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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헤매는 밤, 나와의 대화

조금 돈 것 같아도 도움이 된다.

by 장대지

오늘의 고민:

이번 주도 어찌어찌 보냈지만 다음 주에 또다시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괴롭습니다.

자꾸만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가 저를 붙잡아요. 마음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라고, 잘 들어주고 따라주라고,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내게 말 거는 일은 점점 사라질 거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들어주고 싶지만, 일을 그만두면 돈은 누가 버나요? 마음에게 대답했어요. 일을 그만두면 돈은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고 돌아오라고요. 그랬더니 일단 그만두면 다음에 일이 잘 풀릴 거라는데 이거 그냥 자기 합리화 아닌가요? 제 직감을 따라도 될지 모르겠어요. 사실 그동안 마음의 소리를 듣다 말다 했거든요. 근데 마음의 소리를 따랐을 때 일이 잘 풀렸는지, 안 따랐을 때 잘 풀렸는지 기억이 안 나요. 솔직히 말하면 제 직감에 믿음이 안 가요. 어쩌면 좋을까요?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하기 싫은 일을 앞둔 채 이 일을 계속하며 돈을 벌어야 할지, 직감을 믿고 그만둬도 될지 고민이시군요.

그런데 돈도, 일도 문제지만 그전에 먼저 스스로 믿고 의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신 것 같네요. 일단 일을 그만두면 다음은 잘 풀릴 거라는 막연한 희망과 자신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감이 믿음을 줄 만큼 충분한 경험적 데이터를 쌓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두거나, 반대로 무조건 계속 일을 하라고 딱 잘라 섣불리 말하기는 어려워요. 사연에 나오지 않은 깊은 배경과 복잡한 환경이 있을 테고, 이게 고민일 만큼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선택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확실히 알아둬야 건, 지금 어떤 선택을 하든 언젠간 또 다른 고민이 사연자님을 괴롭힐 거라는 사실이에요. 그때도 마음과 직감은 사연자님에게 어떤 말을 할 테고, 사연자님도 그 말을 들을지 말지 고민할 겁니다. 중요한 건 그때 내 마음을 경청하고 직감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사연자님의 삶이잖아요.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잘 알고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믿음직한 직감을 키우는 일입니다. 마음의 소리를 받아 적고 따라야 하는 이유,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고 일을 접거나, 이직을 하거나, 최소한의 기한을 정해 일을 하는 등 다양한 선택지가 떠오르실 거예요. 실험을 해보세요. 직감을 따른 다음 인생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어쩌지 고민하시지만, 사실 지금도 인생이 잘 풀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고민인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계속 안 풀린다고 해서 더 손해 볼 건 없지 않나요? 일이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사연자님 내면에 있는 지혜를 끌어모아 직감의 목소리를 대변해 보세요. 그렇게 하면 단순한 자기 합리화나 희망고문이 아닌 명확한 해답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어떤 선택을 하든 사연자님이 자신 있게 스스로를 믿고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돌아온 답변:

맞아요. 저는 저를 믿지 못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제가 하자고 한 선택을 하며 살아온 게 지금의 저겠죠. 그런데 썩 만족스럽지 않아서 불만인가 봐요. 늘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면서 더 참지 못한 저를 탓하고 후회해요. 그래서 늘 후회를 만드는 제 직감에게 믿음이 안 갔던 거고요.

그런데 당시의 저도 당시의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참을 만큼 참고할 만큼 했겠죠. 지금의 제가 그러하듯이. 그때 참고 계속했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 같기도 해요. 어쩌면 더 마음에 안 드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 모르죠. 쓰다 보니 후회가 가장 쓸데없는 것 같네요.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은 저에게 '어쭙잖은 일에 길들여지며 더 시간 낭비하기 전에 일단 당장 하기 싫은 그 일을 그만두고 네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에 온 시간을 쏟아!'라고 해요. 그럼 저는 이렇게 답해요. 이건 어쭙잖은 일이 아니라 네가 살아 숨 쉬도록 돕는 최소한의 생계유지장치라고, 여기서도 충분히 배울 점이 있다고,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바엔 이거라도 하라고 네가 부추겨서 하게 된 일이라고, 너도 책임이 있다고, 그러니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그러면서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조금씩이라도 병행해 보자고, 그러다가 정 안 될 것 같을 때,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잘 풀리고 커지고 욕심이 나면 그때 차근차근 '지금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들'을 정리해 보자고, 기약이 없으면 또 불쑥불쑥 역정을 낼 게 뻔하니까 그럼 올해까지만 해보자고, 그렇게 대꾸했어요. 그러니까 조금 잠잠해지더라고요. 지금은 이게 맞는 것 같아요. 마음의 소리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이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잘 풀리면 화두를 던진 직감을 한층 더 믿게 될 거고, 안 풀리면 다시 마음의 소리와 얘기 잘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되겠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해볼게요, 제 안의 지혜를 찾아 공고히 다지는 실험. 실패하든 성공하든 오늘보다 내일 더 강해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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