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가게를 열었습니다

유리구슬의 운명처럼

by 부리도

드디어 장난감 가게를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 모든 장난감으로 가게를 채우고 싶었지만 우주 별만큼이나 방대한 게 장난감 종류 아니던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몇 가지 종류로만 가게를 꾸려야 했다. 태어나 처음 만나는 장난감, 나무로 된 자연친화적 장난감, 여럿이 함께 즐기는 게임, 아이용 그림 도구 정도로 축소했다. 시간을 두고 점점 종류를 늘릴 생각이었다.

특별히 입구 문을 두 개 만들었다. 하나는 어른을 위한 문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를 위한 작은 문이었다. 아이들은 작은 문을 보자마자 자기들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채고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엄마와 함께 큰 문으로 들어왔다가도 아이는 다시 나가 작은 문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겁이 많은 아이도 작은 문을 어른과 같이 통과하겠다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은 풍선을 무척 좋아했다. 풍선 하나로도 행복해했다. 입구를 풍선으로 장식했다. 장난감 가게라면 의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픈식 축하 행사에 인형극단도 초대했다. 꿈에 그리던 그날이 왔다. 풍선에 인형극단까지 축제가 따로 없었다. 순식간에 동네 아이들이 몰려왔다. 아! 내가 진짜 장난감 가게 주인이 되었구나! 꿈이 아니구나! 시끌벅적한 소리로 가득 찼다. 오픈 선물로 비즈 팔찌 키트(조립)와 유리구슬을 준비했다. 비즈 팔찌 키트는 직접 구슬을 원하는 대로 배열하고 꿰어 '나만의 팔찌'를 만드는 재료로 아이들이 만드는 과정과 결과를 모두 즐기길 바랐고, 유리구슬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구슬이 매개가 되어 이야기하고 함께 놀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구슬치기 하며 벌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꺼내면 아이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버지는 구슬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구슬치기가 재미있는 아이는 친구들에게 알려주어 동네 아이들 모두 구슬치기를 한다는 설정이었다.

유리구슬에 비해 비즈 키트는 인기가 많았다. 어디서 선물을 준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아이들과 무관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찾아와 손주 갖다 준다며 무작정 사은품을 달라며 조르기도 했다. 진짜 손주에게 갖다 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러셨는지는 모르지만 장난감을 구입해야 주는 사은품을 그냥 달라고 하는 건 난처한 일이었다. 반대로 반면. 유리구슬을 가져간 사람은 그걸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바꿔 달라거나, 유리가 깨질 수 있으니 바꿔달라거나, 애들 알려주면 귀찮다는 등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바꿔갔다.

사은품은 그냥 사은품일 뿐, 집 어딘가에 굴러 다니다 버려질 것인데 내가 너무 많은 의미와 영혼을 갈아 넣었나 싶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만큼 실망도 컸다. 당시 인기 없어서 남아돌던 유리구슬을 떠올리니 요즘 핫한 '오징어 게임'(넷플렉스 시리즈)이 생각났다. 그때 이 드라마가 나왔더라면 유리구슬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일주일이 갔다.


작은 문이 신기한지 아이들은 지나치지 않고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에 있는 장난감은 모두 자유롭게 만져 볼 수도 있으니 아이들에겐 이 보다 저 좋은 곳이 있을까.(자부심) 사람들이 많이 오갔지만 선뜩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이가 장난감에 열중하고 있을 때면 보통 엄마는 슬쩍 장난감 가격과 사진을 찍거나 아님 물건을 샀다가 며칠 후 환불해 달라며 장난감을 갖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는 스마트 폰이 없어서 검색이 쉽게 되지 않았음) 이유는 인터넷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무조건 환불해 줬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환불하려면 직접 와서 물건도 주고 카드 취소도 해야 하는데 가는 게 귀찮다며 차액을 돈으로 주면 안 되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최저 가격이 내 가게 물건도 아닌데 이 무슨 빙구 같은 소리냔 말이다. 물건을 소량으로 구입하고 오프라인 가게까지 운영하는 경우엔 인터넷 최저가는 고사하고 비슷한 가격대를 맞추기도 어려웠다. 출발선이 한참 저 뒤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손해였다. 언제부턴가 말도 없이 아이만 가게에 들여보내는 사람도 생겼다. 아이를 놓고 갔던 엄마가 다시 돌아와 색연필 하나를 집어 계산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정도는 양심이 있는 축에 속했다. 어떤 엄마는 가게에 들어오지도 않고 전화로 아이에게 나오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아예 가게를 아동 위탁 장소로 착각했다. 또 얼굴 정도만 아는 주변 상인이 아이를 맡기고 간 일도 있었다. 그땐 같이 장사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어느 날 그분이 아이를 데리고 불쑥 찾아와 (얼굴만 아는 정도) 인사도 없이 아이에게 " 저 선생님에게 색연필로 그림 어떻게 그리나 가르쳐 주세요 그래 알았지?" 그리곤 나를 보고 "그 색연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배우고 살게요" "네? 색연필은 그냥 사용하시면 되는데..."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 엄마는 사라졌다. 나는 아이 엄마가 올 때까지 아이를 돌봐야 했다. 한 눈 판 사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큰 일이지 않을까 싶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이 엄마는 두어 시간 지나서 와서는 "너 이거 사용 못 하지 너 혼자 못하지?' 아이는 엄마를 멀뚱멀뚱 바라만 봤다. "선생님 이거 아이 어차피 혼자 사용 못 하니 다음에 살게요~" 하고 떠났다. '난 장난감 가게 주인이지 미술 선생님이나 보모가 아닌데... 색연필이 무슨 사용법이 있다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야심 차게 차린 가게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아닌 무료 돌봄 시설로 전략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한 마디로 호구가 되어 갔다.


