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안갯속으로
어둠 속 한 줄기 빛을 따라가자 움직이는 그림이 보였다. 차르르르 차르르르 반복적인 소리가 어디선가 새어 나왔다. 네다섯 살 쯤이었던가? 기억은 선명하지 않았다. 물속 같은, 어쩜 꿈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확실해졌다. 당시 나는 문화 원시시대에 살았다. 줄곧 TV 만 보고 극장은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였다. 뭐 나만 그런 건 아니다. 그 시절 극장이 많지도 않았고 그것도 시내에만 있던 시절이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애들보다는 부모님의 굳건한 의지가 필요했다. 그러니 극장에 가는 날은 보통날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유치원(5세 반) 단체관람에 얼떨결에 합류하는 일이 생겼다. 엄마도 이때다 싶었는지 나를 급하게 찾아 데리고 갔다. 극장 입구는 유치원 생으로 가득 찼다. 동생 유치원만 온 게 아니었다. 영화 시작 전 줄이 어마어마했지만 영화가 시작되자 가득했던 아이들이 썰물처럼 사라져 순식간에 텅 비고 말았다. 다만 몇몇만이 남아있었다. 남아 있는 자들은 나 같은 또는 저마다의 이유로 남아있었다.
엄마의 심오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나는 영화가 조금 시작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는 앞서 걸었고, 나는 엄마 옷자락을 잡고 더듬더듬 따라 들어갔다.
극장은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차츰 형체가 드러났다. 엄마는 맨 뒤 좌석에 나를 세워두고 손짓과 입모양으로 무언가 전달하고 동생 있는 쪽으로 가셨다. 아마 몰래 들어온 손님은 유치원생과 같이 앉을 수 없으니 너는 뒤쪽 빈자리에 앉아 혼자 봐라 정도로 해석했다. 극장 안은 소란스러웠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영화에서 나오는 소리까지 덮었고, 어렵게 극장에 들어갔지만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고서 들어와 내용을 놓친 것이 요인이었지만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꼬마들의 울부짖음은 굉장했다. 나는 영화를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으로 그저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순간 무슨 영화인지 알아채고 말았다.
‘설마.... 그거?’
그것은 만화 영화 <내 이름은 캔디> (지금 말하면 불법 리메이크 작 정도 아니었을까.)를 실사로 만든 것이었다. 영하 속 인물은 전부 한국 사람 같았다. 캔디의 트레이드마크인 금발 머리는 흑발이 대신했고, 만화와 너무 다른 인물이 어색해 놀라 자빠질 뻔했지만 돌돌 말린 이라이저(캔디를 괴롭히는 인물) 머리는 검은색이었음에도 만화와 가장 흡사해 괜히 안심했다. 이 영화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머리 때문이다. 그 후 영화를 본 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자아이들이 이라이저 머리를 만든다며 연필에 머리카락을 돌돌 말곤 했다. 아마도 그 머리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머리이지 않았을까. 이라이저는 악역에도 불구하고 머리만큼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악은 악, 미는 미를 별개라 생각하며 구분하는 성숙한 사고방식. 참 대단한 대한민국 여성입니다.
캔디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캔디는 포니의 집이라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곳에는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캔디와 쌍둥이처럼 자란 애니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캔디와 다르게 나약했고 고아원에 있다는 사실조차 힘들어했다. 그럴 때마다 캔디는 애니에게 용기를 주었다. 사실 어린 캔디도 그곳에 있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친구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일 뿐. 그 후 애니는 입양이 되는데 그 마저도 캔디가 양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애니는 자신이 고아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캔디를 멀리한다. 캔디가 없었다면 포니의 집에서 견디지도 못했을 애니, 그 애니가 떠올랐다. 성장을 함께한 애니의 배신은 캔디를 밀어내는 내 마음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영화 속 캔디는 더 이상 내가 알 던 친구가 아니었다. 캔디는 어른들의 상술에 의해 재생산되어 나타났고, 그런 캔디를 이해해 주지 못했다. 어린 내 눈에도 엉성해 보이는 영화는 그처럼 보고 싶었던 친구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었고, 목청 높여 불렀던 캔디 노래마저 부끄러웠다. 마치 사춘기 아이가 그러듯, 내가 캔디를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창피했다. 왜 내가 캔디를 좋아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후에 저작권 분쟁 문제도 생겼다는 소식도 어디선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이미 관심 밖이었다. 캔디만 그런 게 아니라 어린 시절 좋아했던 모든 게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유년 시절 친구들은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