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여름의 공지
여름은 더위 속 맑음
여름은 수박과 겨자
여름은 H2O가 깽판 치는 시간
여름은 우르릉 쾅쾅
그리고 여름은
깨달음의 계절
올해는 처서 매직이 없다지만
한여름 더위는 슬슬 꼬리를 뺄 준비 중인 듯하다
지독한 여름은 아직 뒤돌지 않았다지만
올여름 깨달은 것들을 미리 적어볼까 한다
그러다 보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여름도,
녹진하고 끈적하고 찝찝하고 시원 쾌청한 이 계절도
예의상 혹은 눈치껏 물러날 생각을 하겠지.
[깨달음 하나, 우리는 모두 미생]
그래서 실수하고 오해하고 서로를 비난한다
그러니 내 실수에 괴로워할 필요도,
남의 행동을 오해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나와 남을 비난하며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도 없다.
완벽한 사람, 흠 없는 인격이란 뜨거운 아아처럼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대전제 위에서
각자의 빈틈이 개개인의 개성을 만든다
나의 결함을 사랑하자.
그것이 바로 나. 나만의 무기.
[같은 행동 다른 해석, 요지경 세상 속]
눈먼 자들이 다각도에서 코끼리를 만졌을 때
-코끼리는 무슨 죄-
모두 코끼리를 다르게 묘사하는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같은 행동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나쁘게 해석하고,
어떤 사람은 호의로 받아들인다.
그 판단의 차이는 그 사람의 경험을 반영한다.
락커룸에서 어떤 사람이 라디오를 들으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의식이나 의도 없이 거기서 가장 먼 자리에 있는 드라이기를 쓰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 행동을 '본인의 라디오 청취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선의'로 해석하며 기뻐했다. 얼떨떨했다. 만약 '누가 뭘 듣든 말든 드라이기 소리 갈기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해석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저 놓아두기로 했다
내가 실수하면 배울 기회,
누가 잘못하면 그러려니,
누가 비난하면 인간의 불완전을 떠올리기로 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땐]
보다 큰 것을 생각해 보자
가령 구름처럼 커다랗고 폭신한 솜사탕,
울창한 태산과 파도치는 바다,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우주.
드넓은 우주 속 지구, 그 안의 우리가 얼마나 작으며
그 안의 고민은 또 얼마나 희미할지 생각해 보자
그렇게 가볍고 작게 걱정과 슬픔을 흩날려보자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인간을 죽게 만드는 건 뭘까?
무망감 죄책감 슬픔 고립 고통 가난-
이런 것들을 가졌기 때문-have이기보다
가장 중요한 게 사라졌기 때문-gone이 아닐까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없음, 무관심이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 오늘 사랑하자!
강쥐를 냥이를 커피를 친구를 가족을,
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더위를 날려 보내자!
끝나길 간절히 빌었던 한더위가 지나가도
여름이 준 깨달음은 심장에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이상, Notices of SU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