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직시하고 받아들이기
이렇게나 과자를 좋아하는 나도 멀리 하는 과자가 있다.
후렌치 파이다. 1982년 크라운제과에서 출시된 후렌치파이는 나와 연배가 비슷해 어릴 적부터 봐서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 친하지는 않다. 이유는 후렌치파이가 어설프게 프랑스의 패스츄리를 흉내 낸 것 같아서다. 내가 생각하는 과자는 결핍에서 비롯된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쿠키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빵이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이 과자가 아닌가. 심지어 한 그릇 요리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경우(짜장범벅, 라면땅)도 있다. 어디에도 끼지 않기로 한 비주류감성이 과자 정체성의 핵심이다. 그런데 감히 고급과자를 본땄다니.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을. 양과자 중에서도 고급 디저트의 최고봉인 불란서를 말이다.
후렌치파이는 손바닥 반절 크기의 직사각형 페스츄리에 잼을 올려져 있는데 이때 페스츄리는 무려 64겹에 달한다. 페스츄리는 먹으면 입에서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이 사라져 (남들에게는) 매력적이나 (나에게는) 아쉽게만 느껴진다. 뭐가 휩쓸고 지나가긴 했는데 뭐가 지나갔더라, 하고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혀에 남아 있는 감촉을 되짚어본다. 이미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 목구멍 너머를 향해 그립다고 외쳐보지만 공허한 울림만 있을 뿐이다.
혀끝에 부드러운 달콤함의 추억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는 그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꼼꼼히 따져보니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부스러기였다. 64겹 한 겹 한 겹이 어찌나 얇은지 부스러기를 줍기는 매우 어렵다. 손끝에 침이라도 묻혀서 접지력을 강화해야만 낚아 올릴 수 있었다. 부스러기가 싫다면 한 손을 턱받이 삼아 부스러기를 받아내거나 입안의 침샘을 한껏 가동해 입속을 최대한 촉촉하게 만든 다음에 베어 물어야 한다. 과자를 먹는 데 엄지, 집게손가락 이상으로 신체기관을 써야 한다면 과자의 핵심 덕목인 간편성에 위배된다.
그렇게 나는 후렌치파이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문득 생각날 때도 있었지만 후렌치파이와 나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아쉬움을 잊지 위해 나는 후렌치파이에 대해 단호해지기로 했다. 너 없이도 나의 과자 생활은 잘되고 있다고 다시는 너를 찾지 않겠다고, 어쩌다 마주쳐도 꿈쩍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갑과자는 슈퍼에서 낱개씩 팔았는데 동생이 슈퍼에서 날마다 낱개씩 사 먹을 때도 친구들이 손으로 앞접시를 만들어 먹을 때도 나의 굳게 다문 입은 절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후렌치파이가 없이도 나의 과자 생활은 끄떡없었다. 편의점 과자코너에서 후렌치파이를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을 때쯤 불쑥 후렌치파이는 내 삶에 다시 찾아왔다. 아이들과 어느 모임에 갔는데 웬걸 후렌치파이 딸기 맛이 있는 게 아닌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딸기인 우리 집 영유아들은 갑과자 겉면에 그려진 딸기에 홀라당 뺏겼다.
"엄마 엄마, 이거 빨리 뜯어 줘."
다른 오빠가 후렌치파이를 먹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고 있어 아이의 마음은 급해지고 있었다. 아이로부터 과자를 건네받자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아이가 이 과자를 집에서 먹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과자를 먹은 아이의 얼굴은 어떻게 이런 과자를 이제 먹게 되었죠,라고 말하고 있었다. 앉은자리에서 몇 봉지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다음 날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다시 그 과자를 찾았다.
"엄마, 어제 그 오빠도 맛있게 먹던 과자 이름이 뭐였지? 되게 맛있더라."
엄마는 과자박사라고 아이들 앞에서 과자에 관해서라면 온갖 지식을 뽐냈던 과거가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모르는 과자면 좋겠다고 멈칫하다가 가까스로 용기 내어 잊고 싶은 그 이름, '후렌치파이'를 말했다.
바로 그 과자를 먹고 싶다고 말한 아이의 주문을 받아 후렌치파이를 사려는데 도무지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후렌치파이의 맛은 딸기였는데 다양한 맛들이 마트에 진열되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과자답게 맛 사과도 그냥 사과가 아니라 경북사과, 포도도 그냥 포도가 아니라 샤인머스캣, 블루베리도 복음자리잼, 초코도 그냥 초코가 아니라 초코스프레드였다. 슈퍼에서 파는 과자가 아니라 제과점에서 굽는 파이임이 분명하다.
아이가 크로와상과 뺑오쇼콜라를 좋아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긴 했다. 빵집에서 나는 밥에 버금가는 식사빵을 고를 때 아이는 가벼운 한입거리를 선호했다. 그래서 그 빵을 사면 카페나 빵집에서 먹고 가자고 했던 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먹어야 할 때는 아이가 식탁을 벗어나서 부스러기가 곳곳에 돌아다닐까 봐 노심초사했다. 가뜩이나 어지르는 게 기본값인 가족 구성원을 둔 덕에, 나는 현관 입구에서부터 뭔가를 주우면서 집안으로 들어서지 않는가. 거기에 맨손가락으로는 들어 올려지지도 않는 부스러기까지 추가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모성애는 청소의 번거로움보다 강했다. 아이 치고는, 엄마에 비해서는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네다섯 봉지를 해치웠다. 집안 과자소비시장의 큰손인 내가 하나도 먹지 않아도 과연 이 한 박스가 비워질까 걱정했으나 괜한 우려였다. 언니를 따라 동생도 먹기 시작하니 어느새 바닥이 보였다.
아이를 돌본다는 건 나의 영역을 아이에게 내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임신기에는 나의 몸을, 영아기에는 나의 온 시간을, 유아기에 접어들자 에너지를 달라고 아이는 내게 끊임없이 요구했다. 아이는 얼마 전부터 유치원을 안 가겠다고 했다. 어르고 달래서 일찍 하원하기로 했다. 저녁에는 다음 날 유치원에 갈 생각에 눈물을, 아침에는 당장 유치원에 갈 생각에 눈물이 마르지 않던 아이가 울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그저 좀 일찍 데리러 갔으면 될 일이었을 텐데 나는 무엇을 포기할 수 없어서 아이가 계속 울게 했을까.
후렌치파이 포장지를 뜯을 때처럼 아이의 마음이 언제 바스러질지 몰라 실눈을 뜬 채로 조심스럽게 아이를 대했다면 이제는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치우면 되지, 하고 과감하게 포장지를 뜯는다. 그리고 이번 봉지의 후렌치파이의 상태를 두 눈을 뜨고 직시하고 받아들인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에 후렌치파이의 잼처럼 미소가 얼굴 가득 반듯하게 펼쳐졌다.
"엄마, 나 내일이 기다려져. 유치원에 얼른 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