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네 와인바 사장 Jun 08. 2019

입으로 맛을 볼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입으로 맛을 볼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법은, 한 모금의 적당량을 입에 머금고, 맛을 느끼고, 와인의 질감을 느끼고, 목구멍으로 넘기고, 여운을 느낀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모금의 적당량이 어느 정도 일까요? 제가 먹는 양이 얼마인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와인잔에 물을 붓고,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뱉고, 계량 스푼으로 재봤습니다. 좀 더럽지만, 어쩔수 없었어요.) 네. 얼추 20ml 정도 되는군요. 소주 한잔의 용량이 70ml 정도되니까, 소주 1/3잔 정도 되겠습니다. 꽤 적은 양이죠? 그런데, 가끔 손님들 중에(아저씨들 회식자리에서 간혹 벌어지는 일입니다.) 와인잔에 와인을 가득 붓고 벌컥벌컥 마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렇게 마시면 순식간에 필름이 끊기고, 다음날 100% 머리가 아픕니다. 와인이 나랑 안 맞아서 아픈게 아니라, 그냥 술을 급하게 마셔서 그런겁니다. (물론 진짜로 와인과 안 맞는 분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건 일단 논외로 하죠.) 와인의 알콜도수가 레드와인의 경우엔 13~16도 정도인데, 소주와 비교해 보면 2~3도밖에 차이가 안납니다. 소주를 물컵에 부어서 벌컥벌컥 마시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죠. 그러니까, 와인을 마실때는 조금씩 천천히 마셔주세요.


자 그럼, 적당량의 와인을 마셨으니 이번엔 맛을 느껴 봅시다. 맛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평생동안 해 온 일이니까요. 입안에 잠시만 와인을 머금어 보세요. 아주 부드러운 푸딩을 먹는다는 느낌으로 살짝살짝 혀로 누르면서 먹어도 되고, 묽은 죽을 먹는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씹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양한 맛이 느껴질 것이고, 와인의 향을 느낄때와 마찬가지 일이 우리 뇌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제가 전에 ‘향’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가져와 보겠습니다. ‘향’을 ‘맛’으로 바꿔서요.


“일단은 아무 생각없이 맛을 보세요. 맛을 보는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에 “아! 이거 그 맛이다!” 혹은 “어? 이거 아는 맛인데 뭐였지?” 혹은 “…뭐지 이건.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게 됩니다. 혀가 느낀 맛을 뇌가 전달받고, 뇌는 순식간에 과거의 기억을 뒤져서 무슨 맛인지 찾아내는 거죠. 무슨 맛이었는지 한번에 찾아내면 다행인데, 보통은 “아악! 이거 무슨 맛이었더라!”하면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짭짭거리며 와인의 맛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같이 마시던 일행과 이 맛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며 대화를 나누게 되죠. 저는 이런 대화의 시간이 참 좋더라구요. 맛이라는 것이 워낙에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성질의 것이라서, 온갖 방법으로 표현을 하려고 서로 애쓰는 것이 은근 재미가 있어요. (아직은 맛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볼수는 없으니까요. 먼 미래엔 맛도 검색이 가능해 질까요? 검색이 가능해진다면, 인공적으로 조합도 가능해질까요? 조합이 가능해진다면, 와인은 존재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때가 되면, 전 뭐 먹고 살아야할까요!?)”


이번에도 결론은 제 밥벌이 걱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여간, 코를 막고 마시면 콜라와 사이다를 구별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 있으실 겁니다. 향과 맛을 느끼는 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고 서로 큰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죠. 그렇다보니 향에 관한 내용과 맛에 관한 내용은 겹칠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입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당연히 있겠죠. 바로 질감입니다.

전 보통 와인의 질감을 세가지 관점에서 봅니다.

첫번째 관점은, '와인의 묽은 정도' 입니다. 물처럼 연한 와인이 있을수 있고, 시럽처럼 찐득한 와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와인의 농축미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비가 많이 온 해에는 포도송이가 물을 많이 머금어서 묽은 와인이 나올 것이고, 비가 적고 날씨가 좋았던 해에는 진하게 농축된 와인이 생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하게 농축된 와인일 수록 입안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주게 됩니다. 혹시 진한 와인과 묽은 와인의 차이를 느껴보고 싶으신가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냥 마시던 와인에 물을 부어보세요. 와인 양조자들이 왜 그렇게 진한 와인을 만드려고 애쓰는지 바로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두번째 관점은, '탄닌' 입니다. 특히나 레드 와인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입안에서 떫은 기분이 얼마나 많이 나는지, 그리고 떫은 기분이 얼마나 부드럽게 나는지를 느껴보면 됩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 부분이니까, 옷감에 비유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단, 여름에 많이들 입는 린넨 옷감을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 린넨 옷감이 얼기설기 성기게 뒤가 비칠 정도로 엮인 것이 하나 있고, 촘촘하고 짱짱하게 엮인 것이 또 하나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 옷감 두가지를 혀로 핥는다고 상상해 봅시다.(천천히 변태처럼 핥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상상해 보셨다면, 촘촘하고 짱짱하게 엮인 상태의 느낌을 탄닌감이 강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이번에는 보통의 린넨 옷감이 하나 있고, 옆에 실크로 만든 옷감이 하나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핥아봅시다. (실크를 핥는 상상을 하니 좀더 변태같습니다.) 상상해 보셨나요? 그렇다면, 실크 옷감을 핥았을 때의 느낌을 탄닌감이 부드럽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그렇다면 이 옷감들을 가지고, 네 가지의 조합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1. 성긴 린넨

