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신경과라니 헛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나는 이제 그게 한의원, 치과 아니 그게 피부과여도 상관없으니 오른쪽 마비의 실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무언가를 찾아야 만 했다.
“오늘 처음 왔는데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을까요?”
“제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이후 편측 마비, 우측 마비가 있어서요.”
“아, 네. 혈압 먼저 재시고 이 종이 먼저 작성 좀 부탁드릴게요.”
간호사는 마치 이런 증상을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는 듯이 대했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증상을 없앨 증거를 확보한 것처럼 좋아했다. 혈압을 재고 자리에 앉아서 간호사가 작성해 달라고 준 종이를 보았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진료실 안에서 환자분들이 본인 불편한 증상을 자세히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진료 전 증상을 미리 적는 것은 최대한 환자분의 증상을 이해하고 의사한테 물어보고 싶은 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 적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귀찮더라도 자세히 적어주시면 진료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1. 언제부터/ 어느 부위가/ 어떻게 불편하지 자세히 작성해 주세요.
2. 저한테 묻고 싶은 질문들을 적어주세요.
보통 병원에서는 체크 박스 같은 것을 체크하라고 하는 것에 비해, 여기는 요구하는 정보가 디테일했다. 그렇기에 뭔가 더 신뢰가 가는 것도 솔직히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대충 하는 법이 없던 나는 저려오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페이퍼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작년
l 여름에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며칠 뒤, 오른쪽 턱에 마취주사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발생하여 오른쪽 몸 전체로 퍼져나감
l 대학병원 응급실 내원 후 뇌졸중으로 의심되어 신경과 입원 후 MRI 진행했으나 뇌졸중이 아니라고 하여 아스피린 처방 후 퇴원
l 가을, 겨울은 이따금씩 오른쪽 마비 증상이 왔다 갔으나 전체적으로 괜찮아졌다고 판단
올해
l 동일한 현상이 발생 다만, 마비가 오른쪽 몸에서 멈추지 않고 심장 쪽으로 번져서 호흡곤란이 와서 응급실 갔으나, 원인이 없다고 하여 근육이완제 맞고 퇴원
l 며칠 뒤, 동일한 호흡곤란 증상이 와서 다시 응급실 방문하였으나 또 원인이 없다고 하였고 담당의사가 정신과 방문 추천함
l 호흡곤란 형태가 공황장애와 유사하게 보여서 정신과 방문하여 처방받았으나 저림이 호전되지 않음
l 내과, 가정의학과, 한방병원, 산부인과 등 방문하였으나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한 상태
l 현재, 오른쪽 턱부터 발가락 끝까지 마취된 느낌이 계속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태
여기까지 질병 보고서를 작성해 버린 나는 2번에서 질문에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의사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라……”
Q. MRI 검사를 여러 번 했는데 이상 없다고 나왔습니다. 여전히 뇌 이상일 수 있나요?
Q. 공황장애 일 수도 있다고 해서 정신과도 방문했었습니다. 호흡 곤란이 공황발작이라면, 오른쪽 마비 증상은 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는 걸까요?
나는 ‘뇌신경과’를 찾아왔다는 사실보다 내 증상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 줄 누군가를 찾으러 왔다는데 집중했다.
“다 쓰셨을까요. 그럼 핸드폰에 녹음 어플 좀 켜 두실게요. 진료 내용 녹음하실 거라서.”
“네? 녹음이요?”
“네, 원장님께서 진료 후에 다시 들어 보라고 하실 거예요.”
갈수록 점점 특이한 병원에 잘못 온건 아닐까 생각을 하던 때, 내 차례가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의 방은 한쪽 벽면이 두꺼운 의학서적들로 가득했고, 창문은 블라인드를 내려서 빛이라고는 형광등과 컴퓨터에서 나오는 빛이 전부였다. 우습게도 나는 이런 암실 같은 공간에 하루 종일 있는 의사가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빨간 버튼 좀 눌러볼까요?”
녹음 시작 버튼을 누르고도 37초가 지나도록 의사 선생님은 내가 방금 작성한 페이퍼를 읽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의사 선생님 앞에 명패를 스캔했다.
‘닥터, 김OO’
43초가 되자 닥터 김은 내가 정성껏 쓴 페이퍼에 큰 엑스표 2개를 쳤다. 그 단어는 MRI와 공황장애였다. 그녀의 첫 질문은 과연 저림 증상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로딩이 많아요?”
“네? 회사 업무 말씀이실까요? 이직한 지 얼마 안 돼서 좀 낯설긴 한데, 밤샘하고 그럴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지금 환자분 나이가 젊어서 그렇지 종이에 쓰신 증상만으로는 중풍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한 증상이에요. 이 신경병이라는 게 눈에 안 보이다 보니까 잘못하면 갖다 붙여요. 한의원에서는 기화열이 약하다고 하고 정신과에서는 우울증이라고 하고. 일단 몇 가지 검사를 해보고 다시 이야기 나누도록 하죠”
닥터 김의 첫인상은 오묘했다.
간호사가 내민 검사 리스트에는 비디오 안진 검사, 뇌혈류 초음파 검사, 신경 전도 근전도 검사, 기립성 심장 박동 검사, 적외선 체열 검사라고 쓰여있었다.
