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은 퇴직금을 위해 1년을 버틴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나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퇴직금을 기다려 본적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말 힘들 때 면 퇴직금 따위가 날 잡아줄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없었다. 그 돈보다는 이왕 내 이름을 걸고 한 반을 맡았으면 1년짜리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싶은 스스로에 대한 욕심과 기준이 나를 붙잡았던 것이었다.
그 날은 그렇게 1년짜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음을 감사하던 시즌의 어느 오후 였다. 3시쯤, 은행 앱에 로그인을 했는데 난 데 없이 높은 숫자가 나와 당황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2월엔 연말정산이 합산되어 더 나온다고 들었는데, 월급의 2배 정도 찍힌 금액에 내가 이렇게 세금을 많이 냈나, 돈을 얼마나 썼으면 이렇게 환급을 받은 거야 싶어서 조금의 자책도 곁들일 때쯤 이었다. 세부명세서도 궁금하고 내년 연말 정산을 준비하자 싶어서 전 근무지에 원천징수 영수증을 받으러 갔다.
"오늘 들어온 건 연말정산인가요?"
"그게 퇴직금 합산 금액이에요."
전에 물어봤을 때 퇴직금은 15일 뒤에 따로 나온다고 하여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하긴 이 금액을 연말정산 환급금이라고 혼자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환상에서 깨어날 때쯤, 세부내역서를 건네시면서 직원분께서 한 마디 하셨다.
"원래 계약서에 3월 4일부터 2월 말 일 까지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 퇴직금 안 줘도 되는데, 그럴 수는 없어서 준거예요. 1년이 안돼서 퇴직금이라는 이름으로 줄 수 없어서 급여에 기타 수당으로 들어갔어요."
실제 근무 기간은 작년에도 2월 말부터 였지 않냐 라고 되묻자 그건 OT 기간이고 계약서 날짜로 카운팅 한단다. 그럼 만약 원에서 주지 않겠다고 하고 계약서를 근거로 삼으면 1년을 만근을 했었어도 할 말이 없는 상태가 됐을 것이다. 그럼 계약서를 쓸 때부터 1년이 되게 써야 되는 게 아니냐 물으니 그건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는 듯 답변하신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솔직히 퇴직금을 기다리며 일한 적이 없다. 동료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보면서도 1년을 채운 것은 맡은 일을 완수하고 싶다는 책임감과 엄마 엄마하며 따라 다니는 반 아이들을 보며 견딘 것이었다. 퇴직금 때문에 조금만 더 버티자 라는 생각을 한번 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인생 처음으로 받게 되는 퇴직금은 서프라이즈에 가까웠다.
학원 강사 중에서도 유독 영어유치원은 분야는 학기 시작이 3월, 9월로 확실하기 때문에 즉 학교랑 같이 가기 때문에 행여나 중간에 입사하신 분들은 퇴직금을 위해 한 달 더 다니고 이런 것들이 불가능하다. 중간에 신규 채용되신 분들은 퇴직금은 받으려면 한 달이 아니라 1년을 더 해야 되는 구조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힘든 일을 퇴직금을 바라보고 견딜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어느 해에 내 옆자리 선생님께서 11개월 근무하셔서 씁쓸한 표정으로 나가신 것이 가슴을 두드렸다. 3월에 나가신 분의 대체로 4월에 투입 되셨는데 거의 1년은 반은 꾸려 오셨는데, 퇴직금을 위해 한 달만 더 근무할 수는 없는 시스템이니 말이다. 참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날 그 급여 명세서를 손에 들고 휘청거렸던 생각이 희미해지지 않는다.
그 때 회계 쪽 친구에게 물어봤었는데, 계약서 대로면 안 줘도 되는 게 맞고 그래도 안 주려고 안 하고 준 게 다행이라는 요약을 해주었다. 맞다. 퇴직금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동종업계 분들도 계실지 모르니, 배부른 소리 일 수 있다. 그러나 "안 줘도 되는 계약서" 를 써 놓고 일했었다 라는 생각을 하니,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기억의 채도가 낮아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1년에서 삼일 모자란 계약서 때문에 퇴직금이 아닌 급여에 수당으로 들어갔다는데, 그래서 평소보다 4대 보험을 갑절로 낸 것 같았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퇴직금은 세율이 낮다는데, 이렇게 급여에 포함돼서 받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사실 돈 몇 만 원이 세금으로 더 나가고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으나 이런 대화 자체가 너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비록 나는 안 줘도 되는 계약서를 가지고 감사히 받으며 마무리를 했지만, 여차의 상황에서 법으로 가게 된다면 강사들에게 그 계약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고용되는 입장에서는 그 문구 하나에도 마음이 쓰일 수 있고, 소속감의 농도도 오고 갈 수 있으니, 서로에게 안전하게 느껴지는 합의를 바탕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들이 모든 곳에서 오길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