속에서 살았다.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다.
* * *
후회하는가?
나단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르게 살겠는가?
...아니다.
나단은 고개를 저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힘이 없으면 밟힌다. 권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변방에서 멸시받으며 살 것인가, 아니면 중앙에서 떵떵거리며 살 것인가.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이기어야 한다.
그래서 계략을 꾸몄다. 사람을 이용했다. 때로는 죽음에 손을 빌려주었다.
그것이 옳았느냐고?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필요했다는 것은 안다.
나는 살아남았다. 이겼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 *
야훼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단은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평생 야훼의 이름을 빌렸다. '야훼의 뜻'이라며 계략을 정당화했다. '야훼께서 말씀하신다'며 왕에게 진언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야훼의 뜻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뜻을 야훼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었을까?
나단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야훼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다. 환상을 본 적도 없다. 다른 선지자들처럼 신비로운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나는 그저 영리했을 뿐이다. 상황을 읽는 눈이 있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능력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야훼의 지혜'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믿었다. 나도 때로는 믿고 싶었다.
야훼가 정말 있다면, 나를 어떻게 볼까. 충실한 종으로 볼까, 아니면 이름을 도용한 사기꾼으로 볼까.
곧 알게 되겠지. 죽으면.
* * *
창밖의 노을이 짙어지고 있었다.
붉은 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나단은 알았다. 자신에게도 밤이 오고 있다는 것을. 긴 인생의 끝. 영원한 밤.
그는 두렵지 않았다. 평생을 죽음의 문턱에서 살았다. 권력의 게임에서 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했다. 그런 그에게 자연사는 오히려 축복이었다.
적어도 암살당하거나 처형당하지 않았다. 침상에서, 자식들에 둘러싸여, 편히 죽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
나단은 눈을 감았다.
승자로 살았다. 승자로 죽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 *
며칠 후, 나단은 죽었다.
솔로몬 왕은 그를 위해 성대한 장례를 치렀다. "위대한 선지자, 야훼의 충실한 종, 왕의 현명한 조언자"라는 추도사가 낭독되었다.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나단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장례 후에도 계속 번영했다. 아사랴는 더 높은 자리에 올랐고, 사불은 여전히 왕의 곁에 있었다. 나단의 가문은 대대로 이어졌다.
역사는 나단을 "용감하게 왕에게 직언한 선지자"로 기록했다. 다윗의 죄를 꾸짖고, 솔로몬의 즉위를 도운 충신으로.
그 기록 뒤에 숨겨진 계략과 야망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니까.
* * *
그리고 세월은 계속 흘렀다.
솔로몬의 왕국은 번영했지만, 그 번영 아래에는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솔로몬은 수많은 외국 여인들을 취했고, 그녀들이 섬기는 이방신들을 위해 제단을 세웠다. 백성들은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을 위해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특히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다윗 때부터 이어진 유다 중심의 정책. 그들은 차별받고 있다고 느꼈다.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다. 북이스라엘 지파들이 세금을 줄여달라고 청했지만, 르호보암은 거절했다.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내 아버지가 무거운 멍에를 너희에게 지웠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 것이다. 내 아버지가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그 말에 북이스라엘 십 지파가 들고 일어났다.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왕국은 둘로 나뉘었다. 북쪽에 이스라엘, 남쪽에 유다. 다윗과 솔로몬이 이룩한 통일 왕국은 그렇게 분열되었다.
아히도벨이 예언한 대로.
* * *
나단은 그 분열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어쩌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든 왕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보았다. 왕국이 분열되고, 북과 남이 서로 싸우고, 결국 외세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권력은 영원하지 않았다. 번영도 영원하지 않았다. 나단이 평생을 바쳐 쌓은 것들도 결국은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나단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승자로 살다가, 승자로 죽었다. 그가 원한 것은 그것이었고, 그것을 이루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는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단 자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