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Oct 08. 2023

강남에 임대주택으로 입성한 후...

이 책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강남에 사는 머글이다. 헤르미온느 같은 특별한 능력도 없고, 해리포터 같은 특별한 재력도 없다. 월세든, 전세든 강남에 살 정도면 나름 부유한데 왜 이런 글을 쓰는 걸까 이상하게 여겨진다면 나의 전 작품 '우리 집은 어디에(2019, 지식노마드)'에 대해서 검색해 보면 완전히 이해가 될 것이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를 더 나아가 시댁 할아버지, 시아버지를 포함하여 현재 우리 가정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부유했던 적이 없다. 그럼 가난했다는 말이냐라고 묻는다면, 적어도 나와 남편 그러했다. 10년 전, 나는 우리 가정의 수입만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해, 정말 큰 용기를 내어 동사무소에 갔고 복지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우리 아이들을 차상위 계층으로 등록했다. 차상위 계층은 기초생활 수급 바로 위의 단계이고, 병원에 가면 진료비는 무조건 천 원, 약국의 무조건 500원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에 매진하고 있었고, 나는 폐가 미숙하게 태어나 24개월 전까지 13번 입원했다 퇴원했다를 반복하는 아이를 두고 일하러 나갈 수 없었다. 감기는 무조건 폐렴으로 발전했고 열은 심심치 않게 40도를 찍었다. 그 뒤 남편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고 나도 아이들이 크면서 파트타임 일부터 조금씩 시작해 나가면서 우리 가정은 독립적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위에 검색해 보라고 했지만, 귀찮아서 검색 안 해보셨으리라 생각하고 '우리 집은 어디에' 책 내용을 요약해 드렸다. 딱 한 가지 중요한 사실만 빼고 말이다.


나는 장기안심임대, 국민임대, 장기전세, 행복주택을 포함하여 5개의 임대주택을 이용했고, 마지막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 행복주택을 이용 후 임대주택을 졸업했다. 즉, 내 집이 생겼다는 말이다. 차곡차곡 팔과 다리에 힘을 붙여, 내 집 마련까지 고생스러운 여정이었지만, 내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 또 다른 페이지였다. 아직 나는 내 명의가 된 집에 들어가서 살지 못했다. 집 하나 있으면 부자네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 집은 전세가가 분양가와 같아졌기 때문에 잔금을 치를 수 있었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나는 임대주택 졸업 후에도 전, 월세를 전전하고 있는데 그 무대가 반포라는 것이 조금 특이할 뿐이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의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반포에 임대주택에 입주한다는 건, 모두 미친 짓이라고 했다. 소문나면 왕따 당할 거라는 애기부터, 그곳에 살인적인 물가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말까지...... 모두가 나한테 악수를 두는 것이라고 했다. 단 한 명만 빼고 말이다. 당시 살던 지역의 어린이집 원장님께 이 안건을 상담하러 갔던 적이 있었다. 본인 자녀를 분당에서 키워서 이미 유수의 대학에 입학시킨 선배 어머님이시기도 한 원장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가세요. 애들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보아야 강해져요."

모두들 우리 애들, 혹은 내가 새로운 세계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약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원장님은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말해 주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이미 가려고 마음이 기운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반포에 새 아파트에 입주를 하고, 첫째를 초등학교 입학시켰다.

