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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Aug 25.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좋아할 수 있을까


가끔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답답할 때가 있었다. 가령 그가 마음을 쓰는 게 너무 아까운 사람이나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내 친구들은 참 좋은 사람이고 귀한 사람인데 그의 소중한 시간과 힘을 애먼 데에 쓰는 게 아까워서 '속이 상한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자면 연애 같은 것이다. 성별은 상관없었지만 특히 답 없는 망혼을 하는 친구를 보면 정이 뚝 떨어지기도 했다. 비슷하게, 아니라고 우기는 짝사랑이나 우울에 본인의 가치를 던져버리는 친구들을 그대로 소중하게 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엎어져 울더라도 항상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려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모부의 사랑이 그렇게 진득한 거라며, 그런데도 자식을 못 이긴다며. 그럼 그 진득한 사랑으로도 못 이기는 마음을 어쩔 도리는 없겠다. 내 사랑 역시 누군가에겐 답답하고 쓸모없고 바보 같아 보일지 모른다. 모 작가가 한 번씩 풀어놓는 글을 보면 나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오늘 아침에는 결혼을 생각하는 듯한 글이 올라왔다 지워지는 걸 봤다. 을지훈련으로 밤샘 근무를 하면서는 귀여워하는 사무실 직원들이 추천하는 알탕 영화 이야기를 텅 빈 눈으로 들었다. 여성주의를 알더라도 온전히 마음을 나누기 힘든 사람이 많고, 여성주의를 모르더라도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그게 너의 최선이었겠거니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도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 결국 모두 스스로의 삶이고, 각자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바보 같은 친구들이어도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사랑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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