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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Aug 10. 2024

뇌를 혹사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Disorders of autonomic nervous system, unspecified”


입원수속을 하고 병실에 도착해 보니, 내 베드에는 내 병명이 붙여져 있었다. 어렵게 쓰여있지만 뭔가 Disoder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뒤, 병원에서 보낸 문자에는 나의 정확한 병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내가 되어 있었다. 


환자분의 진단명은

1) 편두통 의증

2) 편마비 성 편두통 의증

3) 자율신경 실조증(교감신경 항진증)


가족력이 있고 특정 유발요인이 있습니다. 편두통은 한쪽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뇌혈류 및 뇌신경의 이상입니다. 뇌혈관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주변 뇌신경이 발작을 하는 질환입니다. 편두통은 소아, 성인, 중노년 시마다 증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계절별로 증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경찰이 범인을 찾듯이 1년 넘게 찾아 헤맨 그놈의 이름이었다. 이제 놈은 정체가 밝혀졌으니 드라마처럼, 정의가 구현되고 헤피엔딩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투명 망토를 입은 적과 싸우다가 내가 적의 투명 망토를 밟아서 적의 투명 망토가 벗겨진 기분이랄까?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녀석의 정체를 알았으니 나는 완치가 되고 다시는 이번 입원 후에는 이 병원에 다시 안 와도 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아직 내가 이 병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착각이었다. 


입원 첫날, 또다시 여러 검사를 하고 다음 날 아침 다시 닥터 김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도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무언가를 써야 된다는 지령이 떨어졌다.


1)   당신의 진단명은?

2)   병의 원인은? (가족력/사고 습관/생활 습관)

3)   개선할 방법은? (사고 습관 고칠 점/생활 습관 고칠 점) 


요즘 시대에 종이에 글을 쓰는 아날로그적 방법이 치료절차에 포함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했으나, 또 왠지 이렇게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1번 항목은 어제 신경과에서 보낸 문자를 보며 진단명을 채워갔다. 입에 잘 붙는 단어들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증상에 대해서 묻는다면 대답해야 할 익숙해져 가야 할 단어들이었다. 2번 질문의 답을 써 내려갈 나는 흡사 심리상담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닥터김에 따르면 병이 발현된 시발점은 코로나 백신이 맞지만, 병을 악화시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애기였기에 나는 내 사고습관과 생활습관에 대해서 돌아보았다.  


평소에 나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답이 뭔지, 적어도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뭔지 계속 고민을 하는 편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나로 하여금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모든 것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이었다. 즉, 조금이라도 내가 혹은 내가 속한 조직이 발전한다고 느끼지 않으면 실로 많이 답답했다. 이런 사람들을 네 글자로 완벽주의라고 한다. 나는 완벽주의라는 사고 습관에 대해서 욕을 먹고 싶지 않았기에 굉장히 순화해서 아래와 같이 닥터김이 준 2번 문제를 풀었다. 또한 생활습관이라는 단어 또한 칭찬받을만한 점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되었다. 


사고 습관: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며 스스로를 압박하고 노력을 멈추지 않음.’


‘생활 습관: 누워서 책 보기, 새벽에 불 안 키고 휴대폰 보기, 일주일에 3-4번은 배달음식 시켜 먹기, 회사에서 계속 의자에 앉자 있고 따로 운동하지 않음'


여기까지 쓴 나는 내가 그다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를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약간 억울해지기도 했다. 저런 사소한 것들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병의 원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는 삶의 패턴이었다. '게으른 완벽주의'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병을 겪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나도 이전에는 저렇게 사는 게 괜찮았는데, 이제 괜찮을 수 없고 변해야 한다는 점이 이해는 되었지만 쉽게 납득되지는 않았다. 


닥터김이 내준 마지막 질문에 다다른 나는 고민은 조금 더 깊어졌다. 마지막 질문에서는 위에 쓴 사고 습관이나 생활 습관에서 고칠 점을 찾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방법론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걸 의사 선생님이 알려줘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조금의 반발심도 들긴 했지만, 나는 놀랍고도 빠르게 출제자의 의도에 적합한 정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정말 내가 변해야겠다 아니 변하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소위 말해 육체와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은 이렇다는 말을 써보았다. 


