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에서 아벳의 의미
-캐릭터: 아벳 나디르(Abed Nadir) in <커뮤니티(Community>(시즌1~5: NBC, 시즌6: Yahoo Screen)
* <커뮤니티> 일부 회차 스토리의 요약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몇 달째 <커뮤니티>의 세계에 빠져 있다. 웃음을 이끌어내는 독보적인 방식과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 그리고 이상하고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에 한 번 적응하고 나면,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표면상으로는 코미디인 <커뮤니티>는, 종종 가볍지 않은 주제를 웃음으로 기발하게 풀어낸다. 베개와 담요 왕국을 건설해 학교에서 내전을 벌이는 트로이와 아벳의 모습은 세계의 내전이나 영토 분쟁을 떠오르게 하고(시즌3 14화), 과학 실험 과제용 고구마를 으깬 범인을 찾는 과정은 배심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재판 그대로를 보여준다(시즌3 17화). 스터디 그룹 맴버들 자신이 풍자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피어스의 캐릭터로 레이시즘racism과 호모포비아homophobia가 일상인 특권층 백인 남성 자체를, 브리타의 캐릭터로 ‘대의’를 주장하며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다가 오히려 편견에 휩싸인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위선적인 인간상을 비웃는다. 허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물론 현실로 넘어오면 문제가 되겠지만, <커뮤니티> 속 피어스와 브리타 각각은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개개인이다. 스터디 그룹 맴버들의 폭력성은 ‘이야기 속에서는’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가끔 말할 수 없이 이기적이고, 별난 행동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을 위해 움직인다.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과연 무엇이 '정상'인지 고민하게 된다. ‘게이’라고 밝히는 것은 본인에게 있어 2/7정도의 커밍아웃밖엔 되지 않는다는 크랙인가, 그를 이용해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는 편견에 휩싸인 정치인들인가(시즌6 4화). 시 소속인 학교를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팔아넘겨 민영화하려는 이사들인가, 그걸 막으려고 학교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며 설치는 스터디 그룹 맴버들인가(시즌5 12화). <커뮤니티>는 ‘정상’이나 ‘보통’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들을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극단적인 은유로 이야기에 담는다.
'아벳'(대니 푸디)은 소위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는 특징들을 갖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친구가 부탁했다는 이유로 스물여섯 시간을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시즌1 4화). 허나 그 ‘비정상성’으로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이들을 돌아보게 한다. ‘Weirdo'로 불리는 아벳이 아이러니하게도 심리테스트에서 혼자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시즌3 5화) 에피소드를 보면 관객은 혼란스러워지면서도 어쩐지 납득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묻게 된다, 무엇이 ‘정상’인가?
아벳은 또한 이야기의 바탕에서 <커뮤니티>를 특별한 ‘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대부분 픽션 드라마나 영화는 현실로 가정한 허구다. <커뮤니티>도 그렇다. 학교에서 페인트볼 게임 혹은 푸드파이트를 하거나 치킨핑거에 모두가 지배당하기도 하지만 <커뮤니티>의 장르에 ‘판타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화면은 판타지스러워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변한 사람들이나(시즌2 11화) 어린이용 만화 캐릭터가 된 사람들(시즌5 11화)은 어디까지나 인물의 상상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말했듯, 아벳의 존재는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는 대화할 때 영화나 드라마를 인용하는 ‘필름너드 film nerd’다. 허나 그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보통’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캐릭터다. 다른 이들이 별 노력 없이 하는-감정에 대한 이해를 직관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등 만들어진 이야기의 스토리라인을 통해 현실의 인간을 이해한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남들의 반응을 따라 하고, 거울 앞에서 웃는 표정과 찡그린 표정을 연습한다. 종종 그린데일을 TV 쇼 공간으로 설정하고 스터디 그룹 맴버들을 등장인물로 여긴다. ‘스토리가 요구’ 한다는 이유로 다른 인물이 된 것처럼 행동하기도(시즌2 23, 24화 등), 타인의 행동에 해설을 넣기도 한다. 이야기 속에서 그러한 요소들은 아벳의 ‘별난’ 상상이다. 허나 ‘진짜’ 현실에서 <커뮤니티>는 허구의 쇼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좀 빠져 있을 게요,” 라면서 스터디 그룹을 피해 숨어 다닐 때(시즌1 6화) 허구의 아벳은 커뮤니티 컬리지 어디엔가 있을 테지만, 사실 이야기 상 설정에 불과하다.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아벳은 실제로 에피소드에서 ‘빠져 있는’ 것이다. 관객이 보면 뜬금없는(그러나 이야기 속 인물들은 이야기 속의 과거를 경험했으므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회상에 집착하기도 하는데, 설정은 아벳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회상이지만 진짜로 시간여행에 성공하는 것 같은 연출을 해서 묘한 느낌을 낳는다(시즌6 10화).
