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없는 것들과 마주했을 때 (4)

외계는 새로운 ‘식민지’인가

by 가오나시

〈디스트릭트 9〉(District 9, 2009, 닐 블롬캠프) 샬토 코플리 주연

〈맨 인 블랙〉(Men in Black, 1997, 배리 소넨펠드) 윌 스미스, 토미 리 존스 주연

〈놉〉(Nope, 2022, 조던 필) 다니엘 컬루야, 케케 팔머 주연

〈E.T〉(E.T. the Extra-Terrestrial, 1982, 스티븐 스필버그) 헨리 토마스, 드루 배리모어 주연

〈에일리언〉(Alien, 1979, 리들리 스콧) 시고니 위버 주연


거대한 미확인 비행체가 도시 불빛과 사막·바다를 집어삼키며 하늘을 찢는다. 뉴스 속보와 흔들리는 휴대폰 영상이 폭주하고, 사람들이 거리로 튀어나와 하늘을 노려본다. 군 헬기·전투기가 날아오르고, 항공모함 미사일이 장전되며 대통령 성명이 터진다. 검문소가 도시를 틀어막고 과학자들이 미해독 신호에 필사적이다. 외계 생명체가 드러나면 카메라가 직격: 방호복 인재들이 격리실로 포위하거나, 연기 속 거대 그림자가 솟구친다. 공항 폐쇄, 대피소로 시민들이 달려간다.


SF 영화에서 외계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화면에는 대개 군대, 격리 구역, 연구소, 기업, 정부 조직이 먼저 등장한다. 이것은 연출의 관습이 아니라 반복되는 서사의 패턴이다.


우리는 왜 미지의 존재를 상상할 때마다, 이해보다 경계와 통제를 먼저 설계하는가?


1. 발견과 명명 — 타자를 규정하는 권력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16세기 초에 이르러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에서 '신세계(New World)'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미 수천 년간 다양한 문명이 자리 잡고 있던 세계가, 외부인에 의해 새롭게 정의된 것이다. 원주민을 '미개인(primitive)', '야만인(savage)', '문명화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 자체가 곧 지배와 피지배의 질서를 구축하는 권력의 행사였다.


영화〈디스트릭트 9〉(2009)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불시착해 '디스트릭트 9'이라는 통제 구역에 격리된 외계인들과 이들을 관리하는 MNU 소속 공무원 비커스의 이야기를 다룬 SF 영화다. 여기에서 불시착으로 졸지에 난민이 된 외계인은 '프론(prawn)'이라 불린다. 남아프리카 지역의 해충에서 따온 이 멸칭은 존재의 가치를 축소하고, 그렇게 축소된 존재는 마음대로 다뤄도 된다는 논리를 정당화한다. 고도의 기술을 가졌으나 인간의 탄압으로 무기력해진 이들은 고양이 사료를 먹으며, 무법지대 속에서 강제 이주 위기에 처한 난민의 모습처럼 쓰레기더미와 판잣집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다.


과거 ‘신세계’라는 명명이 세계의 경계를 재확정했듯, ‘프론’이라는 이름 역시 종(種) 간의 관계를 철저히 수직화한다. 멸칭을 부여함으로써 폭력은 ‘합리적 조치’로, 타자는 ‘관리 대상’으로 변환된다. 결국 ‘디스트릭트 9’과 ‘프론’이라는 이름 붙이는 행위는, 그 공간과 그 안의 존재를 국가·기관의 관리 아래 편입시키는 식민적 제스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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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격리와 보호 — 타자를 지배하는 명분

북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현대의 난민 수용소는 모두 ‘보호’와 ‘관리’의 언어로 정당화되어 왔다. 그러나 보호구역은 이동을 제한했고, 수용소는 철저한 분리를 전제로 했다. 보호는 종종 통제의 다른 이름이었다.


〈디스트릭트 9〉에서 외계인은 도시 외곽의 수용 구역으로 강제 이주된다. 외계인 난민들을 인간과 물리적으로 차단시킴으로써 공간적 격리의 단계로 나아간다. 감독 닐 블롬캠프가 아파르트헤이트의 종말과 그로 인한 사회적 붕괴를 현장에서 목격하며 자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불편함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가 주는 불쾌감은 낯선 환상이 아니라, 어두운 역사의 재연이기에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반면 외계인들을 비밀리에 관리하는 조직의 이야기를 그린 SF 코미디 액션 영화〈맨 인 블랙〉(1997)은 동일한 통제 구조를 유쾌한 코미디로 포장한다. 지구에 거주하는 외계인들은 이민국(MIB)에 의해 철저히 등록·관리·감시되며, 인간 사회 속에서 은밀한 규칙 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특히 외계인 목격자의 기억을 지우는 ‘뉴럴라이저’는 웃음의 소재로 소비되지만, 그 이면은 섬뜩하다. 인간조차도 외계인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로 머무는 것이 이 은밀한 통제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유머가 오히려 위험한 이유는, 이 기괴한 통제 구조가 웃음 속에서 자연스러운 질서로 정상화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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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치와 환산 — 타자를 계산하는 구조

아프리카 식민지의 광물 채굴,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 농장, 그리고 산업혁명기의 가혹한 공장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식민주의의 본질은 그 땅의 모든 것을 '착취 가능한 자원'으로 재정의하는 데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처참하게 도구화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노동력과 생명이었다. 살아 있는 존재가 생산성의 지표로 환산되는 순간, 고통과 존엄은 배제된다.