제일 처음에 진행된 건 비디오 안진 검사였다. 간호사는 마치 가상세계에 접속할 수 있을 것 같은 헤드셋을 머리에 씌워주었으나 눈앞에는 암흑만 있을 뿐이었다. 간호사는 헤드셋을 낀 상태로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누웠다 섰다를 반복시켰고, 검사는 약 3분 정도만 소요되었다. 간호사는 그 자리에서 녹화된 영상을 보여주며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었는데, 요약하면 안구가 떨리고 틱 같은 게 있어서 신경이 불안하다고 하는 것 같았다.
뇌혈류 초음파 검사와 근전도 검사, 기립성 심장 박동 검사는 누워서 동그란 패치를 붙여서 진행했기 때문에 새롭지는 않았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병원에서 이런 검사들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그저 감사했고, 왠지 이 검사들이 다 끝나면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적외선 체열 검사를 위해서는 속옷만 제외하고 모두 옷을 벗어야 했다. 뭔가 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이 미로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거라고 믿고 싶었다.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자 닥터 김은 엑스레이 결과지 같은 사진을 앞에 있는 스크린에 띄웠다.
“원래 사람들의 혈류 속도가 40이 정상인데, 지금 환자분은 50이거든요. 많이 빨라요. 그리고 환자분 자율 신경이 어느 정도 기민해져 있냐면, 이 사진이 정상인데 환자분 지금 이래요.”
닥터 김이 보여준 스크린에는 적외선 체열 검사 결과로 보이는 사진이 두 장 있었다. 정상인은 온몸이 초록색을 띄고 있었고 나의 검사 결과를 말해주는 사진은 말 그대로 시뻘건 색이었다.
“왜 저는 저렇게 빨간색으로 찍히는 건가요?”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교감신경이라고 하는 건, 좀 어려운 내용인데 쉽게 설명드리면 무조건 차의 엔진이 과열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
“엔진 과열이요?”
“환자분이 뇌에 쉼을 주지 않고 계속 쓰신 바람에 연결된 신경까지 고장 났다고 생각하시면 쉬울까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업무 로딩을 물어보고, 엔진 과열 이야기를 해서 또 스트레스 이야기인가 싶던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어릴 때 애기를 물어보는 닥터 김에게 뭔가 들킨 것 같기도 했지만 뭔가 이 의사는 다를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어, 네. 초등학교 때 길 가다 어지러워서 쓰러진 적 몇 번 있었어요. 그땐 빈혈이다 그런 애기를 많이 듣고는 했는데 커가면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편두통 DNA는 원래 가지고 있었는데 증상이 발현이 안되다가 외부 자극이 오면서 증상이 발현된 거거든요. 일단 백신이 기존 편두통을 악화시킨다는 논문이 쫙 나와 있어요. 일반인들이 모를 뿐이죠. 백신 맞고 편두통 심해진 사람이 한 두 명인가요? 그렇지만, 다들 본인이 예민해서 그렇다면서 참고 버티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코로나 백신이 환자분이 원래 가지고 있던 편두통 DNA를 자극한 거고 백신 맞기 전엔 견딜만했던 사소한 자극들에도 이제는 신경이 반응하게 되었다는 뜻이에요”
응급실과 수많은 병원에서 만났던 의사들과 달리 백신이 접종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줄 수 있다고 말해 준 것 만으로 나는 증상이 다 사르르 녹아내린 것처럼 느꼈다.
“이 DNA가 특정한 상황에 처해지면 여기 쓰신 공황장애 같은 발작이 일어나는 거 거든요. 다시 뇌 MRI도 찍어보아야 할 것 같고 며칠 입원하셔도 되겠어요?”
“입원이요?”
오른손이 저리는 것을 넘어 덜덜 떨리는 그 순간에도 나는 회사를 생각했다. 내가 없어도 회사야 잘 돌아가겠지만, 며칠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내 자리가 없어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나를 엄습했다.
“근데 저 MRI는 많이 찍어봤는데 이상이 없다고 나오긴 했었어요.”
나는 어떻게든 약만 타고 회사로 가려는 마음에 항변해 보았지만 닥터 김의 다음 말은 나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MRI라는 게 러시안룰렛 같은 거예요. 그때 찍은 것은 딱 그 시점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 앞 뒤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거예요. 찍는 시점에 증상이 찍히면 치료를 할 수 있는 거고, 아니면 ……”
나는 여태까지 MRI까지 했는데 이상이 없다는 것으로 나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에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닥터 김의 말을 들으니 다시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일이면 될까요?”
그 와중에도 오늘 잡혔던 미팅을 며칠 미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지금 우측 저림 증상이 심해서 오셨는데, 그 증상이 없어질 때까지 계시는 게 제일 좋죠. 뭐 걱정되는 일 있어요?”
“입원하면 증상이 다 사라질 수 있나요? 작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계속 있었거든요. 그래서 영영 고치기 힘든 건가 싶었어요.”
“고쳐보죠, 고쳐보면 되죠. 뭐.”
닥터 김은 환자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 말하는 것 같지 않고, 스스로 정말 이 병에 대해서 자신이 잡아볼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내 역할은 단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