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죽여 아니 살려, 걷어차 아니 대접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민에 총량이 있는 건 아닐까?'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고 고민구덩이에 빠져 지내는 시기가 있다. 시간이 지나 고민들이 저절로 사라지거나,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서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고민이 끝나면 다음 고민이 시작된다. 사서 고생이라는 말처럼 사서 고민을 하는 격이다. 고민거리가 사라지면 평화로운 상태를 그저 즐기면 그만인데, 그 한적한 공백을 견디지 못해서 고민을 사 온다. 고민이 없을 때 오히려 불안해진다면 고민중독을 의심해 보자. 고민이라는 행위가 주는 답답한 안정감에 취한 건 아닌지 본인을 돌아보자.
고민에 빠져있으면 무언가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리고 보통 고민은 해야 할 일을 앞두고 피어오른다. 일단 시작했거나 이미 집중하고 있다면 고민이 끼어들 틈은 없다. 그런데 그 할 일을 미루고 싶어서 고민을 핑계로 미적거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생각을 재빨리 선택으로 돌리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고민은 오래가지 않는다. 물론 고민 대부분이 쓸데없다는 말을 모두 알지만, 그걸 멈추기란 쉽지 않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는 어려운 것들 중 하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간단한 실천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첫 번째는 시각화다. 드넓은 들판을 상상해 보자. 시원한 바람에 풀잎 스치는 소리뿐인 광활한 들판. 이제 내 안의 고민들을 꽉꽉 뭉쳐 축구공 크기로 동그랗게 만들자. 그대로 발 앞에 내려놓은 다음, 발돋움 한 번 해준 뒤 시원하게 뻥- 저 멀리 걷어찬다. 손을 눈썹 위에 붙여 그늘을 만들고 점이 되어 사라지는 고민 덩어리를 감상하자. 유후, 나이스 킥! 외쳐주고 돌아서서 할 일 하러 가자.
조금 나아졌는가? 택도 없다면 두 번째는 고민의 총량을 줄이는 방법이다. 고민 총량의 법칙. 서두에 던졌던 의문처럼 우리는 어쩌면 일정량의 고민을 달고 살아야 기묘한 안정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이어트 중에 먹고 싶은 음식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양을 조절하는 방식처럼, 고민을 피할 수 없다면 적정량만 하는 것이다.
우선 하루동안 내가 한 고민들을 모두 적어보자.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는 게 좋다. 적다 보면 내가 이렇게 고민을 많이 했나 혹은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구나, 등등의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중 인생에 꼭 필요한 고민이 있다면 주목해 보자. 그 개수를 세어보자. 없거나 많아야 한두 개일 것이다. 그것을 기준으로 고민의 총량을 정하면 된다.
여기서 꼭 필요한 고민이란 인생의 방향을 바꿀 만한 파급력이 있는 고민이다. 한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거나, 이미 결정한 줄 알았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마음의 소리 같은 것들, 가령 '퇴사할까?', '워홀 갈까?', '헤어질까?' 같은 것들이다. 이런 고민은 진지한 태도로 대접하고 결판을 지어야 한다. 반대로 불필요한 고민은 시급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고민이다. 당장 의미가 없거나, 이미 선택하지 않기로 마음의 결론을 내렸거나,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 가령 '실수하면 어쩌지', '운동하러 갈까, 말까', '내일 비가 오면 어쩌지?' 등등이다. 이런 고민은 저절로 사라지기도 할뿐더러, 그렇지 않더라도 빠른 선택이나 현실적인 계획으로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고민을 적어보며 내가 주로 하는 고민을 정리했다면 이제부터 매일 한번, 내가 한 '진지한 고민의 개수'만큼만 고민하기로 하자. 유용한 고민을 하루에 하나도 안 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고민 따위 안 하면 된다. 진지한 고민이 5개인 사람이 있다면 매일 5가지 고민을 말 그대로 사서 하면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늘의 고민'을 적는 시간을 가진다. 그게 왜 고민인지도 적어본다.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고민이 없는 것이 고민이 되는 날까지 어디 한 번 내 안의 고민을 적극적으로 대해보자. 내 안의 분노에게 차 한 잔 대접하고 돌려보내라는 격언처럼, 내 안의 고민에게 진지한 대우를 해주고 멀리 떠나보내자.
정리해 보자. 우선 우리가 하는 고민의 10개 중 9개는 쓸데없는 성질임을 인정하자. 그럼에도 고민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고민이 드는 순간 행동할지 행동하지 않을지 선택을 내리면 그 고민은 사라진다. 그런데도 고민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행동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인정하기 싫다면 당장 행동하면 된다. 인정했다면 남은 찌꺼기 같은 고민은 축구공으로 압축해 멀리 걷어차 버리자. 그런데도 고민이 스포츠가 되고 취미가 되어 자꾸만 할 일을 방해한다면 어디 한 번 그 고민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해 보자. 방문록을 쓰듯이 나를 찾아온 고민의 이름을 적어보자. 적어보면 별일인지 아닌지 판가름 난다. 정말로 내게 필요한 고민과 할 일을 거르고 걸러 마지막 산물만을 내 삶으로 가져오자. 그 결정체는 더 이상 고민이 아니라 내 삶을 바꿀 진지한 질문이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그저 할 일을 하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걸어야 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