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평범해지는 것과 특별해지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운 가에 대해서 고민을 참 많이 했다. 더 쉬운 쪽을 선택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남들이 하는 것을 하는 척이라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에서 평범을 추구하는 듯했으나, 나다움을 찾는 것에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쓰고 보니 엄청난 모순 이것 같은데, 모두가 말하지 않을 뿐 찾고 있는 유니콘 아닐까?
대중 가운데 보면 평범하지만 내 이름 석자, 나에게는 특별한 인생.
우리는 크면서 평범의 기준, 즉 저 정도는 해야지 라는 푯대를 주변에서 찾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난 존재와 내가 다른 출발선에 서있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게 되었다. 나보다 11분 늦게 태어난 동생과 나는 이란성쌍둥이였고, 이미 이 점에서 나의 평범하기 그른 인생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 존재가 쌍둥이 동생이지만, 여러분에게는 언니, 오빠, 누나, 형, 동생일지도 모르겠다.
내 동생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게 뛰어났다. 외모, 두뇌, 눈치 아니 이런 거창한 단어가 아니더라도 일단 나보다 잘 울었다. 그래서 하나뿐인 엄마를 차지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나는 울지 않는 순둥이였다고 한다. 게다가 이름까지 착하게 살아라는 뜻으로 지어졌으니, 지금 와서야 이런 글을 쓰고 있을 뿐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불공평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여러분의 뒤통수를 만져보라. 동그라지 않고 납작하다면 축하한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인생의 첫 페이지를 보냈을 것이다. 보채지 않아서 많이 안아주지 않았던 아이로 말이다.
내 동생은 나보다 빨리 뒤집었고, 빨리 기었고, 빨리 말을 했다. 엄마 말로는 하루는 기어가고 있는 동생은 내가 부러운 듯이 처다 보면서 데굴데굴 굴러서 이동했다고 한다. 이러한 차이는 커가면서 더 노골적이 되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는 "아, 네가 ooo이 언니구나."라는 말로 내 정체성은 희미해졌고, 이 모든 것에 도장이 쾅쾅쾅 찍힌 날은 IQ 테스트 결과가 나온 날이었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짓궂게 IQ 테스트를 해서 결과지를 집으로 보냈다.
그날 그 숫자를 몰랐다면, 나는 내가 천재는 아니어도 나름 괜찮은 머리를 가졌다고 착각하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동생과 나의 IQ는 30 정도였다. 물론 동생이 높았다.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나는 풀 수 없는 수학 문제를 왜 저 아이는 풀 수 있는지. 조금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나는 종교를 갖기 전까지 절대적으로 성선설을 지지했고,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면 내가 아름답게 만드는데 일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게 패착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모자라게 지어진 것에 차라리 화를 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도 내가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모든 것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신념은 사실 신화였다는 걸, 끝까지 부인한 죄로 나는 병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