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잔의 목 부분(‘스템. Ste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을 잡으면 됩니다. 잔의 목을 잡으면 와인의 온도에도 영향을 덜 미치고, 잔이 얼룩덜룩해 질 일도 없습니다. 손의 기름이 묻어서 얼룩진 잔은, 보기에 썩 좋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술을 즐긴다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본인이 편한대로 마시면 됩니다. 목 부분을 잡아도 되고, 와인 잔 몸통(와인이 담기는 그릇 부분)을 잡아도 되고, 쭉쭉 마시고 싶은 날은 대충 잡고 신나게 마셔도 되고, 천천히 즐기고 싶은 날은 조심스럽게 잡고 천천히 마시면 됩니다. 와인에도 매너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상황에 맞게, 내가 즐거운 방식으로 즐긴다.”라는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도 친구들과 와인을 마실 때는 그냥 와인잔 몸통을 잡고 마실 때가 더 많습니다. 제가 평소에 와인잔 잡는 모양을 보여드릴께요.
심지어 ‘리델(Riedel)’이라는 유명 와인 잔 생산 회사에서는, 목이 없는 ‘O-Riedel’이라는 와인 잔을 판매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도 가게에서 쓰고 있는데, 손님들이 신기해하기도 하고, 잔이 예뻐서 반응도 좋아요. ‘리델’은 왜 이런 잔을 만들었을까요? ‘리델’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O-Riedel’에 대한 소개 글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O is an innovative take on the casual wine glass for total wine enjoyment.”
“O는 와인의 완전한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캐주얼 와인잔의 혁신적인 시도입니다.”
와인도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전에도 언급했지만, 전 집에서 대충 마실때는 그냥 머그컵에 와인을 마십니다.) 와인잔은 와인을 더 즐겁게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도구 따위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맘 편히 와인을 즐기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자기 편한대로 와인잔을 잡아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이렇게 잡지는 말아주세요. 손님들이 이렇게 와인잔을 잡고 술을 마시는 걸 보고 있으면, 가슴이 조마조마 합니다. 잔이 깨질수도 있거든요. 게다가 와인잔은 크리스탈 재질에 매우 얇아서, 깨지면 예리한 조각으로 부서집니다. 손을 다칠 가능성도 크고, 다치게 되면 크게 다칠수도 있습니다.
일단 생각나는 것은 이정도인데, 막상 사진으로 보니 어떠신가요? 일단 보기에도 불안하지 않나요? 내가 지금 와인잔을 다루는 방식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간단한 방법은, 보기에 위험해 보이는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는겁니다. 와인잔은 매우 연약한 녀석입니다. 강철로 된 잔이라면 당신이 무슨 이상한 짓을 하든지 신경쓰지 않겠지만, 이건 크리스탈로 된 잔이란 말입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좀 넉두리를 하자면, 잔이 깨지면 정말 힘들어집니다. 와인은 사방에 튀고, 유리 파편도 사방에 튀고, 옷에 와인이 튄 손님은 패닉에 빠지고, 가게 안의 손님들은 한꺼번에 쳐다보고, 서빙하던 저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뛰어가야하고, 물티슈에 키친타올에 빗자루 들고가서 치워야하고,(와인잔 파편은 아주 작아서, 치울때 꼼꼼히 치우지 않으면 나중에 다칠 수 있습니다.) 손님들은 서빙이 늦어져서 기다려야하고, 가게는 순식간에 혼돈의 카오스가 되어 버립니다. 뭐 한가지 위안이 되는게 있다면, 잔이 깨질때 제대로 박살이 나면(이젠 잔 깨지는 소리만 들으면, 어떤 모양으로 깨졌는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정말 상쾌한 와장창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거 정도? 하여간, 제발, 잔은 소중히 다뤄주세요. 바닥에 흩어진 파편 치우다보면 허리가 너무 아프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