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친구를 추억하며

에필로그

by 부리도

장난감이란 아이에겐 무엇이고, 또 어른에게는 무엇이었던가.




나는 장난감보다는 만화나 인형을 좋아하고 집보다는 밖에 나가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 누군가 나를 괴롭히거나 화나게 하면 바로 핏대 세우고 싸웠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런 일이 생겨도 잠시 머뭇거리다 참는 경우도 생겼다. 참을성 있는 만화 속 주인공이나 동화책 주인공이 떠오르면 그랬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말괄량이 삐삐」(린드그렌의 책을 TV 드라마로 만든 것)가 한창 인기가 하늘로 치솟을 무렵, 모두 주인공 삐삐를 좋아할 때 나는 삐삐 친구 아니카를 좋아했다. 제멋대로 꾸민 삐삐는 혼자 머리 묶고 혼자 아무거나 입고 다니는 내 모습에 더 가까웠다. 내게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삐삐처럼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무관심 덕분이었다. 엄만 내가 청결한지 옷은 무엇을 입고 다니는지 오늘 머리는 어떻게 해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으셨다. 딸이 있는 엄마라면 아침마다 머리 전쟁에 참여하여야 한다지만 엄마는 출전을 거부하셨다. 그냥 관심 자체가 없으셨다. 다른 아이처럼 예쁘게 머리 따 달라고 조르기도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하나로 묶는 것. 그건 어린 나도 할 수 있었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나는 아니카의 단정한 머리와 옷차림이 좋았고, 그 모습에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느껴졌다. 아니카를 떠올리며 조용조용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행동하면 나도 왠지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내 눈에도 엄마가 신경 써 주는 아이들은 뭔가 달랐다. 특히 예쁘게 땋은 머리가 그랬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장난감 가게를 무모하게 열 수 있었던 이유는 ‘결핍’이 아니었나 싶다. 항상 무언가 부족했던 아이, 엄마의 사람을 듬뿍 받고 싶었던 아이, 울고 싶고, 슬픈 아이가 장난감 가게를 돌고 나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장난감 가게가 어른에게도 이렇게 좋은데 아이들에겐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장난감보단 추억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막상 그 시절 장난감이 내 앞에 있다고 해도 그때만큼 재밌지는 않을 것이다. 소꿉놀이를 할 때가 생각난다. 작은 도구들을 내 맘대로 자리 잡아보고 손님이 오면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놀이. 그저 공기를 마시고 공기를 먹는 것인데도 진짜 내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듯 진지했다. 그것을 받아주는 친구나 동생도 모두 그 순간만큼은 진짜였다. 어른이 되어 이 놀이를 다시 한다고 한다면 어떨까? 말 나온 김에 소꿉놀이 좀 해 볼까? 거실 귀퉁이에 요리 도구를 펼치고 상상 요리를 만들어 손님을 대접해 보기로 합니다. 손님이 오기 전까지 차를 마시는 흉내도 내고 홀짝 소리도 내봅니다. 그때 띵똥하는 소리가 납니다. 손님인가 봅니다. 재빠르게 요리를 준비합니다. " 여기 앉으세요 자~ 맛있는 요리가 나왔습니다." 빈 접시를 내밉니다. 손님이 자연스럽게 받습니다. " 하하 참 맛있네요" 손님이 맞장구 쳐줍니다. " 그렇죠? 자~그럼 다음 요리도 바로 나갑니다." 손님이 말합니다. "우리 저녁 언제 먹어?" 저는 웃으며 빈 장난감 접시를 내밉니다. "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입니다." 자 받으세요. " 아니 진짜 저녁 말이야!" 계속 이 짓 거리를 할 건 아니겠지? 란 표정을 짓고 있는 손님이 보입니다. 혹입니다. "글쎄.... " 저는 시무룩한 얼굴로 자리를 떨고 일어나 부엌으로 갑니다. 진짜 밥을 내 손으로 차려 먹어야 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공기가 아닌 진짜 공깃밥을 만들어 먹어야 합니다. 썩 재미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 나의 소꿉놀이는 끝났습니다.


세상에 처음 발 디딘 아이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친구와 다투고 집에 돌아오는 날에도 묵묵히 속상한 마음을 받아주던 변함없는 친구, 장난감. 누구는 그게 친구가 아닌 '친구 연습'이라고 하더군요. 진짜 친구를 사귀기 위한 연습 말입니다. 그래요 진짜 친구는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진짜 친구들이 있는데도 마음 한편이 시린 건 무엇 때문일까요. 누가 가짜(상상 친구)고 누가 진짜인지요. 다 자란 어른에게도 상상 친구는 아니지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즉 자신만의 세계 말입니다. 꼭 공간만을 말하진 않는 취미나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요. 어른이 되면 시간 갖기가 왜 그렇게 어려워지는 걸까요. 그때 자기만의 방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세상을 다시 살아갑니다. 그래야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으니깐요. 번 아웃이라는 말. 참 슬픈 말입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다 타버린 느낌, 어린 시절엔 만화 한 편에도, 별거 아닌 작은 장난감에도 세상 행복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왜 그렇지 못할까요? 이쯤 되면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는 말이 나옵니다. 지금 무엇으로 힘들어하고 무엇 때문에 열심히 사는지 몰라도 아직까지 자기만의 방이 없으신 분이 있다면 어린 시절로 여행 한번 떠다 보는 건 어떠신지요.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물에 물고기가 걸려 올라오듯 추억이라는 물고기가 끝없이 따라올 겁니다. 그때 모르는 물고기나 다른 종 물고기가 따라오기도 하지요. 또 그땐 힘들었는데 지금은 별거 아닌 일도 있고요. 그렇게 잊혔던 기억은 밤새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올 겁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으로 행복했었는지 떠올려 봅니다.


아이들은 늘 새 장난감을 원하면서도 낡아빠진 애착 인형이 보이지 않는 날이면 세상이 무너진 듯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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