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위스키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저희 가게에서는 위스키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와인이 메인이다보니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고, 기본 엔트리 라인업(10~15년산) 위주로 구비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꽤나 많은 손님들께서, 위스키를 처음 마셔본다면서 어떻게 마셔야 하냐고 물어보시곤 합니다. 그럴때면 전 위스키잔에 위스키를 따른 후, 언더락잔에 얼음을 넣어서 서빙해 드린 뒤 이렇게 대답합니다.
“향수를 마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향수는 마시면 안되는거잖아요? 그러니까, 먹어선 안되는 걸 먹는다는 기분으로 입술에만 살짝 위스키를 묻혀 보세요. 그리고 향이 입안에 퍼지는걸 느껴보세요. 약간이긴 하지만 맛도 분명히 느껴질테니 맛도 느껴보시구요. 그렇게 조금씩 먹어보다가, 알콜에 입이 익숙해진다 싶으면, 입안에 넣는 양을 조금씩 늘려서 홀짝홀짝 마셔보세요. 그러면 맛도 향도 더 잘 느껴질 꺼에요. 그런 다음에는, 지금 드린 얼음잔에다가 위스키를 반만 부어보서 먹어보세요. 위스키를 얼음에 부으면, 물과 섞여서 순해지니까 먹기가 더 편해져요. 하지만 온도가 낮아져서 향이 덜 느껴지긴 하죠.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먹을수도 있고(‘스트레이트’라고 부르기도 하고, ‘니트’라고 부르기도 해요), 얼음에 부어서 언더락으로 먹을수도 있고, 소다수랑 섞어서 하이볼로 먹을수도 있는데, 위스키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취향 차이입니다. 위스키를 마시는 방법에 정답은 없으니까요. 스트레이트와 언더락 두 가지 방법으로 다 마셔보고, 본인이 더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보시라고 이렇게 드리는 겁니다.”
제가 뜬금없이 위스키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위스키뿐만 아니라 와인 역시도 향수를 마신다고 생각해 보시면 좋겠다 싶어서 입니다. 입으로 맛보는 것 뿐만 아니라, 코로 향을 맡는 것도 의식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테니까요. 게다가 코로 와인향을 맡는 그 순간은, 대충 넘어가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향을 어떻게 맡아야 할까요? 당연히 코로 맡으면 되겠죠. 그런데, 코는 매우 예민한 감각기관이고, 예민한 만큼 빨리 피로를 느끼고 무디어집니다. 인간이 구별해 낼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거의 1만가지라고 하지만, 같은 냄새를 계속해서 1분 넘게 맡기는 어렵다고 하죠. 그러니, 코가 피곤해지지 않도록 쉬엄쉬엄 천천히 향을 맡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심호흡하듯이 깊게 들이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폐로 냄새를 맡는건 아니니까요. 평소에 숨쉬듯이 숨쉬어도 충분하지만, 좀더 집중하고 싶다면 차분히 눈을 감고 살짝 킁킁거리는 것도 좋습니다. 개들이 냄새를 맡을 때 킁킁거리는 것을 본적 있으신가요? 코를 덜 피곤하게 하려고 그렇게 맡는다고 합니다. 개들은 본능적으로 효율적인 냄새맡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일단은 아무 생각없이 향을 맡아보세요. 향을 맡는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에 “아! 이거 그 냄새다!” 혹은 “어? 이거 아는 냄새인데 뭐였지?” 혹은 “…뭐지 이건. 처음 맡아보는 냄새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게 됩니다. 코가 맡은 냄새를 뇌가 전달받고, 뇌는 순식간에 과거의 기억을 뒤져서 무슨 냄새인지 찾아내는 거죠. 무슨 냄새였는지 한번에 찾아내면 다행인데, 보통은 “아악! 이거 무슨 냄새였더라!”하면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킁킁거리며 와인의 향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같이 마시던 일행과 이 냄새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며 대화를 나누게 되죠. 저는 이런 대화의 시간이 참 좋더라구요. 향이라는 것이 워낙에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성질의 것이라서, 온갖 방법으로 표현을 하려고 서로 애쓰는 것이 은근 재미가 있어요. (아직은 향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볼수는 없으니까요. 먼 미래엔 냄새도 검색이 가능해질까요? 검색이 가능해진다면, 인공적으로 조합도 가능해질까요? 조합이 가능해진다면, 와인은 존재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때가 되면, 전 뭐 먹고 살아야할까요!?)
하여간, 그와 동시에, 우리의 뇌는 한가지 판단을 더 합니다. “냄새 좋아!” 이거나 “냄새 싫어!”. 냄새가 너무 좋다며 안 마셔도 행복하다며 진짜로 냄새만 맡으면서 앉아있던 손님도 있었고, 이런 냄새 나는 향수가 나오면 평생 그것만 쓸 거라고 소리치던 손님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냄새가 너무 이상해서 웃기다는 반응이 나온 적도 있고, 걸레 빤 물 냄새(20-30분 뒤에 엄청난 꽃다발 냄새로 바뀌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때문에 모두가 당황하는 상황도 겪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냄새에 대한 호불호는 전적으로 개인 취향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청국장, 오이, 홍어, 고수 등등 수많은 예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와인의 냄새가 좋은지 싫은지 표현하는데 망설이지 마세요. 내가 느끼기에 좋은 냄새가 난다면 즐겁게 와인을 마시면 되는 것이고, 싫은 냄새가 난다면 다음 번에 그 와인은 고르지 않는 것으로 하시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와인일 지라도, 내 마음에 안들면 아웃입니다. 내 돈 주고 사먹는 와인인데, 유명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싫은 냄새 나는 와인을 억지로 참아가며 마실 이유는 없잖아요? 물론 내 혈관이 간절히 알콜을 원하는데, 지금 구할 수 있는 술이 이것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