    2. 촘촘한 린넨

    3. 성긴 실크

    4. 촘촘한 실크

‘성긴-촘촘한’은 탄닌의 강도에 대한 구분이고, ‘린넨-실크’는 탄닌의 부드러움에 대한 구분입니다. 이때, 탄닌의 강도는 와인이 만들어질때 결정되는 부분이고, 탄닌의 부드러움은 와인이 숙성되면서 변화해가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촘촘한 실크같은 느낌을 주는 탄닌감에 사람들은 높은 점수를 줍니다. 와인은 숙성될수록 맛이 좋다고 하는 이유 중에 한가지 인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촘촘한 실크’같은 탄닌감에 높은 점수를 줄까요? 답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기분이 좋으니까요! 실크를 핥을 때가 당연히 기분이 더 좋지 않겠어요? 까실까실한 린넨 핥아봤자 혀만 따가울 뿐이에요! (뭔가, “나는 변태입니다!”라고 고백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저만의 생각입니까.)

세번째 관점은, '독특한 질감이 있는가' 입니다. 와인을 먹다보면 가끔씩 독특한 질감을 보여주는 녀석들을 만나게 되는데, 먹어보기 전까지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자면, 조약돌을 핥는 듯한 돌의 질감이 느껴질수도 있고, 기름이 섞인듯한 미끌미끌한(오일리(Oily)하다고들 표현합니다.) 질감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포도나무가 재배되고 있는 지역의 땅이나 물의 영향이라고들 하던데, 그런 것 까지 알려고 들면 너무 머리가 아프니, 그냥 재밌다고 생각하며 즐겨주시면 되겠습니다.


자, 이제, 드디어, 삼켜봅시다. 꿀꺽. 술은 마시라고 있는거니까요. 그런데, 아직 안 끝났습니다. 일단 마셨다고 상상해 봅시다. 마시고 나면 보통은 입을 다시면서 남은 맛을 느끼게 되겠죠. 그리고 이때 와인이 입안에 여운을 얼마나 남기는지 느껴봐야 합니다. 와인이 주는 여운은, 와인에 대한 중요한 평가요소중에 하나입니다. 흔히들 ‘피니쉬(Finish)’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와인은 피니쉬가 정말 길다.”

“이건 뒷맛이 아예 없는데? 무슨 절벽이야 그냥. 뚝 하고 맛이 사라져버리네.”

“와, 맛이 입에서 사라지질 않아. 너무 좋아.”

“피니쉬에서 잡맛이 너무 많이 나는데. 뒤끝이 별로다.”

이런 식으로들 표현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비싼 와인일 수록 피니쉬가 길게 느껴지고, 저렴한 와인일수록 피니쉬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피니쉬가 길다고 좋은 와인이라고 일반화 할 수는 없습니다. 기분나쁜 맛이 길게 이어져봤자 불쾌하기만 할 뿐이니까요. 때론 상쾌한 느낌의 피니쉬가 깔끔하게 딱! 하고 끊어지는게 매력으로 다가올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에 제 개인적인 테이스팅 방법을 한가지만 더 얹어보자면,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두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입에 넣자마자 느껴지는 맛, 입에 머금었을때 느껴지는 맛, 목구멍으로 넘길때 느껴지는 맛, 다 마시고 난 뒤 입에 남아있는 맛을 끊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연속된 맛의 흐름으로 받아 들이는 거죠. 그러면 이런 감상들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엔 엄청 프루티했는데, 중간 쯤엔 좀 단맛이 치고 올라오더니, 뒷 맛은 영 맹맹한 것이 남는게 없다.”

“첫 맛은 시큼했는데, 금방 부드러운 느낌이 나더니 은은하게 기분좋게 뒷 맛이 남았다. 입에서 여운이 사라지질 않는다, 숨 쉴 때마다 뱃 속에서 향이 올라온다. 중국술 빼갈 마신 기분이야.”


어떻게 맛을 봐야하는지 열심히 설명해 봤습니다. 그런데요,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사실은 저도 그런 것 신경 안 쓰고 막 마십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가며 마실때는 가게에서 판매할 와인을 골라낼 때이고, 보통은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마십니다. 보통 때의 제가 어떻게 마시는지 잘 모르겠어서 지금 한 모금 마셔봤는데, 적당히 입에 넣고, 꿀꺽하고 삼키고, 입을 짭짭거렸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일반적인 방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평소에 맹물 마실때와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와인 한모금 마실때마다 저런 과정을 기억해서 신경을 쓴다면, 와인 마시다가 피곤해지고 말거에요. 즐겁자고 마시는 거니까, 이런 과정은 그냥 참고만 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와인을 맛 보고 표현하는데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소믈리에가 아니다보니, 와인을 맛보고 느껴지는 맛이 무슨 맛인지 바로바로 알아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지금 느낀 맛이 어떤건지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모르는 만큼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죠. 입으로 맛을 보고 생각난 것을 여과없이 그대로 말하세요. 본인의 입을 믿으세요. 내 입으로 느끼고 떠오른 감상을 그대로 말 하는 것. 그것이 와인을 맛보는 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