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Sep 07. 2024

갑자기 죽진 않을 거예요, 다만...

외상이 없는 환자의 병원 생활이 대부분 그러하듯,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흘러갔다. 게다가 나는 뇌가 쉬어야 하고, 몸은 안 써야 편측 마비가 풀릴 수 있다는 지명은 받은 터라 책도 읽지 않고 링거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을 구경했다. 사실 병원에서는 그나마 뇌와 몸을 혹사시키지 않는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퇴원하고 나서부터라는 것에 이견은 없었다. 

며칠
 동안 꿈쩍도 안 하고, 혈류 순환 수액이라는 것을 맞은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측 저림 증상은 점차 사라져 갔다. 그리고 닥터김이 처방해 주는 뭔가 성능이 보이는 빨간 알약도 효과가 있는 듯했다. 인간은 진짜 간사한 게, 편측 마비가 심해지고 심장까지 마비될 기세가 조금은 누그러진 듯 보이자 다시 회사 생각과 욕심이 마음속에 꽈리를 틀었다. 


퇴원을 하고도, 주기적으로 닥터김을 만났다. 그때마다 닥터김은 


"로딩 많은 그 회사 아직도 다녀요? 계속 다닐 거예요?" 


라고 물었다. 그럼 나는 본질을 즉시 하고 싶지 않아 엉뚱한 대답을 하곤 했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주는 편이거든요."


그럼 닥터 김은 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니 인생, 어쩌겠니 라는 눈빛으로 


"그럼, 약을 먹으면서 돈 벌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보죠." 


라고 시니컬하게 대답하고는 했다. 


나는 내가 아직은 젊고 정신력이 강해서(혹은 욕심 많아서), 몸이야 어찌 저찌 끌고 가면서 가끔 달래주면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니 그렇게 교만할 수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입원 첫날 들었던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던지 이제는 그렇게 살면 뇌가 견딜 수 없어요."라는 말에도 나는 크게 내 삶을 바꾸지 못했다. 솔직히, 똑같이 뇌를 혹사시키면서 살다가 편측 마비가 발작까지 가기 직전까지 가면 닥터김을 찾아 뇌혈류 순환 수액을 맞았다. 그니까 의사의 진단과 처방 따윈엔 관심도 없이 위기 상황들만 지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렇게 2년을 넘게 연기를 했다. 병원에 다니는 것만으로 내 몸을 엄청 위하고 있는 척 말이다. 닥터김이 했던 말 중에 내가 딱 듣고 싶은 말만 편집해서 나는 기억을 하곤 했다. 


"갑자기 쓰러져서 죽지는 않을 거예요."


라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법으로 살아도 괜찮을 거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죽지는 않는다는 말에 야근도 도맡아서 했고, 업무상 전화도 열심히 당겨 받았다. 발작증상이 조금 보이면 기존약보단 센 비상약을 털어 넣고 계속 일했다. 나쁘지 않은 급여에 나쁘지 않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나는 닥터김의 말을 깨닫게 되었다. 우측 저림이 마비로 번지고 신경 발작까지 이어져서 심장이 위협받는 순간이 더 자주 발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죽을 일은 없다는 말에는 서서히 죽어 갈 수는 있다는 말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