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우리 애도 영재?

by 스테이시

어떤 시기에 어떤 컨텐츠가 맞을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첫째와 영어를 두고 기 싸움을 하던 나는 첫째가 다섯 살이 되는 그 해를 기다리고 벼르고 있었다. 늦어도 다섯 살 때는 영어를 본격적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였다. 이것도 벌써 5년도 더 된 이야기 인지라 그 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시에는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고는 했다.


사실 30년 전, 내가 어릴 때부터 1세대 영어유치원이 존재했다는데 맞벌이 부부이셨던 우리 부모님께서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실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정말 단 한 번도 공부해라 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고 자라 날 수 있었던 나는 섭섭하면서도 감사하곤 했다. 중학교때까지 공부와 그다지 애틋하지 않았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가 재미 있어지는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뒤늦게 공부에 흥미를 가진 내가 고3이 되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면 영어와 수학의 기본기를 어렸을 때 다졌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때 생각했던 어릴 때 라는 것은 지금 사회에서 언급되고 있는 어릴 때 즉 미취학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때 생각으로 초등학교 3-4 학년 정도를 생각했던 것 같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이지만 그 때도 영어유치원 하면, 아니 그 때는 유치원생이 영어를 배운다 라고 하면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던 시대였다. 그러므로 언론에서 묘사되는 영어유치원은 무언가 극소수 부유층의 사치스러운 행태 같은 것처럼 보여지고는 했던 것 같다. 나도 내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렇게 암묵적으로 동의 된 이미지들에 큰 의문이나 호기심을 품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정확히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 묘사되는 대로 받아들였던 귀찮음은 그게 내 삶에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엄마가 된 순간 모든 세상이 바뀌었다. 아니,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이자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 변화는 나를 위해 쓰는 돈이 아까워졌다는 것이다.


“아, 이 돈이면, 애기한테 무언가를 더 해줄텐데……”


아이가 어릴 때는 먹는 것, 입는 것으로 시작되어 조금 지나서는 장난감으로 조금 더 크자 책, CD 등 학습적인 부분으로 돈이 흘러갔다. 나는 점점 초췌해지면서도 아이에게 돈을 썼다는 것은 대부분의 첫째 엄마가 걸리는 덫에 나도 걸렸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그들의 첫째 아이를 보며 혹시 영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꼬물꼬물 아가가 얼마나 신기한지, 단어라도 하나 말하기 시작하면 틀림없이 우리 애는 무언가 빠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습지만, 나라고 다를 바 없었다. 만약 우리 아이가 빠른 아이라면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으면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이르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 같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첫째 아이 때 이야기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둘째부터는 우리 아이가 영재 일리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아도 잘 안다.


그 때 나는 영어유치원이 어떤 곳인지 여전히 알지 못했으나, 결혼하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무언가 우리나라의 어두운 일면 같은 곳 일 거라는 이미지는 머리 속에서 잊혀 진지 오래었다.


내 아이에게 무언가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그 어떤 욕망보다 우세했다

.


지금이야 영어유치원의 수도 훨씬 더 많이 늘어났고, 사회적 이미지도 미취학 아이들의 선택지 중에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내가 첫째를 키울 때만 해도 영어유치원은 매우 비싸서 일반 회사원들은 감당하기 쉽지 않다 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영어유치원은 통장에 돈이 들어오든 나가든 티가 안나는 사람들만 하는 고민인 줄 알았는데, 아이가 언어에 빠른 모습을 보이자 나는 일반 회사원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가뿐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아이가 5살이 되던 1월, 나는 아이를 학군지의 어느 어학원 토요 반에 아이를 등록시켰다. 토요일마다 3시간씩 하는 수업이었고, 아이가 잘만 따라온다면, 추첨으로 진짜 어렵게 들어간 국공립 어린이집에게 이별을 고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학원에 가게 되던 첫날, 아이는 뭐가 뭔 지 모르고 엄마를 따라 나섰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던 까만 눈에 ‘재미있을 거야.’ 라는 한 마디만 해주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내 아이도 당연히 영어를 좋아할 것이라는 것에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조금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지만, 세상 진지했다. 사실 나는 아이를 영어유치원 토요 반에 데려가기 전에 많은 시도를 먼저 해본 터였다. 왜 꼭 책은 세트로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지, 아이가 딱히 그 영어 교재 세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정말 돈을 내다 버리는 일을 많이 했다.


