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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27. 2024

2월 19일 그리고 26일 월요일

실안개가 짙게 낀 월요일과 맑은 월요일의 일기

1. 2월 19일: 안개

아침에 일어나 아기를 안고 창밖을 보는데 집 앞 야트막한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껴있었다. 아파트 위로 비행기가 꽤 낮게 지나가는 지역이라 이런 날이면 비행기 구경은 어렵겠다 싶어 진다. 예전이었으면 안개가 자욱해 비행기가 몇 편이 결항되고 그중 내가 맡은 노선의 비행기가 결항될까 봐 노심초사 전전긍긍했을 텐데, 이제 그런 마음이 0.0001%도, 실수로라도, 꿈에서라도 들지 않는 걸 보니 이제 정말 그 직업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안갯 속에 비까지 추적거리며 내리는 바람에 아기 유아차 위로 비닐 커버를 씌웠다. 금방 차를 탈 예정이라 씌우지 않아도 그만이었지만 아기가 짧게나마 비구경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한 번 산책은 거의 매일 지키고 있어 아기가 더 어리고 가벼울 때는 아기띠에 대롱대롱 매달아 우산을 쓰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아기는 우산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빗소리에 놀라 울먹거리기도 했다. 스스로 우산을 들고 걸을 때까지 아주 오래도록 이런 산책을 하게 되겠지만 장화 신고 첨벙거리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겁다. 나도 장화 한 켤레 사야겠네.


2. 출근

곧 출근을 앞두고 있다. 공식적인 휴직은 진작에 종료되어 연차를 소진하게 되었다. 어차피 남은 연차 전부를 유상 보전받을 수 없는 회사라 이래저래 연차를 소진하는 게 더 이득이긴 했지만, 연차를 소진하기 위해 몇 명의 상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야 했던지. 인사팀에 사용 가능 여부를 되묻고 또 되묻고, 정말 이런 사소한 부분부터 종종 큰 일들까지 피고용자가 하나하나 다 신경 써서 챙겨야 한다는 게, 이 시대의 직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답답할 때가 있다. 이럴 거면 프리랜서 하지 뭐 하러 직장에 소속되어 있나.


복직이 결정되고 부서가 이전되고 업무가 분장됐다. 이 모든 단계 중 어느 것 하나 수월하지 않아 이게 지금 이 직장의 문제인지 혹은 다른 직장도 유사한지 알고 싶어 졌다.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아 오랜만에 블라인드 앱을 깔아볼까 고민했지만, 문제는 나의 현 직장은 블라인드 따위를 써보지도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의 작은 집단일 게 분명해 얻을만한 정보가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고 앱 다운로드를 멈췄다.


막상 복직의 문을 열고 나면 생각 외로 수월한 것도 부딪혀보니 역시 엉망인 것도 있겠지. 워킹맘 그 자체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마음이 복잡하다.


3. 봄 눈

봄이 올 듯하더니 요 근래 며칠 동안 지난 눈이 펑펑 내렸다. 아기는 덕분에 올 겨울 눈 구경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날이 궂으면 궂은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나가서 산책을 하는데, 눈이 내린 날은 눈 한 움큼을 쥐어 아기에게 만져보라 내어주기도 했다. 다만, 우리 아기, 그러니까 먹는 것 외의 낯선 촉감은 만져볼 의지조차 없는 우리 아기에게는 그 하얗고 차가운 덩어리는 그저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뿐.


어느 해인가 3월에도 눈이 내렸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부디 봄은 봄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각자의 계절답게 한 해가 지나갔으면. 우리 아기가 밟고 걷고 뛰는 첫 번째 계절다운 계절이 되어주기를.


4. 점심 약속 있으세요?

아기가 돌봄샘에게 적응하고 지난 연말부터 올 연초까지 부지런히 친구들을 만났다. 20분 거리의 쇼핑몰과 백화점은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종종 왕복 2시간이 걸리는 종로까지 나가기도 했다. 그곳에는 친구도 있고 다른 이들의 삶도 있어서 운전을 하고 현실을 벗어났다가 다시 육아의 현장으로 돌아오는 그 적막한 시간들이 좋았다.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은 운동도 하고 미용실도 다녔다. 그렇게 선생님이 오시는 3시간을 빠짐없이 계획해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래도 하루가 양분되어 아침의 힘듦이 사라진 채 다시 오후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곤 했다.


아기가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24시간 내내 아기를 관찰하고 탐구한 지난 일 년이 지나가고, 이제 아기의 하루 일과는 내가 아닌 남편, 그러니까 아기와 아빠 단 둘만의 오붓한 추억이 될 예정. 조금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나는 떠난다! 잘 부탁한다 집과 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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