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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8. 2023

강남에 머글을 위한 학원은 없다

강남에 이사 온다는 결정을 했을 때, 부끄럽지만 나는 나의 첫째 자녀가 똑똑한 줄 알았다. 5학년 된 지금, 돌아보니 똑똑한 건 모르겠고, 도도하다. 고해성사 같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강남에 사는 머글 시리즈 글을 쓰면서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7살 때까지,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 아이를 키웠는데 나름 열과 성을 다해 교육을 시켰다. 크게 사교육을 시켰던 건 아니지만, 라떼는 이러면서 아이를 직접 끼고 가르쳤다. 지금은 도도한 첫째가 그때까지는 순딩, 순딩 했기에 내가 이끄는 데로 잘 따라와 줬다. 없는 살림에 할부로 전집을 사주면 아이는 책 박스를 끌어안고 '엄마, 고마워' 라며 행복해했다. 모두가 저렇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공부를 잘할 거라며 칭찬했기에, 나도 은근히 그럴 거라고 오해했다. 이것이 내가 강남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 중에 하나였다. 아이가 있는 지역에서 잘하는 아이라고 자꾸 칭찬을 받으면, 금방 나태해질 것만 같았기에 새로운 자극과 도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 판단은 아이의 성향마다 다르게 돼야 될 것이고, 돌아봐도 이 판단 자체는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부작용이 없지 않았지만, 강남에 와서 교육계에 일어나는 현상을 직관하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환상을 오래 취해있지 않을 수 있었다. 더 늦게 이러한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해보지도 못하고 좌절만 했을 것 같다.  


반포에 이사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영어학원을 찾는 일이었다. 학원이 이렇게나 많은데 놀랍게도 Beginner를 위한 Class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당황스럽게 그지없었다. 1학년 들어가는 애들인데, A4 용지 한 장 빼곡히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는 돼야 들어갈 수 있다는 학원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교육에 진짜 미쳤던 엄마라면 더 빨리 강남에 왔어야 하는 거였구나 라는 사실을. 사실 난 아이가 4살 되었을 때부터 원어민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살던 지역에 그런 학원은 없었다. 또 강남이 아닌 다른 학군지 영유 토요반에 잠시 보냈었지만, 말도 안 되는 퀄리티에 기겁하고 바로 그만두었었다.

 

그리하여, 난 깨달았다. 늦었구나.


이들의 레이스는 이미 3살-4살부터 시작되고 있었는데, 나는 8살 때 와서 준비 운동 정도만 시키고 애를 수영 대회에 넣어보려고 한 꼴이었다. 다행히 수학은 영어보다는 나았다. 시험은 볼 수 있었다. 사고력 수학 학원으로 유명한 소마에 입학시험을 보려고 알아보니 시험을 3달 뒤에 볼 수 있단다. 혹시 2번 탈락하면 다시는 그 학원에 입학조차 할 수 없단다. 와, 소마 시험준비용으로 유명한 팩토시리즈를 풀리고 시험을 봤다. 간신히 C반에 합격을 했다. 휴, 반포에 이사 온 지 몇 달 만에 드디어 한 학원에 등록이나마 할 수 있었다. 소마에서는 소마셈이라는 연산 문제집을 숙제로 했는데, 한 번은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아이 연산 속도가 좀 느린데, 7살 때까지 뭐 안 시키셨어요?"


이번엔 대놓고 혼났다. 이미 뒤처졌다고. 당황했다. 내가 나름 시킨다고 시켰던 것은 이 지역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가 잘 적응해서 나중에는 B반으로 올라가고, 황소도 진학하긴 했지만, 학군지에서 경험한 첫 두 가지 에피소드는 잊히지가 않는다.


내가 나중에 엄마들하고도 일대일로 만나고, 이 지역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왜 늦었다는 말을 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강남이라고 통틀어 말하는 지역도 방배, 반포, 압구정, 잠원, 역삼, 대치, 개포, 잠실 이런 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지역마다 엄마들의 자녀를 향한 기대치 아니 목표치가 다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는 S대 가는 걸 목표로 하는 부모님이 많다면, 어느 지역에서는 네임밸류보다는 의대, 치대를 가는 걸 목표로 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국제학교나 보딩스쿨 후, 해외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다. 그러한 면에서 보았을 때, 그중에 어느 것 하나를 목표로 삼는 다 해도 우리 애는 8살에 늦었다는 진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S대를 가려면, 올림피아드 등을 준비해서 과학고 루트로 가야 하고, 의대를 목표로 하면 지금쯤이면 영어가 끝나고 초등학교 수학이 끝나있어야 한다. 해외대학이 목표라면 영어 놀이학교 후 영유가 필수였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놀랐다. 나는 우리 애가 지금 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계속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막한 바람만 있었는데, 이들은 구체적으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게 나와 그들이 다른 점이었다. 이걸 배워야 할 점으로 볼지, 반면교사로 볼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그때 나는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혀 아이를 잡고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했다. 다만, 그 시기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점점 선행을 시켜보니, 아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딱 3학년이 될 때쯤, 나는 스스로에게 기특하게도 조금 빠르게 해탈했다. 즉, 우리 아이에게 저 트랙 중에 하나를 강요할 수 없고 강요한다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좀 오버해서 이 아이가 대학에 안 간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로 나는 육아의 초고수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금도 10살 이전에 우리 애가 머리가 좋은 것 같다느니, 천재느니 이런 말을 하면 3학년 돼서 다시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후에도 몇 가지 학원을 등록했다 끊기를 반복하긴 했다. 다만 그 뒤로는 이 녀석에 대한 기대치는 학교 진도에서 낙오되지 않고 잘 따라가 주렴 이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이가 좋아졌고 지금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있다. 나는 내가 수포자였기 때문에 적어도 수학만큼은 아이들이 자신감을 쌓고 구멍 없이 갔으면 좋겠는데 어느 학원에 보내도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가서 구멍이 숭숭 나는 게 보였다. 심지어 황소에 다닐 때는 3개월에 한 학기를 끝낸다고 했다.


와, 진정 머글을 위한 학원은 없단 말인가?


지금 나의 자녀가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는 것은 위의 이유도 있지만, 경제적 이유도 크다고 말하고 싶다. 소소한 맞벌이로 살아가는 나는 학원의 가성비를 따지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학원에 다니고 그 학원 숙제를 위한 과외를 따로 붙이신다. 솔직히 말하면, 해서 않좋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줄 수 없다고 해서 그 모습을 비판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렇게 늘 도움 받는 것에 셋팅에 익숙해지면 입시 끝까지 그 셋팅을 유지해 준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학원을 다 끊었다. 나는 이곳의 부모님들처럼 두 아이의 입시 끝까지 학원 풀 셋팅을 해줄만한 재력이 없으므로 지금 부터 우리아이들은 스스로 학습하는 법을 터특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떻게 보면 나로서는 사교육을 상대로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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