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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와인바 사장 May 20. 2019

눈으로 와인을 본다?

"눈으로 와인을 본다?"


우리 가게는 상당히 밝습니다. 바 치고는 매우 밝은 편인데, 책이나 논문을 읽는 다던가, 글을 쓴다던가, 노트북으로 코딩한다거나 하는 분들을 위해 조명을 밝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명이 밝다보니 본의아니게 와인바로서 유리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와인을 보기가 편하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바들은 조명이 어두워서 와인의 색이나 모양들이 잘 안 보이거든요. 그 덕에 와인을 서빙할 때면, 손님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만나게 됩니다.

“어쩜… 이렇게 예쁜 빨간색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이 와인은 엄청 맑네요?”

“와 정말 색이 진하다. 시커멓네.”

“거품이 엄청 많이 생기네요.”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와인의 색과 모양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와인의 색과 모양은 단지 눈을 즐겁게 하는 데에만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신경써서 살펴보기만 한다면요.


일단,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직관적으로 가장 먼저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인, “색상”.

레드와인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레드 와인은 이름 그대로 빨간색입니다. 빨간 포도로 만드니까요. 그런데 좀더 엄밀히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껍질이 빨간색인 포도”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레드와인의 빨간색은 포도 껍질에서 우러나온 색입니다. 그말인즉슨, 껍질을 제거하고 와인을 빚으면 화이트와인을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샴페인 같은 경우가 해당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양조 방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니까, 일단은 이정도로 하고 넘어갑시다.


와인의 색이 포도껍질에서 우러나온다고 했는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빨간 포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마다 연한 빨간색부터 검붉은색까지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레드와인의 붉은색도 다양한 분포를 보여줍니다. 그동안 먹어본 레드와인들을 생각해 봤을 때, 아래 색상표의 표시된 부분 정도의 범위입니다.

레드 와인의 빛깔은 이정도 영역.

색상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빨간색을 기준으로 해서 파란색이나 노란색을 섞은 색깔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검은색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색의 진하기가 결정이 됩니다.


방금전에 색깔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수 있다고 했는데, 색을 보고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술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만든지 얼마안된 레드와인은 파란색 쪽의 색깔을 띄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보라색을 띄는 것이죠. 제일 대표적인 경우가 “보졸레 누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요즘엔 편의점에서도 가을이 되면 “보졸레 누보” 판매 행사를 하니까요. “보졸레 누보”가 무엇이냐면, 프랑스 보졸레 지방의 와인인데,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바로 만들어서 바로 시장에 출시된 와인입니다. 막걸리로 치자면 ‘햇막걸리’라고 볼 수 있죠. 수확하자마자 빚어서 만든 와인이다 보니까, 과실향이 풍부하고 쉽게쉽게 마실수 있는 와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졸레 누보”는 보라색에 가까운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금 빚어낸 와인이다보니, 포도 본연의 색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죠. 물론, 모든 “보졸레 누보”가 보랏빛인건 아닙니다. 와인에 대한 규칙은 언제나 예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그렇다면 좀더 시간이 지난 와인은 어떻게 될까요? 파란색이 점점 사라지고 노란색쪽으로 색이 변해 가게 됩니다. 순수한 빨간색의 와인이 되었다가, 점점 오렌지색으로 변해가는 것이죠. 그리고 오렌지색으로 변해가면서 싱싱한 과실의 향은 줄어들고, 숙성되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향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와인은 파란색이 거의 사라져가는 빨간색일 경우가 많습니다. 와인 생산자들이 와인을 만들고 나서, 적당히 시간이 흐른 다음에 시장에 출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5-6년 정도? 그렇다면, 5-6년 정도 지난 와인은 오렌지 빛을 띄게 될까요? 아닙니다. 오렌지 빛 색깔의 와인을 만나는 건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저도 살면서 몇 번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10년이상의 오랜 기간이 흘러도 오렌지색이 보일까 말까 하니까요. 그래도 만약 아주 오래된 와인을 마실 때(최소 10년 이상) 벽돌색의 와인을 만나게 된다면, 그 정도면 오렌지색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왜냐면 빨간색+약간의 노란색+검은색이 벽돌색이니까요. 


방금 전에 검은색을 언급했는데, 검은색은 와인의 진하기를 알려주는 척도입니다. 검은색이 별로 없는 와인일 수록 물처럼 맑은 와인인 것이고, 검은색이 진하게 나타날 수록 우유처럼 농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을수록 찐득찐득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기본 빨간색에 검은색이 엄청 많이 섞이고, 거기에 약간의 파란색이 섞인 와인이 인기가 있습니다. 소주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진한 느낌이 입안을 꽉 채우는, 그리고 과일향이 풍부한 와인이 인기가 있더라구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위장이 약하기도 하고 부드럽고 향긋한 느낌을 좋아하다보니, 검은색 약간에 파란색은 전혀 없고 아주 약간의 오렌지빛이 감도는 붉은색 계열의 와인을 좋아합니다. 오래 묵은 와인을 좋아하다보니 더더욱. 그런 이유로 우리 가게는 색이 진하지 않은 와인들을 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진한 와인이 인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집이 장사가 잘 되지는 않습니다. 네. 슬픈 일입니다. 나도 돈 벌고 싶은데.

다음은 화이트 와인입니다.

