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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 Sep 23. 2019

조산기, 임신 생활의 최대 고비

너를 잃을뻔 하고 나서야 나는 너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임신 16주부터 18주까지를 "안정기"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엔 초기 유산 확률이 매우 낮고, 임산부들의 컨디션도 좋아져 이러저러한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도, 회사 생활에서도 나름 평범하게 살아온 나였기에, 나는 내 임신 생활에도 이 "안정기"가 찾아올 줄 알고 내심 기대 중이었다. 뱃속 아가가 태어나기 전 하고 싶었던 일들, 가고 싶었던 곳들은 마구마구 가주리라! 나는 이런 포부를 안고 무려 임신 24주에 "제주도 여행"을 가겠다는 야심찬 포부까지 세웠다.


그렇게 하루 하루 즐겁게 임신 안정기를 맞이하던 어느날, 새벽에 화장실을 갔는데 마치 생리 끝무렵처럼 갈색혈이 비췄다. 잠깐 동안 응급실을 가야하나?도 생각해 보았지만, 임신 기간에 갈색혈은 자궁내 고인피가 나온다고 했지?라며 스스로를 안심 시키고 평소와 같이 잠을 자고 출근을 했다. 


여느때처럼 동생과 함께 출근하던 그 날, 나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배가 많이 뭉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가? 왜이렇게 배가 단단하게 뭉치지? 싶었지만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이 또한 "임신 증상 중 하나"라 하여 아무 생각 없이 사무실에 도착해 일을 하던 찰나.. 갑자기 머리가 핑~하고 돌면서 어질어질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지럼증과 울렁거림이라.. 이 또한 임신 증상 중 하나겠지 하고 넘기려 했는데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조퇴를 신청하고 정기검진을 받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산부인과 검진결과 나는, 지체 없이 바로 "입원"이 결정됐다. 진단명은 자궁경부 벌어짐. 보통 임신 중기, 그러니까 나랑 비슷한 임신 19주 산모들은 아기가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게 자궁 경부가 단단히 닫혀 있어야 하고, 그 길이 또한 4센치 정도 이상으로 길어야 한다. 그래야만 뱃속의 아가가 임신 40주를 무사히 채우고 세상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 그런데 입원 당시 나의 자궁 경부는 마름모꼴로 벌어져있을 뿐 아니라, 벌어진 부분을 제외한 아랫 부분이 1.7센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임신 무식자"였던 나는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그저 몸에 이상이 있어 입원을 해야 하는구나? 싶었던 정도. 그래서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나 싶어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나의 이 증상이 바로 "유산기" 또는 "조산기"에 해당했던 것. 나는 당시 임신 19주에 불과했기에.. "조산기"보다는 "유산기"에 가깝다는 진단을 받았다. 뱃속 태아가 세상에 일찍 태어났을 때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을 경우에는 유산기, 그리고 조금이라도 살 확률이 늘어나는 시기를 조산기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유산기가 심각하다는 판정을 받고, 처음 1주 동안은 로컬 병원, 그리고 상태가 더욱 나빠져 다음 1주 동안은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됐다. 입원하는 동안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건 바로 우리 럭키에 대한 미안함. 사실 나는 그동안의 임신 생활이 그닥 즐겁거나 유쾌하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끝마치고 바로 찾아와준 아기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신혼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조금만 늦게 찾아와주지.. 라는 생각은 물론, 울렁거리는 입덧으로 괴로워할 때면 너는 나에게 찾아와서 왜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니 하는 하소연까지.. 나는 준비가 1도 안되고, 책임감 없는 엄마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여서 그런지.. 우리 럭키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상황에 맞닥들이자 갑자기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가가 우리를 찾아와 준 순간에 기쁨의 눈물이 아닌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것, 한참 조심해야 할 임신 초기에 이미 예약해 놓은 여행이라며 겁없이 부산 여행을 다녀온 것, 매일 출퇴근길에 다음 버스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빠른 걸음으로 버스를 잡아탄 것, 그리고 좁은 나의 뱃속에서 나에게 콩, 콩 거리고 인사할 때 바로바로 반응하지 못해준 것.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조산기로 입원해서 누워있던 2주간,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했던 나를 가장 무겁게 짓누른 건 바로 이 죄책감이었다. 어느 날 선물같이 나에게 찾아와준 너를, 그저 오만하고 건방진 나는 너를 언제든지 맞이할 수 있는 선물로 생각해서 소중히 다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태어나 처음으로 갈기갈기 찢길 것 같이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분만실(분만은 하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분만할 수 있는 고위험 산모들의 입원실)이 떠나가라 펑펑 울었다. 그리고 몇 날 몇 일 나를 간호해주던, 매일 씩씩한 모습으로 나를 키워줬던 우리 친정엄마도.. 나를 따라 펑펑 울었다.


그렇게 지옥같던 2주를 보내고, 나는 다행히 자궁경부무력증은 아니다라는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직 경부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지만 지난번보다 조금은 괜찮아졌고, 경부가 벌어졌다기보다는 피가 고인 상태로 보였기 때문에 병원에 누워 있는 것보다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단을 받은 것. 그렇게 나는 2주 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간혹 조금씩 비추는 갈색 피와 선홍색 피를 마주할 때 마다 남편을 붙잡고 오열했고, 부리나케 병원에 전화하거나 병원으로 달려갔다 왔다. 이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산 지 한 달 정도가 흘렀을까? 나는 바스스 부서진 멘탈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던 우리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떳떳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입원생활, 조산기에 대한 두려움, 눕눕생활로 가득찼던 2개월을 버텨낸 현재, 나는 임신 28주가 되어서야 조산기가 많이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창문으로만 구경할 수 있었던 다채로운 하늘을, 집안에서만 겨우 느낄 수 있었던 바깥 세상의 공기를 직접 아주 짧은 20~30분 정도는 직접 맞이해도 좋다는 의사 소견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19주부터 지금까지 겨우 겨우 지켜낸 우리 럭키는 이제는 내 뱃가죽을 발로 뻥뻥 차고 손으로 영차영차 밀어내면서 1.1키로의 건강한 아기로 자라고 있다. 


내 생애 정말 너무도 고통스럽게 길었던 지난 2개월은..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옥같이 느껴졌지만, 되돌아 보니 나에게 정말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 뱃속에 살아 숨쉬는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그리고 나를 둘러싼 남편, 가족들, 친구들이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애써주는지, 너와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하는 것들을 말이다.


"럭키야, 엄마가 그동안 너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미안해. 너의 건강을 생각하기 보다 나의 즐거움을 우선한 것도 미안해. 엄마가 너에게 미안한 만큼, 임신 초기에 너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던 만큼, 네가 태어나고 자라는 그 순간에는 누구보다 넘치는 사랑을 줄게. 어느날 내게 선물같이 찾아와 줘서 고마워. 앞으로 12주, 우리 더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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