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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Aug 14. 2023

예쁜 타투를 자랑하던 너에게

"타투 진짜야? 엄청 크네!"


그리고 예쁘다고는 말해주지 못했지.

사실은 문신도 피어싱도ㅡ눈썹이든, 입술이든, 광대든ㅡ자해의 일종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는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었어. 내가 공부할 때 입술을 뜯고 꼬부랑 머리를 찾아서 끊어내는 행동도 사실은 자해라고 하더라. 그렇게 신체를 가만두지 못하고 흠을 내는 일들이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동안 친구들의 문신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던 건 그림이 내 취향이 아니어서라고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들어간 SNS에서 내 취향인 그림을 팔 한가득 새긴 너를 보고서는 문신이 친구들의 자해의 예쁜 표출일까 봐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불편했다는 걸 알게 됐어. 몸에 무언갈 영구적으로 새긴다는 거, 뚫는다는 거. 그건 어떤 각오로 큰마음을 먹거나 또는 아예 무언갈 포기해야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어쩌면 네 술 버릇이나 죽음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시선을 본 적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



"정말 궁금했는데, 무서워서 못 물어보겠더라고."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 왜, 뭐가 무서운지도 모르면서 무서워서 물어볼 수 없는 게 있다고 고백했었는데, 대화하던 친구는 다른 이들과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며 감사히도 경험을 나눠주었어, 그제야 나는 내가 뭘 무서워했는지 알게  되었어. 피하던 일을 꺼내놓고 마주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굉장히 편해졌고 그건 걱정하던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더라. 최근에 자꾸 발견한 내 다른 무서움들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나는 탈코하지 않거나 다시 코르셋을 입는 페미니스트 친구들에게 그 이유를 묻지 못했어. 그리고 알게 된 내 무서움은 내가 실천하는 일들이 의미를 갖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일이더라고. 코르셋을 다시 입는 그들에게는 이제 탈코가 의미가 없다고 할까 봐, '코르셋을 입는 것도 페미니즘'이라고 할까 봐. 그래서 바비를 보면서도 불편함이 훨씬 컸던 거야. 작년부터 다시 코르셋을 채워가는 친구들을 보는 게 괴로웠어. 그래서 연락하지 않게 된 친구도, 만남을 피하게 된 친구들도 있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이 운동을 계속할 거거든.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전처럼 무섭기만 하지는 않더라. 조금 쓸쓸하긴 하지만.



한 팔 가득 그림들을 몸에 새기는 친구들에게도 나는 물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 너의 마음은 안전한지, 커다란 그림을 새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었던 건 아닌지, 고통을 나눌 인적 자원이 네 주변에 잘 준비되어 있는지, 아니라면 잠깐 멈추고 기다려 준다면 참 좋을 텐데. 내가 네 주변에 있어주질 못해서 안타깝다고도 말하고 싶었는데. 지금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러지는 못했어.


코르셋을 입는 친구들에 대한 무서움을 꺼내놓고 마주했던 것처럼 차라리 너에게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만나서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친구의 경험으로 들은 이야기는 간접적일 뿐이니까 아직 나는 무서움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셈이야. 그래서 어쩌면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도 꽤 나중일 까봐 마음이 무거워. 그래도 작년에 네게 살아달라고 말했던 건 내 나름의 큰 용기였는데, 아직 이렇게 시험 끝나고 만나자고 여전히 말할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해.


작년 겨울쯤 알게 된 내 또 다른 무서움은 여자들이 아파서 정말 멀리 떠나버릴까 봐 걱정하는 일이었어. 가까운 사람이 아픈 걸 너무 똑똑히 봐버려서 또 누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초조함을 키우던 시간이었고. 이런 걱정은 친구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었을까, 겸손하게 사과해야 하는 오지랖일까 아직 모르겠어. 나 없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노랫말을 참 좋아하는데 무책임할까 봐 전하지도 못하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욕심만 늘이라. 조금은 전해지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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