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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Aug 19. 2023

책, 책장 그리고 책 냄새

결혼 13년 차, 8번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쉽지만, 이번에도 우리는 '우리'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2년마다 색다른 집에 살게 되는 건, 나름 장점도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단점이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사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한 번 이사할 때마다 70리터 쓰레기 봉지 한 5개를 채우는 희열이 있다. 이사를 자주 다녀도 왜 이리 버릴게 많은지 살면서 욕심이 많았나 보다.  


우리는 이유를 막론하고 대부분 집을 넓히는 이사를 했었다.


15평, 21평, 24평, 24평, 21평, 34평, 36평 순이었다. 중간에 24평에서 21평으로 이사는 21평이 신축 아파트 새 입주였기 때문에 크게 작아진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신축아파트 21평에서 구축아파트 34평으로 이사 시 더 집을 잘 활용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행히 나는 어떤 구조의 집이라도 가구배치와 조명, 소품으로 살려내는 재주가 있으니 사실 평수가 이사 고려 시 큰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번 이사에서 집을 보러 다니면서 후보지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 34평과 신축은 아니지만 구축도 아직 아닌 아파트 20평이 물망에 올랐다.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예산의 제약에 따른 옵션이었기에, 이따금씩은 아예 이 동네를 벗어나 신축아파트에 한적하니 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기는 했으나 이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고학년 자녀는 강력히 전학을 반대했고 우리는 결국 학교에서 더 가까운 20평짜리 집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나에게 쓰레기 봉지 5개 정도를 채우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에게 이별을 고해야 함을 뜻했다. 지금 새로운 집에 이사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집을 둘러보니 이제 결혼 때부터 쭉 같이 온 녀석은 냉장고 하나뿐이다. 나는 첫 신혼집 구축 15평에 살 때부터, 그렇게 책장 부심을 부렸다. 책이 많아서 책장이 필요했던 걸까, 아님 집에 도서관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책장이 필요했던 걸까?


신혼집에서 2개였던 책장은 아이들을 키우고 첫째가 전집을 좋아하면서 최대 9개까지 늘어났었다. 보통 책장, 슬라이딩 책장, 회전 책장, 집모양 책장, 정말 종류도 다양하게 다 세보지는 못했지만, 한 때 우리 집은 웬만한 아파트의 작은 도서관만큼 책을 구비했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나길 바랐던 마음도 컸지만 도서관 같은 분위기를 만듦으로 내 마음이 안정되는 것도 있었다.


책장들은 잦은 이사와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망가져 갔으나, 바로 앞전 집까지 최대한 책장을 많이 끌고 다녔다. 다만, 36평에서 20평 집으로 이사에서 이번만큼은 책장들은 안전하지 못했으며 살생부에 올랐다. 먼저 책들을 다 정리했다. 중고로도 팔고 지인들도 주고 너무 낡은 것들은 버리고, 온라인 서점에 바이백도 몇 박스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책들과 이별을 고하고 텅 빈 책장들을 보면서 수고했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랑 같이 이사 다니라 너도 고생 많았지. 이제 편히 쉬어."


결혼 13년 만에 나는 책장 없는 집에 살게 되었다. 물론 책도 다 정리해서 책도 거의 없다. 책장이 없으니까 왠지 책도 더 안 사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책을 좋아한다. 얼마 전에 집 근처 교보문고에 갔다가 딱 회전문을 돌리고 들어가는 순간, 향기를 맡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책을 좋아한 걸까? 책장을 좋아한 걸까? 이 서점에서 나는 향기, 굳이 책 냄새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걸 좋아한 걸까?


그래서,  교보문고 디퓨저를 큰 것을 2개 사서 집으로 왔다. 이제 현관문을 열 때마다 교보문고에 온 것 같은 향기가 나를 반겨준다. 책장을 놀자리는 없지만, 책을 가득 채울 자리도 없지만, 10만 원으로 느낄 수 있는 책냄새조차 사치는 아니겠지. 이렇게 나는 또 집을 애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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