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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golife May 17. 2019

내 미국인 친구는 이모한테도 이름을 부르는데..

'도련님', '형님' 그리고 '아가씨'가 왠 말이야...

미국 텍사스에서 처음 사귄 미국인 친구는 18살, 22살 멕시칸 자매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영어가 모국어이고, 가족의 영향을 받아 멕시칸-스페인어도 잘한다. 22살 언니는 아기가 있다. 그녀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참 흥미롭다. 또한 우리가 아기를 갖게 될 경우, 집에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영어를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한 팁도 이 자매들에게 많이 얻고 있다. 젊은 에너지와 통통 튀는 자매의 반응덕분에 우리의 대화는 항상 끊기질 않는다. 


대화를 하다보면 당연히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이모와 삼촌이 집 근처에 살고 있다며 그들의 조카들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있다. 물론 나도 가족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하는데, 한국 문화의 특성을 알려주려면 한국어를 먼저 알려주어야하기 때문에 속속들이 이야기하기는 힘들기도 한데, 사실 그녀들에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녀들이 이모 이야기를 할 때, 이모라고 하지 않고 이모의 이름을 말하며 이야기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모가 매일 집으로 왔기 때문에 이모와 매우 친해서 이모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미국은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이름을 많이 부르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엄마는 이모한테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하지만, 그녀들은 이름을 부르는 거에 익숙해져 이모라고 부르는 게 너무 어색한 모양이다. 


나도 이모, 삼촌한테는 반말을 쓴다. 다른 친척들께는 모두 존댓말을 쓰는데 외가 쪽은 존댓말 쓰기에 너무나 어색하다. 엄마와 막내 삼촌의 나이 차이가 띠동갑이고 워낙 자주 봤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어른이 되고 나서는 존댓말을 써야 하는데 머릿속으로 생각만 들 뿐, 존댓말을 쓰면 오히려 어색해져서 그냥 반말을 한다. 


친구들과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나서 사실 나는 '도련님', '형님', '아가씨' 등의 호칭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시댁 쪽 식구들은 존칭해야한다는 것. 그러나 남자는 친정 쪽 식구들에게 존칭하지 않는다는 것. 존칭하는 그 말 자체를 결혼 전에는 한번도 써본 적이 없다는 것. 나는 전에 한 번 남편과 와인 한잔 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있다. 내가 언제 한번 누구한테 형님, 도련님 이라고 해봤겠냐고. 여자로서 누구한테 형님이라고 불러본 적도, 불린 적도 없다. 게다가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머릿속에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이런 호칭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한국 여자들은 결혼할 때 괴리감을 한번 쯤은 모두 느낄 거다. 


오빠가 결혼하면서 새언니가 생겼다. 언니는 처음에 나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언니도 얼마나 어색했을까. 나는 부모님 모두 계실 때, "언니~ 아가씨 너무 낯간지럽지 않아요? ㅋㅋ 아가씨라니~ ㅋㅋㅋ 그냥 이름 불러주세요~" 라고 말했고, 언니도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부모님 앞에서 공표를 한 것이니 당연히 뭐라 하지도 않으셨다. 혹시라도 뭐라 하셨다면 막내딸로서 내가 어린 반항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으나, 부모님도 우리끼리 원만하게 지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전혀 게의치 않으셨다. 


결혼을 할 때는 '이 남자 내가 믿고 결혼해도 되나'에만 집중하기도 바쁘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나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멘붕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남편의 누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형님'이라는 호칭을 써야 하며, 남편의 누나가 결혼을 했을 때 누나의 남편을 '고모부'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 게다가 '형님'은 나에게 말을 놨고, 나는 반말을 하지 않았다. 이 일때문에 남편과 나의 사이가 좋지 않을 정도로 나는 화가 났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그들을 구지 부르지 않는다. 혹시라도 나와 남편 누나가 대화를 하게 되면 그 끝은 항상 흐릴 수 밖에 없다. 나와 남편은 미국에 살고, 남편의 누나는 제주도에 살고 있고, 시댁은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게다가 나와 남편은 한국에 가더라도 부모님께만 잘 하고 오자는 주의이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에도 바빠서 다른 가족들은 챙길 여력이 없기도 하지만 특히 남편의 누나와의 자리는 마련하기 힘들다. 내가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또 나의 이런 생각들을 알고 있으니 남편 역시 따로 자리를 마련하느라 애쓰지 않는다. (피할 수 있을만큼 피한다.) 

도련님. 형님. 아가씨. 


우리(며느리들)는 바보가 아닌 이상, 이 호칭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존대와 하대. 물론 아무생각없이 그냥 불러주면 되지 않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 그렇게 계속 아무 생각없이 다 하면 그냥 우리(며느리)들만 속상한 거다. 딱히 저항해서 싸울 이유는 없지만, 그냥 하라는 대로 하고 내 속만 상할 바에야, 차라리 안 부르고 안 보고 말지- 내가 속상하고 힘들면 내 가정도 괴롭고 내 남편도 괴롭다. 내가 편한 길이 피하는 길이라면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하고 말련다. 


누구 손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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