사고 습관 고칠 점: 지금의 상태에 감사하기, 발전하고 있어 보이지 않을 때도 괜찮아 하기

생활 습관 고칠 점: 건강한 음식 먹고, 규칙적인 운동하기
 
이 걸 쓰면서도 나는 과연 자신이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스쳤지만, 일단 닥터 김에게 책 잡히지 않을 만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종이 작성을 마치고 조금 기다리자 내 이름이 불렸다. 


“지금 일하는 게 싫으세요?”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뇌신경과에서 이런 말로 진료를 시작할 수 있는 건가 싶던 놀라웠던 나의 진짜 고민은 얼마나 솔직히 이야기해야 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못할 정도의 일은 아니니까 참고하고 있지요."


닥터 김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환자분이 왜 그렇게 뇌를 혹사하고 있는 원인을 찾아야 되는 사람이라 이런 거 물어보는 거예요. 지금 쓰시는 내용으로 봤을 때는 정확한 스트레스 원인은 적지 않으신 것 같아 보이기도 해서요. 저도 지금 환자들이 하루 종일 아픈 얘기하는 거 듣기 싫어요. 다만, 이 사람이 왜 아플까 원인을 찾아서 퍼즐 맞추기를 꼬치꼬치 하는 과정을 좋아하죠. 하시는 일에서 본인이 그 일을 할 만한 이유 하나만 찾으면 돼요."


“아, 그런가요? 그냥 늘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다만 생계를 위해 하는 거죠. 근데 생계라는 게 저에게 충분히 설득될만한 이유가 아닌 걸까요? 그런데 이게 신경하고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본인의 병명은 가장 크게 편마비 성 편두통이에요. 원래 가지고 있던 건데 백신을 이후 더 작은 자극들에도 발현 되게 된 거죠. 즉 작성해 주신 페이퍼에서 병의 원인이라고 쓰여 있던 부분이 사실 병을 더 악화시키는 원인이라는 뜻이 되는 거지요 “


“더 작은 자극이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고온 다습, 시끄러운 소리를 포함한 외부 자극과 정서적인 내부 자극을 말하는 거죠. 지금 환자분의 사고 습관이 자꾸 뇌를 건드린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지금 생각을 멈추고 뇌를 쉬게 해 줘야 본질적으로 증상 발현 확률을 낮출 수 있는데 생각이 잘 안 멈춰지죠?"


“생각이 멈춰지는 건가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 의지로 생각을 멈출 수 있나요?”


“의지로 생각을 바꾸는 건 도인 수준은 돼야지 하죠. 우리 같은 일반인은 못해요. 다만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드라마를 보거나, 멍 때리거나, 게임 같은 걸 해요. 골치 아픈 것에서 다른 쪽으로 관심을 전환하는 거지요. 환자분, 쉬는 시간에 뭐해요?”


“자기 계발서 읽거나, 강연을 듣습니다. 저는 시간이 아까운 게 싫어서 … “


닥터 김은 이러니 뇌가 과열이지 라는 표정을 선사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오른쪽 마비 증상은 지금 어때요? 처음 온 날 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아직 얼굴과 목 뒤는 계속 저림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어제 순환 수액을 써서 증상이 좀 완화된 걸로 보이고요. 어제 검사 결과를 보니 목 7번과 허리 4,5번에 디스크가 있거든요. 일단 디스크가 증상의 주된 원인은 아니지만 통증을 악화시키는 원인 중에 하나 일 수 있으니, 오늘부터는 도수치료도 좀 받아보실게요. 제가 하고 있는 수액이나 도수 치료는 증상 완화를 위한 것이지만, 환자분이 직접 생각을 줄여서 뇌가 자극이 안 되는 것을 목표로 하셔야 해요”


닥터김의 말에 의하면, 나는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뇌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담배를 끊는다거나 콜라를 마시지 말라는 등의 액션이었으면 조금 더 쉬웠을 텐데 생각을 줄이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주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 동안 생각을 해왔고, 생각에도 흘러온 길이 있을 텐데, 그 물줄기를 바꾸라는 것이다. 이때 까지도 나는 백신이 내 삶을 조금 귀찮게 만들었을 뿐, 완전 내가 다른 사람처럼 살아가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속 깊이 동의를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줄이려면 어떻게 노력해야 될지에 대해서 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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