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네요.
나이 서른, 약 350개월을 살아낸 몸과 정신.
멋 모르고 철 모르던 시절을 뺀다 해도 10년은 어른으로 살아본 나이.
강산도 바뀐다는 10년, 법 한 줄이 바뀌는 시간 10년.
변하는 건 본질이 아니라는 논의는 제쳐두어도, 어림잡아 뭐라도 할 성싶은 시간 10년.
그동안 나는 무얼 했나?
일을 해보고, 사랑을 해보고, 여행을 해봤다.
백수도 해보고, 실연도 해보고, 공부도 해봤다.
살면서 해볼 건 대부분 해보고, 느껴볼 만한 감정도 다 느껴본 것 같다.
경험을 자만하는 나이 서른.
어쩌면 이게 끝이 아닐까? 원래 인생이라는 건 뻔한 역사의 반복이 아닐까?
인류의 미래에 순수한 희망이나 욕망 어린 기대도 영 힘을 못 쓰는 나이가 되었다.
기대하기보다 어림짐작하고, 희망을 품기보다 산통을 깨는 게 편한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늘,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의 의의를 잊을 만하면 그 소리가 떠오른다.
살다 보니 내가 이런 것도 보네?
살다 보니 내가 이런 것도 먹네?
살다 보니 내가 이런 것도 하네?
미래는 우리의 상상 이상이라서,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래서 일단은 이러나저러나 더 살아보겠다고 하는 나이 서른.
그런다고 넘치던 생각이 감쪽 같이 사라지지는 않는 청춘,
삶의 무게를 가볍게 보기도 무겁게 견디기도 애매한 반쪽짜리 어른.
어리광과 젠체 사이를 양다리로 오가는 환절기 같은 나이.
나는 환절기가 좋더라.
얼죽아도 쪄죽따도 아니라 커피를 내리면 뜨겁게 마시다가 마지막엔 얼음을 타서 들이킨다.
차가운 바람에 언뜻 스치는 풀향기가 좋고,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새벽의 찬 공기가 좋다.
그러니까 서른은 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니 나의 마흔이, 여든이 궁금해진다. 역시 사람을 살리는 건 호기심이다.
하지만 미래는 멀었고 지금 가진 건 넘치는 생각뿐이니 이 생각들을 멋대로 적어보려 한다.
생각은 마음에서 오고, 마음은 영혼에 달려있다.
드는 생각을 쓴다. 쓰면서 마음을 읽는다. 읽으면서 영혼을 달랜다.
서른의 영혼은 어디로 향하나.
향 피운 연기를 지켜보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