화이트 와인은 사실 흰색이 아닙니다. 레드 와인에 비해서 색이 연하고 투명하다보니 화이트라고 부를 뿐입니다. 진짜 화이트라고 부르려면 막걸리나 소주 정도는 되어야겠죠? 하여간, 화이트와인은 청포도로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청포도는 연두색입니다. 그런데 청포도는 잘 익으면, 연한 노란색에 가까운 색깔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화이트와인은 엷은 연두색부터 엷은 노란색의 색깔을 띄게 됩니다. 그런데, 색 자체가 레드에 비해 너무 연하다보니, 포도품종마다 색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색의 분포가 그렇게 넓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연두색이 보인다고 말은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화이트 와인은 엷은 노란색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끔, 미세하게 연두빛이 언뜻언뜻 보이는 화이트 와인을 만나 볼 수는 있지만, 흔하지는 않습니다.


아까 레드 와인을 이야기하면서, 와인이 오래묵을 수록 오렌지 빛을 띈다고 했는데, 화이트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오렌지 빛이 나는 화이트와인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애초에 화이트와인 자체가 갓 만든 싱싱한 느낌을 추구하다보니, 레드와인에 비해 더욱더 만나보기가 힘듭니다. 레드와인은 보통 3년정도 묵혔다가 시장에 풀리는 경향이 있는데, 화이트 와인은 그 해에 만들어진 와인들이 시장에 바로바로 공급된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비싸고 유명한 화이트와인의 경우에 간혹 장기보관을 해서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볼 수 있을겁니다. 물론, 저도 아직은 본적이 없습니다. 유명 소믈리에의 기행문에서 사진으로나 본 적 있을 뿐입니다. 30-40년 묵은 화이트와인에서나 볼 수 있는 색깔이니까요.

화이트 와인의 색깔 영역

그럼 “색상”에 대한 것은 이정도로 하고, 다음에 살펴볼 것은 “투명도”

투명도라는 건 와인의 뒤로 빛이 얼마나 잘 비치는지를 말합니다. 와인잔 뒤로 글자가 보이느냐 안보이느냐를 확인해 보는 것이죠. 확인해보는 손쉬운 방법으로는, 와인잔 뒤에 명함을 놓고 본다던가, 가게 이름이 적힌 테이블 냅킨의 글자를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당연히, 검은색이 많이 섞인 레드와인 일수록 글자를 보기가 힘들겁니다. 화이트 와인은 대부분 아주 잘 보일 것 이구요. 


그런데 투명도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와인 안에 불순물(미세한 입자)이나 미세한 기포가 얼마나 들어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와인에 작은 입자나 기포들이 떠 다녀서 뿌연 상태라면, 화이트 와인일지라도 글자를 보기가 힘들게 됩니다. 미숫가루를 상상해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거에요. 보통은 이렇게 와인이 뿌연 상태라면, 좋은 상태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와인이 상해서 속에서 썩어서 찌꺼기가 떠 다닌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아주 오래 숙성시킨 와인의 경우에는, 숙성과정에서 발생한 침전물이 섞여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상한 것이 아니니, 잔에 와인을 따를때에 침전물이 섞이지 않도록 조심해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게다가, 요즘에 유행하는 내츄럴 와인의 경우에는, 양조방법의 문제로 간혹 뿌연 상태의 와인이 유통 되기도 합니다. 뭐, 이런 경우라면 애초에 와인을 구매할 때, 소믈리에가 미리 설명을 해줄테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을겁니다.


다음은 “거품”.

스파클링 와인 좋아하시나요? 스파클링 와인이나 샴페인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입니다. 거품이 뭐 그리 다를게 있을까 싶겠지만, 상상이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거품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최상의 거품 상태는, 

첫째, ‘아주 미세한 거품이’, 

둘째, ‘균일하게’, 

셋째, ‘계속해서(지속적으로)’ 생기는 것

입니다. 유명한 샴페인 메이커들은 샴페인 한 병안에 발생하는 기포의 개수까지 계산해서 양조를 한다고도 하더라구요. 거품의 크기가 불규칙하고, 거품의 크기가 클수록, 저가의 스파클링 와인일 가능성이 높고, 고급 스파클링 와인일수록, 거품이 미세하고, 와인잔 안에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입 안에서 터지는 기포의 상쾌함이 남다릅니다. 이건 정말 겪어봐야 알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하죠.

샴페인 전용잔에 고급 샴페인을 담으면, 이런식으로 거품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꼭 언급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와인의 눈물'이라고 불리우는, 잔을 살살 돌렸을 때(스월링. Swirling) 와인이 방울져 흐르는 모양. 네. 와인 좀 안다고 으쓱하고 싶어하는 동네 아저씨들이, 

“와인의 눈물이 많이 흐를수록 좋은 와인이야”

라며 주로 언급하는 레파토리죠. 그런데. 글쎄요. 과연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와인이 방울져서 천천히 흐르는 건 크게 두가지 요인입니다. 당도가 높거나, 알코올도수가 높거나. 당도가 높다는 건, 커피에 섞는 시럽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끈적거리니까 당연히 천천히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방울져서 흐르게 되는데, 물과 알코올의 표면장력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현상입니다(마랑고니 효과. Marangoni effect). 즉, 와인이 흐르는 모양을 보고 알코올 도수를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실험적 측정을 통해서 알코올 도수를 확인할 수 없었던 먼 옛날에는, 와인의 눈물을 보고 술이 얼마나 독한지를 판단할 수 있었을테니,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알코올 도수가 친절하게 병에 적혀있는 요즘에는, 와인이 흘러내리는 모양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보기에 예쁠수는 있지만(그 모양이 미적 관점에서 정말 예쁜지 아닌지는 논외로 합시다) 알코올 도수는 와인의 품질과는 거의 상관이 없으니까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일수록 와인의 품질이 좋아진다면, 화이트 와인과 샴페인은 무조건 레드 와인보다 저급이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즉, 와인이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도, 좋은 와인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뭐, 달고 독하겠죠.

엄청 달고 독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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