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을 살 수 있는 지역을 일컬어 ‘붕세권’이라고 한다. 붕어빵을 파는 위치를 알려주는 앱이 있는가 하면, 인터넷에는 붕어빵을 살 수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정보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물가가 오르고 특히 인건비가 오르면서 최근 붕어빵의 가격은 개당 1천 원이 넘어가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정 기간 드물게 나는 값비싼 생선에나 붙이곤 했던 ‘시가’라는 단어가 붕어빵 앞에 붙여졌다. 과거 붕어빵이 가는 곳마다 있었던 길거리음식의 하나로 여겼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붕어빵 장수를 해보는 것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고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들과 붕어빵을 포함한 길거리음식 독립출판물까지 만들려고 했던 나로서는 작금의 사태가 그저 기쁠 따름이다.
붕어빵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조그마한 비닐 천막 안에서 아주머니 혹은 아저씨가 검은색 불판에서 붕어빵을 굽고 있는 모습이다. 맛있는 붕어빵은 늘 사람이 있어 조금 기다려야 살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붕어빵을 굽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붕어빵을 굽는 과정은 일정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붕어빵을 굽는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진다. 불을 보고 멍 때리는 ‘불멍’처럼 붕어빵을 보면서 멍 때리는 ‘붕멍’을 즐기는 셈이다.
붕어빵을 굽는 첫 번째 절차는 붕어빵 틀의 뚜껑을 열어 기름을 묻힌 붓으로 붕어빵이 누울 자리를 닦는 것이다. 그다음에 밀가루와 찹쌀가루가 섞인 걸쭉한 반죽이 있는 양은 주전자를 들어 붕어빵 틀에 붓는다. 그 위로 좁고 기다란 숟가락에 적당량의 팥을 무심히 떼어 반죽 위에 안착시킨다. 그러고는 양은 주전자를 다시 들어서 팥을 덮어준다. 마지막으로 뚜껑을 닫으면 붕어빵 한 마리를 탄생시킬 수 있는 일련의 의식이 끝난다.
이렇게 모든 붕어빵에 순차적으로 요를 깔고 팥으로 몸을 누이고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나면 첫 번째 붕어빵부터 반대편을 굽기 위해 돌려 눕히기 시작한다. 돌릴 때마다 아래로 파란색 가스 불이 보인다. 반죽만 부으면 검은색 틀 안에서 붕어빵이 뚝딱뚝딱 나오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밑에서 저렇게 수많은 가스 불이 열일하고 있다니, 물 위로는 우아한 백조이지만 물 밑으로는 쉴 새 없이 헤엄질을 하고 있는 백조의 발을 본 듯한 기분이다.
붕어빵들이 이불을 깔고 누웠다가 밖으로 싹 빠져나오기를 몇 판 지나고 나면 내 차례가 다가온다. 밖은 바람이 찬데 따뜻한 붕어빵을 손에 쥘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아주머니는 붕어빵을 하얀 종이봉투에 담아주고 나는 한편에 있는 돈 통에 붕어빵 값을 내고 온다. 붕어빵을 먹기 전보다 갓 나온 붕어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고 있을 때, 먹을 때보다 더 설레곤 한다.
붕어빵 장수를 꼭 해보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반죽이 든 양은 주전자 때문이다. 붕어빵 자리에 부을 때는 반죽 줄기가 한껏 굵었다가 다른 붕어빵으로 옮겨갈 때는 그 줄기가 아예 없어지지는 않고 약해져 다른 붕어빵 틀로 옮겨가는데, 그때 남는 반죽 줄기가 리드미컬하다. 한 번은 올드팝을 틀어놓고 붕어빵을 구우시는 분을 만났는데, 선율에 따라 그 반죽 줄기가 춤추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자가 빠른 곡이 나올 때 붕어빵 굽는 속도도 빨라지고 신이 나며, 박자가 느린 곡이 나올 때는 서정적으로 굽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나의 착각이리라. 붕어빵 틀에서 넘쳐 나온 반죽 줄기는 갈색이 되도록 바짝 익혀져 붕어빵 지느러미 옆에 붙어 나오기도 했는데, 그걸 맛볼 때 쾌감이란! 모양과 맛이 고르지 못하다고 손이나 가위로 지느러미 옆을 정리해서 주는 곳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내가 좋아하는 그 부분이 완전히 사라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여전히 붕어빵 장수가 되지 못한 나는 그 아쉬움을 유튜브에서 붕어빵 굽는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꼬챙이로 붕어빵을 휙 돌릴 때 정확히 180도를 돌아 반대편에 안착하는 정확함이며, 붕어빵 틀이 돌아갈 때의 달그락 소리, 붕어빵 틀의 연식을 짐작하게 하는 찌그덩 소리, 누워 있던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매끄럽게 몸만 빠져나오는 민첩함을 사모한다.
오늘날 붕어빵에는 팥만이 아니라 다른 재료들도 들어가고 있다. 후발주자로는 슈크림이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버무려 넣어 피자에 가까운 붕어빵도 인기다. 길거리 음식 붕어빵은 대체로 겨울에만 볼 수 있지만 슈퍼에 가면 붕어빵이 갑과자로 만들어진 ‘참붕어빵’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빵 안에 찹쌀떡과 초코 크림을 넣어서 출출할 때 먹기에 적합하다. 따뜻한 붕어빵을 차갑게 먹을 수 있는 ‘붕어싸만코’도 있다.
붕어빵 지도 어플에 따르면 서울에서 붕어빵이 가장 많이 있는 지역은 을지로라고 한다. 유동인구가 많기도 하거니와 전 연령층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라 그럴 것이다. 붕어빵 지도 어플을 개발한 프로그래머들이 20대인데, 개발하게 된 이유가 옛날에 많이 사 먹었던 붕어빵 장수가 지금은 많이 사라지기도 했고 길거리 노점의 특성상 이동이 잦고 운영이 불규칙하다는 데 있다. 게다가 겨울 한 철에만 먹는 음식이다 보니 상시 팔기는 어려울 것이다.
붕어빵을 굽는다면 꼭 비법을 배워오고 싶은 곳이 있다. 붕어빵과 만드는 방법이 유사해 사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풀빵을 파는 곳인데, 서울 대학로, 혜화역 3번 출구로 나와 서울대학병원을 지나쳐 종로 방향으로 오는 길에 녹차찹쌀풀빵을 팔았던 트럭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하면서 달지 않은 팥앙금이 탁월했는데, 이 고수님이 아직 계실까? 회사가 근처에 있어서 점심을 먹고 회사로 들어갈 때면 일부러 그 앞을 지나쳐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과 나눠 먹곤 했다. 그게 더 맛있었던 이유는 함께 먹을 이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붕어빵이나 풀빵은 혼자 먹는 것보다 같이 먹어야 맛있다. 세찬 바람을 피하려 홀로 몸을 잔뜩 웅크리게 되는 겨울, 양손 가득 붕어빵을 사면 그걸 품고 있는 나도 따뜻해지고 다른 이에게 붕어빵을 건네줄 때면 상대방도 따뜻해진다. 추울수록 붕어빵을 찾게 되는 것은 외롭고 추운 이 세상을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려는 우리의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