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와인과 관련된 잘못된 상식들이 꽤 퍼져있는데, 제가 보기에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드라이하다”라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dry”의 사전적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Dry 의 사전적 정의 :
IV. (of liquor) having a low residual sugar content because of decomposition of sugar during fermentation
반의어 : sweet
(다음 영영사전에서 발췌)
즉, “dry”는 “알콜음료에서 단맛이 적게 난다”라는 의미입니다. “드라이한 와인 = 달지 않은 와인”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포도 과실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효모균이 포도의 당분을 먹고 알콜과 이산화탄소를 뱉어내게 되고, 발효가 끝났을 때 남아있는 당분이 별로 없다면 단맛이 별로 없는 “드라이한” 와인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포도과실이 엄청 잘 익어서 많은 당분을 가지고 있었다면 효모균이 활동을 멈춘 이후에도 많은 당분이 남아서 달콤한 와인이 만들어지게 되겠죠.
그런데, 손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상당히 많은 분들이 “dry”하다라는 표현을 “입이 떫어지는”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시더라구요. 이럴 경우, 추천해주는 사람과 손님 사이에 의미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잘못된 와인추천을 하는 일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손님은 “전 드라이한 와인이 좋아요(떫은 느낌의 와인이 좋아요)”라고 말했는데, 달지는 않지만 떫지도 않은 와인이 서빙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아직 “드라이”라는 표현이 손님마다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던 시절, 한 손님이 “드라이”한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전 그때 부드러운 느낌의 드라이한 와인을 추천해 드렸습니다. 전 떫은 와인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가게 와인 리스트에 떫은 와인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손님이 별로 드라이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전 이 손님이 단맛을 매우 싫어하시는 손님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손님 정말 드라이한 와인을 좋아하시나봐요. 담부터 어디가서 와인을 주문하시게 되면 꼭 ‘드라이 드라이’한 와인 달라고 강조하세요."
‘드라이 드라이’라니! 이게 무슨 '고무고무 열매'도 아니고! 정말 한숨만 나오는 멘트였습니다. 지금도 이 때를 생각하면 이불이 천장에 꽃힐 정도로 이불킥을 하고 부끄러워집니다. 뭐, 누구나 처음엔 실수를 하는 법이라고 위안할 뿐이죠.
그렇다면, 떫은 와인을 표현하는 방법은 뭘까요?
일단은, 그냥, “전 떫은 (빡빡한) 느낌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와인을 드시는 손님의 경우라면, 어려운 표현을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전에도 말했지만, 와인을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맛있게 즐기기만 하면 될 뿐이죠.
하지만, 좀 더 전문적인 표현을 원하신다면 “탄닌 느낌” 혹은 “탄닌감”이라는 표현을 쓰시면 됩니다. 와인에 들어있는 “탄닌(Tannin)”이라는 성분이 바로 그 떫은 느낌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감이나 밤껍질에서 느껴지는 떫은 느낌도 마찬가지로 “탄닌”성분 때문입니다.
“드라이하다”라는 표현이 왜 이런 혼란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Tannin”에 대해서 검색하다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You experience the effect of tannins any time you drink a wine that creates a drying sensation in your mouth. - 와인을 마실 때 탄닌의 영향으로 입이 마르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즉, “입이 마르는 기분”과 “달지 않은 맛”의 번역이 꼬이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이니 어디 가서 말하진 마세요.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하여간, 그러니까, 정확한 추천을 위한 표현을 다시 써보자면, “전 떫은 느낌의 와인이 좋아요” 혹은 “전 탄닌감이 강한 와인이 좋아요” 라고 말씀하시면 원하시는 와인을 추천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