흉악한 외계 생물과 인간의 혈투를 그린 호러 SF 영화〈에일리언〉(1979)에서 '웨이랜드-유타니' 기업이 보여주는 행태는 이러한 역사적 약탈 구조의 SF적 변주다. 기업은 외계 생명체를 군사적·산업적 자원으로 보며, 이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 승무원을 기꺼이 먹이로 내던진다. 에일리언이 아무리 흉폭하고 위험해도 반드시 무기화하여 무력의 독점을 노리는 자본의 논리, 그 끝에 무엇이 남는지 이 영화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결국 외계 생명은 오직 수탈해야 할 천연자원이고, 인간은 그 수탈을 위해 소비되는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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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시와 소비 — 타자를 관찰하는 방식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유럽 열강에서는 아프리카·아시아 식민지 출신 사람들을 전시하는 '인간 동물원(human zoos)'이 실제로 운영되었다. 남아프리카 코이코이족 사라 바르트만은 1810년 런던·파리에서 '호텐톳 비너스'로 전시된 뒤 사망 후에도 신체가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도 식민지 원주민들이 전시되었으며, 타자는 학문적 이해가 아닌 구경거리·소비 대상으로 전락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SF 가족 영화 〈E.T〉(1982)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소년 엘리엇의 우정을 그린다. 이 영화에서 외계인은 위협이 아닌 연약하고 귀여운 존재로 나온다. 타자가 무해하고 귀엽게 비춰질수록, 그는 오히려 가볍게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치부된다. E.T. 는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보호 대상인 동시에, 끊임없이 연구되어야 할 '희귀 표본'에 불과하다. 정부와 과학자들이 그를 백색의 실험 공간으로 둘러싸는 장면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과 이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한 끗 차이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위협적이지 않은 타자일수록 더 쉽게 관찰과 소비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조던 필 감독의 SF 공포 미스터리 영화 〈놉〉(2022)은 할리우드 외곽 목장의 남매가 어느 날 하늘에 나타난 미스터리한 존재와 맞서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UFO로 위장한 외계 생명체를 앞선 영화들처럼 국가가 통제하거나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전형적인 SF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찍혀야 할 대상(스펙터클, Spectacle)’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파국을 부르는지 집중하며, 현대 사회의 '봐야 한다'는 강박을 경고한다.


등장인물들은 미지의 존재에 대해 경외심이나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누가 먼저 선명한 영상을 찍어 유통할 것인가에 몰두한다. 영화는 이 스펙터클에 대한 탐욕이 결국 재앙을 부른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비춘다. 여기서 기록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시각적인 소유의 방식이며, 시선은 현대 사회가 타자에게 행사하는 가장 은밀하고도 강력한 통제다. 이제 인류는 타자를 직접 점령하지 않는다. 대신 기록하고, 공유하고, 유통함으로써 그들을 소유한다. 식민의 문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각 매체라는 다른 영역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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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도 식민지가 될 수 있을까

외계와의 조우를 다룬 서사는 인류가 타자를 마주할 때 반복해 온 통제의 문법을 우주로 확장한 상상력이다. 미지의 존재는 이해의 대상이기보다 관리와 활용의 대상으로 먼저 다뤄진다.


왜 우리는 새로운 존재를 마주할 때마다 공존보다 통제 체계를 먼저 설계하는가.

역사 속에서 타자를 규정하고, 격리하고, 수탈해 온 관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스트릭트 9〉의 격리, 〈에일리언〉의 자원화, 〈놉〉의 시각적 점유는 그 반복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 질문은 더 이상 영화 속 상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우주 개발을 둘러싼 담론 역시 ‘개척’, ‘채굴’, ‘정착’, ‘소유’라는 언어로 구성된다. 다른 행성을 거점화하고 자원을 확보하며, 먼저 도달한 주체가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구상은 이미 현실의 계획이 되었다. 우주는 과학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전략과 시장의 영역이 되고 있다.


우주는 탐사의 공간인가, 아니면 선점의 대상인가.


우주로 향하는 인류의 발걸음이 오래된 인간역사의 반복일지, 아니면 통제 너머의 새로운 관계를 향한 시도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외계와의 조우가 던지는 질문은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타자를 대하는 방식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