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추웠던 어느 날, 이사를 했다. 이사 업체 견적을 받으면서 지난 2년간의 신혼살림을 꾸려보니 5톤 트럭이 채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하면서 산 가전이라고는 냉장고 하나 그리고 독립할 때 사용했던 작은 TV 뿐이었고, 가구라고는 넓은 식탁 하나와 작은 소파 하나 그리고 시스템 옷장이 짐의 전부였다. 풀옵션에서 시작했던 참 단순하고 쉬웠던 신혼. 아마 모두의 신혼은 이렇게 가벼운 설렘에서 시작하겠지.
풀옵션이라 좋아했던 과거의 큰 기쁨과 여유로움이 다시 돌아와 지갑에 꽂혔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세련된 에어컨과 탐났던 TV를 사고 친정 아빠의 세탁기 선물로 비로소 대형 가전을 모두 구입했던 날. 수백만 원의 카드값이 문자로 쉼 없이 울리고, 주거래 은행도 아닌 살면서 처음 본 은행원이 살면서 처음 봤을 내가 준비해 간 몇 가지 서류로 나를 평가해 N억을 덜컥 대출해주었다. 혼자였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이 번거로운 일들. 은행 대출이 다 끝나기 전에 부디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덧없이 빌게 되었던 날. 어른이 된 기분이 이런 걸까.
고작 5년 전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에게 신용카드 한 장 발급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여전히 기억한다. 그 때로부터 바뀐 거라곤 5년간 꾸준히 다녔던 회사에서 발급해준 재직증명서와 남편이 된 남자 친구 한 명뿐.
이사를 위한 소비와 행정 업무를 마치고 이사 가는 집에 미리 들렀다. 아이가 살던 집이라 천장의 야광별부터 바닥의 낙서 자국까지, 곳곳에 화려한 흔적이 많았다. 이삿날 시간이 여의치 않아 먼저 도배를 하고, 저녁 늦게 짐을 옮기고, 이튿날 거주 청소를 하기로 했다. 이사 당일에 하면 이사 청소지만 그다음 날 하면 거주 청소로 분류되어 입주 청소 가격의 1.2배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 예약했다. 그래도 번듯하고 가지런한 삶을 위한 이사였으니 이 정도의 추가 금액은 기꺼이 낼 수 있었다.
아침 6시 반, 청소 용품을 든 3인조 청소 전문가가 예상보다 이르게 집으로 들이닥쳤고, 짐 더미에서 겨우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그 길로 나가 뜨끈한 설렁탕을 사 먹었다. 1박 2일에 걸친 입주, 그로부터 3주에 걸쳐 가전과 가구가 들어오고 마침내 이사가 끝났다.
얼마 전 몇 달만인 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고요한 주말을 보냈다. 이사 갈 집을 알아보지 않아도 되고, 가전이나 가구를 고르지 않아도 되는, 그저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면 되는 주말.
식탁에 앉아 연남동에서 사 온 차와 빵을 먹으며 이 동네는 커피 한 잔 마실 곳이 없다며 푸념했다. 다음번엔 주변에 맛있는 빵집이 있는 곳으로 이사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2년 후 다시 이사를 가게 될까? 그때는 어느 동네로 가면 좋을까? 이왕이면 역세권에 아파트 단지가 좀 더 컸으면 좋겠는데 라며 속 편한 수다를 떨었다.
이사의 끝에는 다음 이사가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다음 이사까지 앞으로 2년. 그때까지 잘 먹고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