그 때 그것들을 사지 않으면 내가 게으른 부모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이겨 내기 참 힘들었던 것 같다

.

그래도 내 계획대로 이제 내 아이는 곧 영어를 배우게 될 것이고,

내 포트폴리오 대로만 되면 순탄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학원에 간 첫 날, 외국인 강사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 강사 이렇게 두 분이 수업에 들어왔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3시간 수업 내내 울었다. 지금도 MBTI를 하면 무조건 I로 시작하는 내향적인 첫째는 크게 울지도 못하고 안쓰럽게 구석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그 다음 주도. 심지어 그 다음 주도. 그래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그 다음 주도 무척이나 가기 싫다는 아이를 차에 태웠다. 적응하면, 그래 적응 하면이라는 학원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는 말로 나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버티고 버티던 녀석은 아침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열이 38도까지 오르고 말았다. 그 날은 그 학원에 가서 열만 재고 병원으로 택시를 탔다.


그것이 영어유치원과 나의 첫 기억이었다. 아, 이건 비싼 교재를 샀는데 아이가 안 써서 먼지가 쌓여가는 것을 볼 때 천천히 마음에 나는 스크래치와는 다른 차원의 스크래치였다.


그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은 이러했다. 일단, 5살이 되던 때 책을 혼자 읽고 외워서 이야기할 정도로 모국어에 무척 빨랐던 아이라는 사실이 아이가 영어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었구나 라는 것, 어쩌면 내가 그녀석을 제대로 도와줄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면에서는 영어유치원은 평일 오전 유치부 빼고는 수업 퀄리티 보장이 안되는 것인가? 어쩌면 내가 만난 그 강사가 오전 수업도 하는 강사라면 오전 유치부도 수업 퀄리티 보장이 안되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영어유치원이 그러하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상황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 교실 분위기는 이러했다. 토요일 수당을 준다 하니 받고 싶어 나온 것 같은 수업 준비가 안 된 원어민 강사와 색연필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을 보아서는 아마 평일에는 이 원에 근무하지 않는 것 같은 아르바이트생인 것 같은 한국인 강사의 어색한 조합.


3시간 수업이라고 하였지만, 짜임새가 무척이나 엉성했다. 토요 반이지만 상당했던 학원비를 생각하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정점은 그들의 대화였다. 그 두 분은 거기 있는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 한 건지, 학부모가 있는지 모르고 실수로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시계를 보며 이런 말을 나누었다.


“가져온 페이퍼 다 했는데 시간이 30분이나 남았네. 어쩌지?”


수업 시간 매니징도 실패했지만, 가져온 페이퍼라는 콘텐츠도 열악했다. 인터넷에서 알파벳이라고 검색해서 막 뽑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원어민을 만나는 것이 소기의 목적일 수 있었지만, 적어도 그 외국인 강사분은 교육학적 배경 혹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수업이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딸에게 조금 더 해보자고 설득했었다. 그리고 그 때 인생에 대한 한 가지 진리를 마주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내가 졌다.


녀석의 극심한 거부로 영어유치원 도전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문제는 영어유치원에 대한 거부는 영어에 대한 거부로 이어졌다. 정말 주변에서 이렇게 키우기 쉬운 아이가 어디 있느냐고 할 정도로 순한 첫째 아이가 처음으로 무언가 거부하는 의사를 밝혔는데 그게 영어가 되고 말았다. 그 뒤 녀석은 영어가 싫다며, 이전에 하던 영어 CD 흘려 듣기나 영어로 DVD를 보는 것도 싫어했다.


4살에서 5살로 올라가면서 이제 보육에서 교육으로 바뀌는 시기라는 큰 마음을 먹고, 학군지라는 지역의 학원을 처음 경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경험으로 말미암아 학원은 장사하는 거구나 라는 편견이라면 편견이 생기게 된 것 같았다. 처음 등록하러 갔을 때에는 모든 것이 멋있게 보였었다. 영어로 되어 있는 카펫, 영어 이름이 붙어 있는 신발장, 별거 아닌 스티커 판까지 뭔가 다 멋있어 보였는데, 나올 때는 콩깍지가 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환상에 금이 갔다.


그렇게 그 학원을 나서면서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네! "


그 한 마디가 날 이끌었는지, 경력단절 시간 이후 처음으로 풀 타임 직업을 구할 때 나는 영어유치원 필드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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