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평소에 단정적인 표현을 잘 쓰지 않는 편입니다. 제 지식과 기억은 항상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글을 쓸 때에도 그 버릇이 남아있어서 단정적인 표현을 자꾸 피하곤 합니다. 글쓰기에 관한 글을 읽어보니, 자신 없어하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며, 자기의 말에 책임을 지라고 하던데, 전 좋은 글 쓰기엔 글러먹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확실히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단맛이 얼마나 있느냐, 탄닌감이 얼마나 있느냐는 좋고 나쁜 와인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항상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달콤한 것은 여자들과 애들이 좋아한다.’ 라는 선입견이 생겨난 이유가 뭘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이 문장 속에 숨겨진 의미가 하나 있는데, 바로 ‘여자들과 애들은 입맛이 고급이 아니며 맛에 대해 잘 모른다.’ 라는 것입니다. 고급이 아닌 입맛에, 맛에 대한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단맛을 좋아한다는 소리일까요? 남자들이 좋아하는 술이 고급술이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술은 고급이 아닌 것일까요?
전 와인 고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하수도 분명히 아닙니다. 그런데, 전 달콤한 와인도 매우 좋아합니다.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의 달콤한 와인들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최고급 스위트와인은 가격도 어마어마해서 군침만 흘리곤 합니다. 그리고, 손님들 중에서 단 술을 싫어하는 여자 손님들은 차고 넘치고, 항상 단 와인만 주문하는 남자 손님도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적지않은 시간 동안 가게를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단맛에 대한 호불호는 남녀 성별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선입견은 너무나 강력히 작동하고 있어서, 며칠전 가게에 왔던 술 좋아하시는 여자손님은 달콤한 와인을 드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 달아서 별로지만, 여자들이 되게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전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음. 그럼 손님은 여자가 아니신가요?”
과거 고대 및 중세시대에는 단맛은 귀족들만이 즐길 수 있는 맛이었다고 하는데, 어쩌다가 단맛에 대한 시선이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산업의 발전으로 설탕이 대규모로 공급되었기 때문일까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고급이 아니라서?
탄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탄닌감이 강하다고 해서 고급와인이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저희 가게 와인 리스트에 있는 와인들은 대부분 탄닌감이 강하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왜냐면, 제가 탄닌감이 강한 와인을 싫어하거든요. 탄닌 강한 와인은 속도 부대끼고, 한 두 잔 마시고 나면 부담스러워서 더 마시고 싶어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렇다면, 부드러운 와인만 팔고 있으니, 우리 가게가 저급의 와인을 취급하는 가게일까요? 좀 쑥스럽지만, 나름 와인을 고를 때 최선을 다해서 고르고 있고, 급이 떨어지는 와인을 판다고 스스로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간혹 상당히 고가의 와인을 리스트업 할 때도 있구요.
제 생각엔, ‘드라이하고 탄닌이 강한 와인이 좋은 와인이다’라는 선입견이 퍼지게 된 건 한국식의 술 문화와 남녀취향에 대한 선입견이 영향을 미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인 남성들의 소주 및 양주 문화가 와인에 반영되었다는 것이죠. 술의 주 소비층인 성인 남성들의 기준에서는 술이라면 입에 넣었을때 강렬한 느낌을 줘야하고, 숙성이 덜 된 와인에서 느껴지는 터프한 탄닌감이 그 욕구를 충족시켜줬을 듯 합니다. 거친 느낌의 칠레와인이 한국시장에서 성공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이전에 영화 ‘킹스맨’ 1편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적절한 예가 될 것 같아서 한번 더 언급해 보겠습니다. 콜린 퍼스와 사무엘 잭슨이 독대하여 식사하는 씬에서, 사무엘 잭슨이 프랑스의 고급 레드 와인을 꺼내들더니(샤또 라피트-로칠드, Château Lafite Rothschild) 이 와인엔 맥도날드라며 버거를 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콜린 퍼스는 이걸 다 먹고 나면 트윙키(미국의 달콤한 과자, Twinkies)에 고급 스위트 와인을(샤또 디켐, Château d'Yquem) 먹으면 될 것 같다고 응수를 하죠. 와인을 좋아하는 저에겐 매우 인상적이고 유쾌한 장면이었습니다. 스위트 와인을 언급한 콜린 퍼스가 이 상황에서 급이 떨어지는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정말 최고의 응수였죠.
달콤한 와인이 좋다거나, 탄닌 강한 와인이 좋다거나 하는 것은 그냥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와인이 존재할 뿐입니다. 고기에는 레드와인, 생선에는 화이트와인, 디저트엔 스위트와인이라는 식으로요. 그러니, 달콤한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이 ‘어떤 와인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신다면, 당당히 ‘전 달콤한 와인이 좋아요!’라고 말씀하세요. 혹시 그런 답변에 대해서 ‘아직 와인을 잘 모르시는 초보시군요’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런. 와인에 대한 선입견에 빠지신 분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