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팅 노트는 와인을 마시고 난 뒤에 그 감상을 적어놓은 기록을 말합니다. 독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책에 대한 감상평이나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는 등 나름의 독서노트를 적을 수 있을 것이고,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영화를 보고 나서 간단하게 어느 점이 좋았고 아쉬웠고 그래서 이 영화가 어땠는지 감상을 적을 수 있을겁니다. 나만의 별점을 매기기도 하구요. 테이스팅 노트도 동일합니다. 내가 먹어본 와인의 색과 향과 맛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죠. 인간의 기억은 왜곡되기 쉽고, 쉽게 잊혀지거든요.
어차피 내가 볼 내용이니 마음대로 적어도 되기는 하지만, 약간의 형식은 필요합니다. 이유는 그 기록이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가져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프랑스 와인 먹음. 와 진짜 대박. 맨날 먹고 싶네”
라고 테이스팅 노트를 적고 끝냈다고 합시다. 사진이라도 찍었다면 다행이지만, 사진도 없다면, 이 테이스팅 노트는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일년 뒤에 그 테이스팅 노트를 봤을 때, 남은 정보라고는
“프랑스 와인, 맛있다”
밖에 없으니까요. 무슨 맛 이었는지도 모르겠고, 다시 사고 싶어도 찾을 방법도 없는 것이죠.
그런 이유로, 제가 생각하기에 테이스팅 노트에 적을 최소한의 정보를 골라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마신 날짜, 마신 장소, 같이 마신 사람, (혼자 마신다면) 술 마시며 하는 행동(XX책을 봤다, 넷플릭스를 봤다, 등등)
- 와인 이름, 와인 생산자 이름(와이너리)
- 생산 년도(빈티지), 품종
- 생산 국가, 생산 지역
- 가격
- 본론 : 색, 향, 맛, 느낌, 본인의 혹은 같이 마신 사람의 반응, 시간 별 감상, 가성비 등 생각나는 것을 자유롭게 적습니다.
- 총평 : 그래서 이 와인이 좋았는지 싫었는지, 이 와인을 한 두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 할 수 있는지를 적습니다.
마신 날짜 뿐만이 아니라, 마신 장소와, 함께 마신 사람도 적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시나요? 저는 정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전 테이스팅 노트가 일기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늘의 경험을 나중에 되돌아보기 위한 기록이라는 점에서요. 즉, 그 당시의 기억을 잘 떠올려주는 기록이 좋은 기록인 것이고, 그런 이유라면 날짜와 장소와 사람을 같이 기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죠. 와인을 전문적으로 마시는 사람이 아닌 이상, 보통은 밖에서 지인과 즐기면서 마시는게 보통이잖아요. 나중에 테이스팅 노트를 폈는데,
“영화 A를 보고나서, 여자친구 B랑 먹음”
이라고 써 있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날 영화가 재밌었고, 술이 맛있어서 분위기도 더 좋았다면 그 와인의 맛이 어땠는지 순식간에 생각날 것 같지 않은가요?
그래도 혹시, 좀더 전문적으로 테이스팅 노트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드신다면, 구글에 ‘wine tasting note’라고 검색을 해보세요. 그리고 ‘이미지’ 탭을 눌러보면, 다양한 와인 테이스팅 노트 양식이 검색됩니다. 검색된 노트들을 살펴보시고, 마음에 드는 것을 가져다가 쓰시면 됩니다.
하여간, 테이스팅 노트를 쓰는 것은 정말 추천할만한 일입니다. 이런 종류의 기록은 쌓일수록 힘을 발휘하는 법이고, 기록이 쌓일수록 나의 내공이 쌓여간다고 말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추가로, 매우 부끄럽지만(이런 점도 일기와 비슷하군요), 제가 가게에서 일하면서 적었던 테이스팅 노트 몇가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고른다고 골랐는데, 좋은 예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군요. 참고가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