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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22. 2023

강남에 살고 싶은 게 아니라, 강남에 집을 갖고 싶어

많은 노력병 환자들이 겪는 또 다른 증상은 착해 병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부모님의 바람을 가득 담아 지어진 내 이름에는 착하게 살라는 한자까지 들어있었으니, 착하게 살아가는 것을 운명이라 믿었다. 착하다는 말이 세상 제일가는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었기에, 나는 그 칭찬을 듣기 위해서라도 착한 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이름을 이렇게 지어준 부모님도, 누구보다 자기 몫에 확실한 목소리를 가진 동생도 탓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그래, 맞아. 그런 거였어."라고 붙들지 않았다. 그들도 인생이 고달팠으리라. 


나는 유독 어려서부터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싶다고 얘기할 줄 몰랐다. 친척 어르신이 하는 슈퍼에서 봉지에 먹고 싶은 과자를 가득 담으라고 해도 한 봉지 담고 말던 아이가 나였다. 상대방의 입장을 너무 깊이 생각한 탓에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대학교까지 지내던 내가 내 것이라는 정의에 눈을 뜨게 된 일이 있었으니, 내 남자친구를 좋아한다고 하는 후배를 직접 대면에서 만난 일이었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착해 병에 걸렸어도 남자친구를 공유할 수 없으며, 세상에는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내가 내 것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남의 것을 빼앗아 갖고 싶다고 해도 "Do what you want"라는 노래 가사가 울려 퍼지는 세상에서는 나는 한 명의 바보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날의 각성 때문이었던 걸까? 난 그 뒤 내 것에 대해서 소유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모습은 엄마를 화나가게 하기에 충분 했다. 엄마는 예전엔 착했던 내가 이상해졌다며 오히려 내 탓을 했다. 늘 동생에게 양보했던 나를 엄마가 좋아했었던 다는 충격은 그래도 꽤 오래갔던 것 같다. 그러했던 내가 오늘 이 글을 자유롭게 쓰기까지는 그때로부터 근 20년이 더 필요했다.


솔직해진다는 건 정말 죽음 가까이 한 번쯤 다녀와야 가능해지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과 공황장애를 같은 시기에 겪고 응급실에 몇 번 다녀오고 나서야 더 이상 나를 착하게 꾸미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나에 대한 평판을 뒤집을 만한 커밍아웃을 한다. 내가 강남에 머글로 살면서 느낀 지난 5년 간의 소회를 한 줄로 말이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강남에 사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그 보다 무언가를 더 원하고 있었다.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 신혼부부 임대주택으로 강남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동산 스터디 카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써서 유명해진 저자의 책 "강남에 집 사고 싶어요"를 읽었었다. 그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제목이 흥미롭다고 느꼈을 뿐이지, 내가 강남에 집을 사고 싶다는 욕망을 한 끝이라도 품는다면 역모죄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머글이 호그와트에 방문해 본 경험을 넘어, 마법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 악마와 영혼을 걸고 도박을 하는 정도 일이나 다름없었다. 난 강남에 살고 있지만, 강남사람들하고도 거리를 두고 싶은 것도 있었다. 마음에 강남을 탐하지 않는 내가 더 고상할 것이라는 착각을 즐겼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강남에서도 3번의 이사 끝에, 4번째 집에 살게 되었고 그 사이 파트타임을 전전하던 내가 어였한 강남 오피스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월세를 내지만 빚이 없는 삶을 이룩하게 되었다. 내 삶을 한 발치 떨어져서 본다면 분명 상승곡선이었을지 모르나, 모든 것이 너무 허무해지는 시점이 왔다. 그게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라고 생각하면 내 존재 자체가 문제인 것 같았다. 이 정도 삶을 이룩했는데, 무언가를 더 바란다는 것은 내 착함에 큰 오점이라고 생각했기에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어느 날 퇴근하다가 문뜩 위를 올려다봤는데, 내 눈엔 하늘이 보지 않고 불이 켜져 있는 아파트가 보였다. 그날 알게 됐다. 내가 지금보다 더 원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강남에 있는 내 집.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거스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내가 귀를 막고 호그와트에 마법은 없어, 마법 따위는 없어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우면서 내가 보고 들을 것을 부정하려고 한다면 그 또한 사람이 스스로 미치는 길일 것이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그토록 강남에 가지 말라고 말렸던 이유를.

그들을 욕했던 이유를. 

딸 수 없는 포도는 신포도 일 것이라고 믿어야 했던 여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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