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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와인바 사장 Dec 16. 2018

나는 '혼술'이라는 단어가 싫다.

손님이 별로 없던 그날, 사장은 가게를 일찍 닫고 평소에 들르던 다른 칵테일 바로 향했다. 사실 그날은 진상 손님이 가게에서 깽판을 치고 나간터라, 기분이 그닥 좋지는 않았다. 오죽했으면 가게 문앞에 소금을 뿌렸을까. 그런데 그런 하루의 보상이라도 되는 듯, 단골 바에서 오늘의 특별 안주라며 석화를 내주고 있었다. 석류가 올라간 생 석화와, 치즈와 빵가루를 올리고 오븐에 구워낸 석화를. 사장은 통장잔고 따윈 잊어버리고 샴페인을 시켰다. 오늘만 산다는게 정말 이런거 아닐까 싶다. 칵테일바라고는 하지만, 석화가 있는데 어떻게 샴페인을 시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와인바 사장의 자존심이 있지. 사장은 오랜만에 기분좋게 술이 취했다. 그리고 친한 바텐더에게 떠들기 시작했다.


“난. ‘혼술’이라는 단어가 싫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가게 열고나서 2-3년쯤 지나고 나서였나? 갑자기 ‘혼술’이라는 단어가 sns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처음엔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단어인가 싶었어요. 단골손님들과도 서로 ‘그 단어’ 들어봤냐며 몸서리쳤었죠.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당연히 ‘혼술’이라는 단어를 써요. 솔직히 지금도 전 적응이 안돼요. 가끔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곤 해요.


“이 집은 뭐야? 요즘 유행하는 혼술집인가보다. 요즘 이런집 많이 생기더라.”


요즘 이런 집이라니! 우리집은 그 단어가 생기기전부터 존재하던 집이라구요!

한동안 기분나빠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혼술’이라는 단어의 정체가 뭐길래 난 이렇게 기분나빠하고 몸에 닭살이 돋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던 어느날, 가게 단골 K양이 왔어요. 책도 많이 읽고 시선도 예리한 분이에요. 그분한테 "혼술"에 대한 의견을 물었죠. 몇 번의 대화가 오고간뒤, K양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이건 '라이프 스타일'과 '액티비티'의 차이라고 할 수 있죠."


들어보세요. 사실 바에 혼자 다니는 사람은 옛날부터 많았어요. 저만 하더라도 20살때부터 바에 혼자 다녔었거든요. 이건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요즘엔 혼자 사는 사람도 많고, 아예 원래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어쩔수 없이 서울로 상경하다보니 서울에 친구가 없는 사람도 많고, 친구는 많지만 서로 바쁘다보니 만날 수 없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집 근처에서 한잔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거 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혼자서 한잔 하는 사람들이, 알고보니 요즘 흔히 말하는 ‘얼리어답터’였던거에요. 한잔하면서 sns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이게 뭔가 멋있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혼자 술 먹는걸 sns에 올리기 시작한거에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언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 단어가 탄생한거죠.


“혼술”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나 오늘 혼술하러가.” 생각해보면, 제가 닭살돋았던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었어요. ‘혼술’을 하러간다?


자 봐요. ‘혼술’은, 하러가는게 아니에요. 혼자 술을 마시러 가는거죠. ‘영화를 보러간다’는 건 맞는 문장이지만, ‘혼술을 하러간다’는 건 뭔가 대단히 이상한 문장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다들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어요. ‘혼술 하러가.’라고. 라이프 스타일이었던 ‘혼술’이, '액티비티'가 된거예요! ‘영화 보러가’랑 ‘혼술 하러가’가 동급이 되어버렸다구요! 이 차이 알겠어요? 라이프 스타일과 액티비티? 이렇게 혼술이 라이프스타일에서 액티비티로 성질이 바뀌면서 저같은 가게는 피해를 입기 시작해요. 혼술을 하러온 손님이 와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려던 손님을 방해하는거죠. 그리고 더 최악인게 뭔지 아세요? 보통 ‘혼술’을 하러온 손님은, ‘혼자 왔다가 둘이 나가고’ 싶어한다는 사실이에요.


한창 ‘혼술’이라는 테마가 주목받던 시기에, ‘혼술’을 테마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진 적이 있어요. 그리고 전 그 드라마의 홍보팀에게 같이 프로모션 이벤트를 하자고 연락을 받았죠. 좀 고민을 하긴 했지만, 딱히 마케팅을 해 본적이 없었던 지라, 일단 해보자고 하고 이벤트를 진행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된 줄 알아요? 이벤트 공지를 보고 혼자 온 어떤 남자 하나가, 앉은 자리에서 보드카 6잔을 원샷하더니, 30분만에 만취해서는 옆에 앉은 단골들의 대화에 난입하기 시작한 거에요! 아무리 제가 제지해도 듣지도 않고 남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분위기 개판을 만들어 버린거죠. 혼자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그 어떤 이해도 없이, 그냥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사장은 양손을 들고 V 손모양을 만들더니, 집게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까딱까딱거렸다.) 목말라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전 그 단어도 엄청 싫어해요. 소통. 뭐 하여간에. 아니면 그냥 바에 와서 여자와 썸을 타는 판타지를 꿈꾸고 있던 걸 수도 있고요.


아, 정말.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나네요. 미안해요. 하여간에. 전 ‘혼술’이라는 말이 싫어요. 정말 싫어요. 앞으로도 좋아질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황당한게 뭔지 알아요? 우리집이 ‘혼술하기 좋은 집’으로 검색된다는 사실이에요. 이게 과연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전 정말 모르겠어요. 장사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겠지만, 제 정신건강에는 나쁜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린 사장은, 계산을 하고 난 뒤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러 나갔다. 하지만 뭔지 모를 찝찝함이 남아서 영 개운치가 않았다. 악명 높은 서울 택시가 도착을 했고, 택시에 타자마자 담배 쩌든냄새가 샴페인과 굴 냄새로 가득했던 콧속을 점령해 버렸다. 속이 울렁거렸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에 약간의 흥분했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이내 몇가지 질문들이 떠올랐다. 바텐더에게 속 얘기를 쏟아낸 오늘의 나는 과연 ‘혼술’을 한 것인가, 아니면 바텐더에게 푸념을 쏟아내고 나온 것 인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역시 결국 ‘혼술’이라는 단어의 굴레에 씌여서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것 인가.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점은, ‘혼술’이라는 단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고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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