'그래!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을 주고 싶었잖아!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고 놀고 그러다 영혼의 단짝을 만나 데려가는 거! 그렇게 위로받는 거! 그게 네가 바라던 바였잖아! 근데 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가게를 열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랬다. '너도 장난감 가게에서 그렇게 위로를 받았잖아!' 마음의 소리가 말했지만 점점 들리지 않았다.


진상 손님들은 참 다양했다. 어떻게 저런 창의적인 생각을 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진상이 많아도 가게가 잘 운영된다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을 것이다. 가게 운영도 어려운데 진상 손님까지 많다 보니 심적으로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나였다. 장사가 무엇인지 잘 몰랐고 계산에 어두웠다. 이익이 남아야 하는 게 장사인데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 손님들이 해달라면 다 해주는 물 같은 성격이 문제였다. 장난감 가게는 꿈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장사꾼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장사꾼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꿈은 꿈으로 끝냈어야 했나" 하는 후회 같은 감정이 그때쯤 자주 나를 덮쳤다.


파리의 어느 골목길, 작은 신발 가게로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가는 아이. 3~4살쯤 돼 보이는 아이는 익숙한 듯 가게를 둘러본다. 한두 번 고른 솜씨가 아니다. 처음 그런 광경을 목격했을 때 한참을 쇼윈도 밖에서 아이를 지켜봤다. 이게 넋 놓고 볼일인가. '말이나 할 수 있으려나. 뭘 알기는 하는 걸까.' 아이는 아무것도 모를 거라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봤다. 그 후 이런 광경은 흔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국 상점은 대형화 추세였고, 인터넷 시장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것은 아이들이 무언가를 직접 만지고 고르는 일이 줄어든다는 의미였다. 물론 한국에서도 할 수도 있다. 집 가까이 있진 않더라도 남대문 시장 같은 큰 시장을 아이와 찾아가 고를 수도 있고, 지역마다 아직 살아있는 작은 시장에 가도 아이와 고를 수 있다. 하려면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아이를 기다려주는 시간이다. 시장과 다르게 접근성도 좋고 아이 눈높이에 맞춰 꾸민 백화점은 아이와 가기엔 조건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이에게 자유롭게 선택권 넘기기엔 가격 면에서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후들후들) 가격도 가격이지만 제일 아쉬운 건 동네 단골 가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이 없다는 거. 나는 이 '정겨운 놈'이 인간사에 꽤 큰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었음에도 인터넷 최저가 앞에서는 그놈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부자라면 상황이 달라질까?) 대한민국은 인터넷 왕국 아니던가. 최저가가 아니어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격 차이는 컸다.


인터넷도 스스로 살피고 주문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고른다면 모를까 아이들은 그러지 못하지 않은가. 그렇기게 다른 건 몰라도 장난감만큼은 온라인에서 판매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님 적어도 동네 골목마다 하나씩이라도 장난감 가게가 있었으면 했다. 한국은 예전에도 장난감만 파는 가게보다는 여러 가지를 파는 문방구가 그 역할을 했다. 아주 드물게 장난감만 파는 가게가 있었지만 마트처럼 물건을 진열해 놓은 수준이었다. 그러니깐 문방구가 그 역할을 비슷하게 한 것인데 이젠 문방구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아이들은 물건을 살피고 고른단 말인가. 온전히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솔 메이트(영혼의 단짝-장난감)를 어떻게 마트에서 덥석 집어오냔 말이다. 아이는 실패든 성공이든 스스로 충분히 선택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통해 성장하는 거라 거창하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것을 아이들에게 내가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품었다는 것. 누가 하라고도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했다는 것이다.


장난감 가게를 계획한 그날부터 무모한 계획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선명한 이유가 기억나지 않았다. 왜 열었을까? 뭐에 홀린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그 모습 그대로 시원하게 망했다.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왜 나는 장난감 가게의 주인이 되었을까? 왜 무모한 짓을 계산 없이 했을까? 그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이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장난감 가게를 닫고 시간이 꾀 흘렀음에도 나는 아직도 그 가게 앞을 지나가지 못한다. 실패, 좌절, 자책, 후회, 미안함 등 수많은 어둠은 감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젠 괜찮겠지 생각하다가도 다시 그때를 떠 올리면 괜찮지 않았다. 그러니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가 완전히 아문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그 상처를 덮고 있을 뿐이다. 상처는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며 당당하게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래 나는 장난감 가게 주인이었다. 자랑스러운 장난감 가게 주인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을 걸 한 사람이다. 한 번 외쳐 본다.


이루기 어려운 꿈은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그 꿈을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망했다고 세상 꿈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니깐. 이왕이면 아주 큰 가게면 좋겠다. 세상 반을 차지해도 좋다. 한 번 들어가면 미로처럼 헤어 나오지 못해도 좋겠다. 옛날 장난감부터 요즘 장난감까지 세상 장난감 모두 모아 놓은 곳이면 더 좋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이 가득 차면 좋겠다. 오래 머물러도 눈치 안 보이는 곳이면 좋겠다. 마음이 울적할 때 갈 수 있는 그리고 그곳을 나왔을 때 웃으며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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