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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22. 2023

강남에 살아도, 강남에 살지 않아도...

착해 병의 파업을 선언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고상하게 나는 지금에 만족해, 더 이상 탐내는 건 과욕이야라고 스스로를 억압하며 살았던 시절에 안녕을 고하고 나는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노예라고 할 수 있겠고, 어떻게 보면 더 나은 이상향을 향해 더 나아가 보기로 한 탐험가로서 삶을 살아나가기 시작했다. 삶은 모습이 어떡하든지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재미있는 것 같다. 


그렇게 강남에 사는 것을 넘어, 강남에 내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소소한 깨달음을 얻은 후, 나는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토요일 9시엔 늘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계획이 차질이 생겼다. 로또 1등이 되어도, 강남 집을 사기 어렵다는 팩트말이다. 로또 1등은 20억이 안될 때가 많은데, 강남 집값은 20억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로또가 된다는 가정도 웃기지만, 강남에 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더 우스운 생각인 것 같긴 했다. 아무렴 어때. 


나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늘 두리번거리면서 아파트를 본다. 머릿속에 지도와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멋진 아파트를 보면 남편에게 "저기 살면 좋겠다."라고 말하곤 둘이 크게 웃곤 한다. 그렇고 보니, 나는 꼭 강남아파트를 갖고 싶은 게 아닌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강남 집을 원했지만, 또 강남에 갇히는 것 원치 않았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데 사는 자유, 그 자유가 아마 세상에선 경제적 자유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렇기 위해서 재력이 필요할 테니 상징적으로 강남 아파트를 떠올렸던 것 같다. 강남에 내 집이 있으면 세만 줘도, 나는 다른 원하는 지역 어디라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지금껏 강남에서 만난 가정들은 지금 사는 집이 자가가 아니어도, 자신의 자가도 강남, 서초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처럼 자가는 강 너머인데 강남에 세 사시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강 너머에도 학군이라고 불리는 옵션들이 존재하니, 심리적으로 가까운 곳으로 많이 가시는 것 같다. 


이 책을 여기까지 쓰고 보니 강남 잠입 보고서를 쓰러 왔다가 오히려 내가 뉴스에 보도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된 것 같다. 강남 별거 없더라라고 멋있게 결론을 휘갈기면 요즘 말로 힙할 것 같은데, 나는 강남에 와보니 뭐가 있더라. 근데 그게 보이는 무언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 더라 라는 말을 하고 있다. 


자유를 탐하는 것, 자유를 갈망하는 것, 대놓고 자유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유. 


나는 이 책을 쓰기 전에 '우리 집은 어디에'라는 임대주택 거주 에세이를 발표했었다. 그 책을 발표할 당시 내 상황은 이러했다. 다양한 임대주택 거주 5년 차였고, 퇴거 소득 기준이 더 높은 임대주택으로 이동하고자 강남의 신혼부부 행복주택을 신청해 놓았는데, 그 사이 신혼부부 주택 청약이 당첨되었고 그 뒤에 강남 행복주택도 당첨되어 일단 강남 행복주택에 입주한 상태였다. 물론 강남 행복주택에는 청약에 당첨된 집에 준공될 때까지만 살 수 있는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 책은 어떤 인플루언서의 픽을 받아 독서 스터디 책으로 쓰였는지 종종 후기가 올라오고는 했다. 대부분은 젊은 새댁이 열심히 사네라는 격려가 많았지만 간혹 내가 강남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에는 분노를 표출하는 분도 계셨다. 청약 당첨됐는데 왜 임대주택에 또 들어가냐는 그런 애기가 아니었다. 너 같은 사람이 굳이 나도 못살아본 강남에 가서 살아야 되느냐는 일종의 질투이자 질타였다. 임대주택에 살던 차상위 계층이었던 사람이 강남에 가서 자신보다 좋은 아파트에 산다는 게 그렇게 기분이 나쁘셨을까? 자신보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는데 내가 마지막에 한 당돌한 선택에 그 마음이 사라져 버려서였을까? 


나는 여전히 빈부격차로 어떠한 사람도 쉽게 판단받지 않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한 때 나도 차상위계층이었던 만큼, 비자발적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 혹은 노력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분들도 정말 많다. 다만, 이것은 모두가 동의하길 기대해 본다. 


부하거나 빈 하거나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것은 누구에게도 사치일 수 없다.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 그것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네 잘못이야 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도 더 갖지 못해 싸우고들 있는데, 하물며 아직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아예 바라는 것조차 사치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적 분위기에는 모두가 책임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10대에는 이름 있는 대학을 가야지

20대에는 이름 있는 기업에 가야지

30대에는 이름 있는 기업에 다니는 배우자를 만나야지

40대에는 이름 있는 아파트를 사고 (요즘에는 추가되어) 골프를 쳐야지


등의 기준에 이미 도달하지 못했으면 낙오자로 분류해 버리는 눈빛은 실로 아프다. 그래서 늦게 출발한 사람들은 더 가지는 게 욕심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이유로 궤도에 올라타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더 나은 삶이라는 수만 가지 갈래의 길에, 속도 또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가 강남에 사는 머글의 이야기다.

나는 머글이다. 


강남에 살아도, 강남에 살지 않아도 나는 머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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