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브레이킹 아니고 아이스 메이킹
썰렁 개그에 재미가 붙었다.
싫으면 시집가라는 헛소리처럼, 미야코지마에 가고 싶다는 언니에게 안마의자 사러 갈 거냐는 실없는 소리를 한다. 드립커피 수업에서 강사의 시범을 지켜보다 옆에 있던 수강생이 깨달은 듯이 "안에(서)부터..."라고 하는 순간 참지 못했다. "아내부터, 남편까지."
순간의 정적.
강사는 내게 -농담조로-나가라고 했다.
재빠른 판단이나 웃음, 혹은 비웃음도 쉽게 뱉지 못하게 만드는 썰렁 개그. 이처럼 반응 자체를 마비시켜 공백을 만드는 썰렁함이 온몸으로 느껴질 때 은밀한 희열을 느낀다. 이렇게 고백하면 변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실없는 농담은 한순간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든다. 괜히 이름이 썰렁 개그가 아니다. 아이스 브레이킹이 아니라 아이스 메이킹인 셈이다. 그런데 일순 꽁꽁 얼어붙은 공기가 황당함과 함께 와장창 깨지는 감각이 바로 썰렁 개그의 묘미다. 어이없는 소리에 헛웃음이라도 꺼낸 것에 자존심 상하고, 집에 가는 길에 한 번, 샤워하다가 두 번 생각나서 콧방귀 뀌면서 고개를 젓지만 떠올린 것 자체로 또 자존심 상하는 개그다. 그거면 충분하다. 내가 원하는 건 작은 웃음, 어이없어도 털어내듯 내뿜는 웃음 한 줌이다. 이런 유머야말로 세상에 필요한 윤활제가 아닐까?
망가진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해 보겠다고 미소를 띠어보는 사람에게 지금 웃을 때냐고 타박하는 사회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하니, 일단 배라도 채우고 기운 내보려는 사람에게 지금 밥이 넘어가냐고 핀잔을 주는 나라다. 대한민국 현대 사회에서 체하지 않으려면 유머를 장착해야 한다. 유머. 이것은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주는 갑옷, 말랑하지만 질긴 방패다. 그리고 최선의 방어가 공격인 만큼 유머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건강한 방어기제로도 유머가 떡하니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실없는 소리, 영양가 없는 짓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유치한 개그를 즐길 것이다. 기성세대가 열심히 부숴놓은 얼음을 다시 주워다 꽁꽁 얼려볼 테다. 급속 동결 뒤 사르르 녹는 순간에 세상 모든 고민이 가볍게 녹아 사라질 수 있도록. 우리 주변에 가벼운 유머라도 좋으니 숨통을 트여줄 웃음이 즐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