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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Dec 21. 2022

딱 하나만 고르라면

올해가 가기 전에 

모든 과자를 매일 먹고 싶지만 먹은 만큼 살이 찌는 평범한 인간인지라 번뇌에 휩싸인다. 무엇을 먹어야 아쉽지 않을까. 나를 유혹하는 수많은 과자들이 일렬횡대로 서 있는 과자 코너 앞에서 나는 심각해진다. 이 고뇌는 편의점이 보일 때부터 시작되는데, 과자 쇼핑이 불만족스러운 날이면 편의점 문을 나서자마자 다음 쇼핑을 미리 걱정하고 있다. 나는 매일 편의점에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이렇게 선택해도 후회하고 저렇게 선택해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고 있다. 


여러 가지 중에서 뭘 골라야 할지 고민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일단 과자를 마주하고 나를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그것을 선택하겠다는, 과자 본능의 이끌림에 충실하고 싶은 날도 있다. 편의점을 문을 박차고 과자 진열대 앞에 우뚝 섰을 때 그날따라 유독 나를 보며 방긋 웃는 그것을 고르는 것이다. 일상에 변화가 많고 예측이 어려울수록 입맛은 보수화된다. 실제로 경기가 불황일수록 제과업계는 너무 새롭거나 일부만 즐길 수 있는 독특한 맛을 지향하기보다 일반적으로 많이 즐길 수 있고,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한 상품을 내놓는다. 


과자 고르기가 즐겁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마저도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날, 나는 서슴없이 '크런키'를 고른다. 올여름 소상공인으로서 첫걸음을 뗐을 때도 크런키와 함께했다. 크런키는 편의점마다 돌아가면 2+1 행사를 하고, 정가는 1000원이지만 마트에서는 800원 정도라 어디에서 사든 크게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가격 면에서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싸다고 여러 개를 사 놓으면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들켜 내 몫은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위치 보안은 필수다. 차량 내부 보관함의 자동차등록증 봉투 옆에 하나, 팬트리 제일 위칸 아이 기저귀 박스 옆에 하나, 사무실 책상 서랍의 줄자 옆에 하나,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은밀한 곳에 하나씩 놓는다.


크런키의 가장 큰 미덕은 일타쌍피에 있다. 초콜릿인 듯 과자인 듯 어느 것에도 편입될 수 없는 특징을 지녔다. 편의점 계산대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초콜릿 진열대에 가면 고급 초콜릿의 상징인 '페레로 로쉐'를 필두로 국내 판초콜릿의 시조새 '가나 초콜릿', 한입 초콜릿의 선두주자 'abc 초콜릿', '키세스', 미국에서 건너온 '엠앤엠즈'와 '밀카' 순으로 상단, 중앙에 비치되어 있다.  


사이드 자리에 ‘초코바’로 불리는 녀석들이 자리해 있다. 출시 당시에는 청춘을 상징하는 작명과 광고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제는 다소 오글거리는 느낌을 주는 1985년생 '자유시간'과 1990년생 '핫브레이크'가 있다. 이 둘과 함께 국내 초코바 3대장으로 꼽혔던 1997년생 '아트라스'가 있지만, 단종된 것인지 좀체 찾을 수가 없다. 자유시간과 핫브레이크가 너무 묵직한 초코바라서 등산이나 힘든 운동을 한 뒤에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면 '스니커즈', '트윅스'는 맛도 양도 가벼워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스위스 회사 네슬레에서 생산하는 초코 웨하스 바 '킷캣'과 1979년 크라운제과에서 이를 본떠 내놓은 '키커'가 쌍둥이처럼 엇비슷한 외양을 하고서는 나란히 있다. 그리고 그 옆에 2022 올해의 과자인 크런키가 있다.


일반적으로 초콜릿이 가느다랗게 센 한 방이라면, 크런키는 바삭한 과자가 함께 있어 묵직하게 단 맛이 번지는 게 장점이다. 이 탁월한 식감은 크런키볼, 크런키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크런키는 재작년에 빼빼로와 만나기도 했는데, 출시된 해에 1000만 개가 팔려 초코 빼빼로와 아몬드 빼빼로를 제치고 판매량 1위에 올랐다. 기세를 몰아 크런키 빼빼로 아이스바까지 출시됐으니, 크런키의 우수성은 과자 업계 전반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상가계약서를 쓰러 가기 전 나의 초조함이 날고 기는 공인중개사에게 들킬까 봐 의연해 보이려고 먹었던 한 입, (내 입장에서는) 이유 없이 우는 아이에게 벌컥 화내지 않으려고 깨무는 한 입, 더운 여름 사무실 짐의 마지막 박스를 나르기 전에 쑤셔 넣었던 한 입, 저녁 시간 빠르게 집안일들을 쳐내다가 잠시 돌아서서 맛본 한 입, 사무실 청소를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에 스스로 힘내자는 의미로 선물했던 한 입, 청심환이었다가 자양강장제였다가 비타민이기도 했던 그 한 입들이 있어 올해를 잘 버텨낼 수 있었다. 


내년에는 어떤 과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일들을 어떤 맛과 함께 해볼까. 기다리고 기대하며 다음 해를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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