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폴리페놀’이라고 건강보조제로 많이 팔리는 이름 들어 본적 있으신가요? 항산화 성분이라며 많이 팔리는 성분 중에 하나인데, 바로 이 폴리페놀이라는 물질에 속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탄닌 입니다. 하루 한잔의 레드 와인이 심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비롯되기도 하였습니다.
탄닌(Tannin)은 포도알의 껍질, 줄기, 씨앗에서 추출되는 성분 중에 하나입니다. 단지 포도나무만이 가지고 있는 성분은 아니고, 대부분의 식물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성분입니다. 그렇다보니, 와인을 숙성할 때 사용하는 나무통에서 와인에 녹아들기도 합니다. 포도껍질에도 들어있는 성분이라서, 아무래도 화이트와인보다는 레드와인에 더 많이 들어 있고, 레드 와인을 마시고 입 안이 뻑뻑해지고 마르는 느낌(밤 껍질 안쪽이나, 덜 익은 감에서 느껴지는 떫은 맛)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 탄닌 성분 때문입니다.
탄닌은 와인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상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와인이 탄탄한 느낌(볼륨감, 바디감 혹은 골격)을 주도록 해주고, 장기 보관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포도나무가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만들어 낸 물질이, 인간의 쾌락을 위해 꼭 필요한 물질이 되었다는 걸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말 이상한 생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간, 저희 가게에는 레드 와인만 마시면 그렇게 숙취가 심하다고 말씀하시는 단골손님이 있습니다. 나름 그래도 와인가게인데, 숙취 때문에 항상 맥주나 위스키만 드시고 계시죠. 술을 너무 빨리 마셔서 그렇다, 혹은 많이 먹어서 그런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 이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유는 탄닌입니다.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매우 적은 확률로, 탄닌에 취약한 분들이 계십니다. 혹시 본인이 아주 진한 다크 초콜릿이나 입이 엄청나게 텁텁해지는 블랙 티를 먹을 때, 뭔가 기분이 좋지 않다면, 탄닌에 약한게 아닐까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와인을 먹고 싶다면, 화이트 와인을 추천합니다. 아무래도 레드 와인보다는 탄닌이 적으니까요.
그리고 한가지 더. 전에 화학 쪽 지식을 가진 손님과 대화하다가 탄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 손님이 탄닌의 화학식을 찾아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탄닌의 구조식 상, 시간이 흐르면 분자의 가지들이 끊어져 나가는 형태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와인의 맛이 변하는게 어쩌면 탄닌의 구조 때문일 지도 몰라요.”
실제로 와인은 오래 숙성될 수록 탄닌감이 부드러워집니다. 만들어진지 오래되지 않은 와인일 수록 탄닌의 느낌이 거칠고 강하게 느껴지고, 오래 묵은 와인일수록 부드럽고 섬세한 탄닌의 느낌을 주기 마련이죠. 그리고 와인을 열어서 마시는 와중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탄닌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현상들을 기초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좀 멋있는 것 같지 않나요?
(위의 탄닌 구조식 그림은 아래의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winesociety.stanford.edu/life-and-times-tannin-molecu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