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Aug 31. 2023

용감함과 똘기 사이에서 내린 결정

그 병은 얻은 것은 내가 그토록 선망하던 평범해졌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늘 세상은 밝은 곳이고 살다 보면 노오력에 대한 결과가 선물처럼 찾아올 것이라던 내가 푯대를 잃어버린 순간, 그 병이 나를 덮쳐왔기 때문이다. 그 병은 이미 많은 이들의 친한 친구, 아니 흔한 친구였다. 공황장애라고. 너무 많은 분들이 이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자세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 애기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자유한 마음이 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원인 찾을 수 없는 응급실 지출을 몇 번 만들어줬고, 길바닥에 쓰러지는 경험을 수차례 선물했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았다.  


집과 회사 근처에 병원을 찾다 보니, 강남역에 있는 정신의학과를 찾고 청담에 있는 상담실과 신경과에 방문했었다. 정말 사람이 많았다. 병원은 15분 단위로 예약을 받았고, 약을 처방하는 공장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들 아프게 된 원인이 뭘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 간 모두가 그렇듯 내 인생이 제일 지랄 맞아 보였던 그 순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헛소리는 그제야 음소거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울고 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죄송하지만, 지금까지 말씀하신 바로는 그다지 잘못 사셨다거나, 삶을 비관할 정도로 나쁜 상황은 아니신 것 같으신데요, 왜 자기 학대를 하고 계신 거죠? 여기 오시는 분들은 정말 삶에 문제가 있으신 분들이 많으세요. 남편이 때린다거나, 외도를 했다거나, 갑자기 사업이 망하셨다거나, 사기를 당하셨다거나......"


반 정도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지금까지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40년 간 나에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노오력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효력이 없다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그 시점, 아이러니하게 나는 강남에 살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강남에보낸 지난 5년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 노력 신봉자로 살았을 것이다. 평생의 동반자로 여겨 쉽게 내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애를 쓴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더 이상 노력에게 이콜이라는 엔터값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치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것도 노력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강남으로 이사 온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깨달은 건 물론 아니었다.


5년 전 그때, 내가 바람이 들었다는 가족의 질타와 견딜 수 있겠냐는 친구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내가 한 결정은 세상 무결한 단어, 노력에 대한 가장 고귀한 찬사였다. 그 시점 나는 인생 어느 때 보다, 노력이라는 키워드에 꽂혀있었다. 알라딘의 원숭이 아부가 램프를 앞에 두고 보석에 매료되어 그 뒤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그 보석을 가지려고 손을 뻗었듯, 나는 홀려있었다.

좋게 말하면 용감함, 냉정히 말하면 크나큰 똘기로, 나는 적진의 한가운데 뛰어들었다. 그때까지 내 평생 들었던 강남에 사는 부자 놈들은 나쁘다는 편견을 확인하거나 깨고 싶었다. 한편에는 그곳에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 사는지 몰라도, 대체적으로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니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데, 적도 몰랐고 나도 몰랐던 나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더 무모했고, 그때 내가 살고 있던 지역에서 조금 더 좋은 환경 도전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게임의 가장 어려운 맵에 입장했다.


해보고 안되면 후퇴한다 라는 전략을 세웠으나, 5년 동안 주어진 3번의 탈출 기회를 나는 살리지 못했다. 들어올 때는 나 하나의 의지면 되었지만, 나갈 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한 대가였다.





이전 02화 그게,태어나면서부터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