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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8. 2023

난생처음 로또를 사다

나는 노력병에 걸린 채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었기 때문에, 거저 주어지는 행운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다. 사은품 뽑기 하나도 된 적이 없다. 그런 것을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솔직히 경멸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원하고 바란다는 것을 애써 부인했다. 가끔 아빠가 술에 취해 사 오신 로또가 어떤 의미였는지 몰랐으니, 나는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사실 이 노력병이라는 것에 중증이 된 건은 자식들이 태어나면서부터였다. 이 꼬물락 거리는 아가들에게 더 안전하고 더 따뜻한 환경을 주고 싶었다. 뭐라도 해서 상황을 더 낫게 만들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인생은 타이밍, 운칠기삼이라는 말의 존재가 각광받음에도, 내 꼿꼿한 목은 굽혀질지 몰랐다. 


내가 노력병에 걸렸다는 것, 그리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강남에 와서 명백해진 것이었다. 예전에는 노력하는 데로 티가 났다. 뭔가 조금씩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곳에선 노력해도 티가 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차이가 있어서 예를 들어 우주선을 타고 갈 수 있는 높이를 비행기를 타고 쫓아가보는 꼴이랄까, 공기는 점차 희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가 겪은 호흡곤란과 어지러움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이 정녕 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했다는 뜻일까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때로는 정말 연예인 같이 예쁜 애기 엄마들과 커피를 마실 기회가 생기면, 그들은 자신은 취집 했다는 애기를 공공연하게 하곤 했다. 처음에는 이게 웬 드라마지 싶었다. 인생의 고귀한 선택에 돈이 1순위가 될 수 있다고? 정말 내 귀를 의심했다. 그 말을 처음 들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absolutely 그분들의 선택을 이해한다. 내가 20대로 돌아가면 취집을 선택할 용의가 있냐라고 하면 첫째 의학의 도움을 받아도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둘째 행여 성공했더라도 유지에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그런한 삶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난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지만, 아직 로또에 당첨되어 부자가 된 사람은 본 적이 없긴 하다. 아마 당첨돼도 주변에 얘기하지 않을 테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나랑 남편은 차를 타고 어느 동네를 지나면, 보이는 아파트 들 가격 맞추기 놀이를 한다. 그리고 결론은 "와, 로또 돼도 사기 어려워."이다. 로또가 되는 것도 엄청난 건데, 더 엄청난 것은 로또가 돼도 살 수 없는 집값의 행방이다. 그래서 농담으로 "여보, 로또 되면 전세살 수 있겠어."라고 너털웃음을 짓곤 한다. 


이런 대화는 종종 해왔지만, 사실 나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손으로 로또를 구매한 경험이 없었다. 첫 번째로는 극 I성향인 내가 복권 판매대에 가서 "자동이요."라고 말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두 번째로 그 부끄러움을 이겨낸다 쳐도 "로또 한 장 주세요."라는 말은 왠지 교복을 입고 편의점 가서 "말보로 레드 하나요."라고 외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로또를 산다는 건 삶의 애환을 아는 어른이 됐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첫 로또를 샀다. 


인터넷으로...... 


로또의 번호를 신성한 마음으로 골랐다. 19,20,22 이런 식으로 뭔가 본 것은 있어가지고 가까이 붙은 수를 우다다 골랐다. 로또를 처음 사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당첨되면, 저 아파트 전세 살 수 있겠 다며 우리 동네 신축아파트를 보며 김칫국을 드링킹 해댔다. 남편한테 뭔가 기분이 업되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원래 처음 몇 번 살 때는 그런 기분이 드는 거란다. 번개 맞을 확률보다 더 희박하게 내가 뽑힐 것 같은 느낌! 처음 산 로또는 정말 딱 추첨 시간에 맞춰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하하하, 당첨 번호가 있긴 했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너무 아쉬웠던 나는 몇 주째 인터넷으로 로또를 샀다. 남편 말처럼, 이제 몇 주가 지나니 설렘은 많이 사라졌다. 그저 한 주 회사 생활을 버틸 소소한 마취제 같다고 해야 할까? 

노력이라는 중독에서 벗어나서 한 조그마한 일탈이 내게는 로또는 사는 일이었다. 이제 로또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난 좀 더 성숙해진 걸지도 모른다. 인생을 사는 내 방법만 옳다고 주장했던 것에 대해서 비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자유로워지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도 로또를 살 수 있지 않을까? 


"자동 한 장 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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