그때 이미 나는 내 집 마련으로 임대주택 졸업하기라는 주제의 '우리 집은 어디에'라는 책을 출간하는 단계였고, 내 프로필 사진을 정독하신 반장 어머님 덕분에 반 모두에게 우리 집의 사정을 알려져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뒤에서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반포 새내기의 삶을 응원해 주었고, 내가 반포를 떠나려고 할 때는 그때마다 아이들이 여기서 이렇게 잘 해내고 있는데 어딜 가냐고 채찍질해주었다. 무엇보다 나는 나 스스로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임대 주택에 산다는 것이 뭐 자랑할만한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출발선이 다른 그들과 나였기에 나는 내 속도로 노력해 와서 현재 위치가 여기라면 감출 것이 없었다.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에서의 2년의 삶은 감사함으로 가득했고, 때로는 첫째가 선생님이 많이 칭찬해 주는 아이라는 이유로 질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아이가 괜찮은 두뇌를 가졌다고 착각했었다. 남들보다 뛰어나 상위 몇 프로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뭐든지 잘 해낼 거라고 기대했다. 가끔 친구 엄마들을 만나면, 학원에 어딜 보내느니, 애 정도면 어딜 보내야 하느니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솔직히 맞벌이로 살아가는 게 정신없었던 나는 크게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쓸 여유도, 남들에게 관심을 가질 오지랖도 가질 수 없었다.


그때 우리 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와 재건축 대상 아파트 학생들의 통학구역이었다. 종종, 같은 아파트끼리만 그룹을 짓는 부모님들도 계셨지만 그 또한 얼마가지 않았다. 어른들이 이야 아파트가 뭐니, 몇 평에 사니, 어느 대 출신이니 하면서 그룹을 지어서 애들끼리 친해지게 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솔직히 아이들은 자신과 마음이 맞는 애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웃픈 애기지만, 나중에 보면 부모님끼리도 비슷한 결을 가진 애들끼리 친해져 오더라. 정말 놀랄 일이다. 엄마 모임에도 몇 번 나갔지만 솔직히 극 내성적이기도 하고, 밤에 술자리를 겸하는 대화였기에 맨 정신인 나는 녹아들기기가 어렵기도 했다. 새로운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부유한 사람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점도 깨닫게 된 건 있다. 욕심을 낸 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차차 인정하게 되었다.


다만, 어느 날 학교에서 어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 적이 있었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한참 뒤에 일대일로 만났던 엄마를 통해 들었다. 구체적으로 쓸 건 아니지만 싸움은 드라마틱했고 '그쪽 애가 우리 애랑 급이 같니?'라는 말로 화룡점점을 찍었다고 한다. 와, 이건 또 뭔가. 마음속에 급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 존재했다는 말인가. 좀 뜬금없지만 신기했다. 앞선 글에도 말했지만, 강남에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애기가 아니라, 어디나 이상한 사람이 있을 찐대, 그 이상한 사람의 스펙트럼이 좀 드라마 같다는 것뿐이었다.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됐다. 아니, 강남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반포 안에서도 초등학교로 별로 분위기가 다르다는 사실말이다. 반포에서 사교육 학원을 10년 넘게 운영한 내 친구는 XX초 애라면 등록을 거절하고 싶을 정도라는 말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게 뭔 말인지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실상을 말하건대, 일반화시키긴 어렵지만 아파트별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 말한 학교에서는 새 아파트 사는 엄마가 재건축 대상 아파트 애들에게 '그 딴 아파트 사는 거지들'이라고 했단다. 하하, 어디나 존재한다. 상식을 뛰어넘는 신박한 사람들이.


그래서, 나는 다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강남을 배우러 이곳에 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최소 비용으로 강남을 이용하려고 온 것이다. 그게 공교육의 퀄리티 든, 사교육의 다양한 선택지든, 서로 도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든. 다만, 나쁜 영향이 더 크다거나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면 나의 결정은 언제든 수정될 여지가 있었다.


한 번은 어떤 엄마가 나를 붙잡고 한탄스럽게 말씀하셨다.

 

"자기는 좋겠다. 애기 공부 시켜보다 아니면 다른 데로 뺄 수도 있는 거잖아. 여기 사람들은 여기 벗어나서 갈 데가 없어. 여기서 애기 S대 못가면 겁나 쪽팔린 거야. 그래서 나 애 영어 지금 죽도록 시키는 거야. 애 공부 못하면 해외로 빼줘야 하니까......"


그래서 어쩌면 나는 강남에서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어서.




이전 05화 난생처음 로또를 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