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네 와인바 사장 Dec 04. 2018

와인. 왜 어렵게 보일까?

“와인. 어려워 보여요.”

“와인은 알고 싶기는 한데, 너무 복잡하더라. 모르겠더라고.”

실제로 우연히 듣게 된, 손님들 간의 대화 중에 한 문장입니다. 안타까운 일 이지만, 한국에는 와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퍼져있습니다. 와인은 공부를 해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요즘 외국 맥주가 정말 다양하게 수입되고 있는데, 맥주를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해 보면 그 사실은 더 분명해집니다. 왜냐하면, 보통 새로운 맥주를 봤을 때 “어? 처음보는 맥주다. 먹어볼까?”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지만, 와인을 봤을 때는 “어…와인이네. 난 와인 모르니까.” 라면서 그냥 지나치는 분이 더 많으니까요.


와인도 그냥 술입니다. 포도로 담근 외국 전통 막걸리. 공부를 해야만 먹을 수 있는 음료가 아니구요. 막걸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공부하고 나서 먹는 사람 있나요? 만약 누군가가 “아…막걸리. 궁금하긴 한데, 너무 복잡하더라. 모르겠더라고.” 라고 말한다면, 진짜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할 겁니다. 소주는 어떨까요? 소주에 대해 공부한 사람 주변에 본 적 있으신가요? 소주 마실 때, 아무도 원재료를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혹시 소주의 원료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생산방법은? 솔직히 저도 잘 모릅니다. 와인도 다를 것 없습니다. 외국인들도 포도 품종 같은 것들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 많은 포도 품종을 다 알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이게 맛있나? 알콜 도수가 너무 높지는 않을까? 이런 것 아닐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와인에 대해서만 접근 순서가 뒤집어져 있습니다. 와인을 먹어보고, 맛이 있어서, 관심이 생겨서, 그래서 공부하게 되어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와인은 공부를 하고 나서 마실 수 있는 술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는 것이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개인적으로 추측해 보자면, 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외국 바이어들을 상대로 무역을 해야했던 세일즈맨들 때문에 이런 인식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유럽 시장에 대한 영업을 위해 와인을 알아야한다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고, 말 그대로 ‘일’로 와인을 접근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봐 자네, 와인은 좀 공부하고 있나?”라는 문장이 전혀 이상한 문장이 아니게 된 것이죠.


이와 관련해서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와인계에서 꽤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바로 프랑스 와인 “샤또 딸보(Chateau Talbot)”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와인은 한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와인 중에 하나입니다. 70-80년대부터 이미 한국에서 유명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바로, 이름이 “쉬워서” 입니다. 프랑스어는 발음도 힘들고, 와인의 종류도 너무 많다보니, 프랑스 식당에서 와인을 주문할 때 당황하지 않도록 마실 와인을 미리 정해서 이름을 “외워가야 할” 필요가 있었고, 발음도 쉽고, 가격도 접대에 적당하고, 맛도 좋았던 “샤또 딸보”가 세일즈맨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식이죠. “어이 김과장. 잘 모르겠으면 그냥 ‘딸보’라고 말하면 될꺼야.”

프랑스 보르도 생-줄리앙 지역, 그랑크뤼 4등급 "샤토 딸보"

이야기가 좀 샜습니다만, 그러니까 공부 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마셔보면 됩니다. 많이 먹어보세요. 마셔보니 맛있으면 계속 마시는 것이고, 맛이 없다면 딴 술 마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셔보니 너무 맛있어서 관심이 생겼다면, 그 때 공부를 하시면 됩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아무리 많이 공부해 봤자 많이 마셔본 사람의 내공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절대로요. 왜냐하면, 와인은 감각으로 느껴야 하는 경험의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의 분야가 아니라요. 그러니까, 처음에 언급했던 “와인은 알고 싶기는 한데, 너무 복잡하더라. 모르겠더라고.” 라는 문장은 틀린 문장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맞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난 아직 와인 잘 몰라. 별로 안 먹어 봤거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