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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Feb 21. 2024

감자를 싫어하는 사람은 짜글이를 실패할 수밖에

친환경 감자와 양파와 대파를 열심히 깎고 썰고, 유기농 설탕,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마늘, 간장과 물을 냄비에 넣고 졸였다. 좋은 재료만 잔뜩 들어가 분명히 때깔 좋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냄새가 나지 않아 뚜껑을 열어보니 탄내가 그득한, 탄 냄비와 탄 감자조림이 되어 있었다. 그 짧은 새 그랬다. 어디서도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는 알량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주제에, 휴일에 혼자 식재료를 태워서 음식 쓰레기를 만들고 냄비를 끓여 닦으며 오염수를 만들어 낸 스스로에 실망하면서, 관계도 이런가 싶었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과 정도가 중요하지. 맛있게 익어갈 때 그만 멈췄으면 좋았을까 스스로를 질책하다가 냄새가 좋았던 순간에는 감자가 아직 설익었던 걸 기억해 내고, 사실 나는 중간중간 물을 넣어주고 졸임 정도를 한 번씩이라도 확인할 정도로 감자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그동안 못 먹는 식재료가 없다는 게 싫어하는 식재료가 없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왔다. 알러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견딜 수 있는데 싫어하는 건 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거다. 짜글이 같은 무난한 메뉴를 무난하게 해 먹는 무난한 사람이 되고 싶던 내 욕심이었다. 돌이켜보면 음식을 태우는 일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메뉴일 때가 항상이었으니 모른 척하지 말아야 탈이 나지 않는다는 당연한 일을 이렇게 배운다. 솔직해야 한다. 우연히 마주친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박히는 일은 내가 인정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중요한 말이어서일 때가 많았다. 모든 이해는 오해라는 문장이 너무하다고 느끼면서도 가슴 깊숙이 와닿았던 것도, 너를 견딜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문장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심장이 아프게 간직하게 되었던 것도 다 같은 맥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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