위 회상 에피소드처럼 아벳의 특별한 머릿속과 상상 자체가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경우도 많다. 모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변하는 ‘아벳의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시즌2 11화)나 제프가 던진 주사위 숫자에 따라 각기 다른 타임라인이 생기는 에피소드(시즌3 4화), ‘상상의 방’ 에피소드는 아벳의 ‘이상한’ 상태를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주변 사람과 관객이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단초를 제공한다(시즌3 16화). <커뮤니티>는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별다른 복잡한 구성 없이도 ‘아벳’이라는 수단만을 통해 차원과 장르를 넘나든다.
아벳은 사람들을 ‘보통’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대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친구들의 과거를 연결 짓거나 위치 추적기를 심는 등(시즌4 12화) 때로 주변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 때문에 오히려 인간을 꿰뚫어보기도 한다. 아벳이 스터디 그룹 맴버들을 관찰하고 예측해 만든 영화 줄거리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나(시즌 1 9화), ‘ABED’ 에피소드(시즌 2 5화) 같은 것들을 보면 그가 단순히 너드인지, 천재인지 신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영화 연출을 공부하는 아벳은 카메라를 들고 다른 사람들을 찍는다. 그의 카메라가 <커뮤니티> 자체의 카메라가 되기도 한다. 단순히 연출 방법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벳의 카메라가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스트레인저 댄 픽션>(2006)처럼 굳이 같은 ‘타임라인’이 아니더라도 커뮤니티 컬리지에 다니는 인물들이 진짜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고, <개미>(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나온 문명 게임의 작은 인간들처럼 조물주에게 말을 건다면? 아벳이 카메라를 보고 관객과 눈을 맞추거나 ‘쇼’ 언급을 할 때면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흐려진다. 이야기 밖에 숨어 자신과 화면을 분리시킨 상태에서 허구에 집중하던 관객은 자신의 존재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그 말을 하는 것은 아벳이 아니라 그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라는 점이 우리를 안도하게 하지만, 경계를 깨고 화면 밖에 말을 거는 인물의 존재는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허나 <커뮤니티>이고, 아벳이기 때문에 불편함은 예외적으로 적다. 그의 행동은 ‘TV 쇼’ 라는 본인의 상상에 몰입해 있다는 캐릭터 설정으로 설명된다. <레토>(2018)의 ‘안경 쓴 남자’처럼 직접적으로 화면 밖을 향해 말을 걸며 작품과 관객을 잇는 전지적 관찰자와는 다르다. 아벳의 존재는 묘하다. ‘만들어진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거나 알고 있)는 ‘만들어진 인물’이다. 관객도 현실과 허구를 헷갈리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
쇼의 마무리에 다다르면, 아벳은 <커뮤니티>를 본 관객의 반응을 다시 <커뮤니티>에 가져오기도 한다. ‘시즌 2는 황금기’라고 말하기도, 관객이 궁금해 할 법한 것들(피어스의 홀로그램은 실재하는가?, 아벳의 애인은 어디로 갔는가?)을 정리해 쏟아내기도 한다(시즌6 1화). 설정 상 아벳의 대사는 예상과 상상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관객은 그에게서 ‘쇼를 만든 이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아벳은 제작진이 이야기의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자신들과 관객의 존재를 스토리에 언급할 수 있는 창구다. 단순히 경계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를 오가며 상호작용을 이끌어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시즌6의 12, 13화에서 <커뮤니티>는 굳이 아벳을 통하지 않고도 쇼와 현실을 대놓고 넘나든다. 12화의 마지막에는 작가가 나와 에피소드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13화의 마지막에는 <커뮤니티> 보드게임 광고가 나오며 이 모든 것이 보드게임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나 했더니, 그 광고의 대본이 등장하며 보드게임을 하는 가족이 스스로가 허구임을 깨닫게 되고 침울해하며 끝난다. 아벳 식 상상을 쇼 자체로 확장해 ‘커뮤니티답고도’ ‘아벳스러운’ 결말을 낸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좀 넓혀보자. 시즌 3까지의 연출에 마블코믹스 작품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2014),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2018) 등을 연출한 조 루소, 안소니 루소 감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본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아벳 나디르 역할의 대니 푸디가 관리요원(?)으로, 총장 크랙 펠튼 역할의 짐 래쉬가 MIT 대학 총장으로 까메오 출연을 한다는 점도 말이다. 일단 반갑다.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이 이어진다. 크랙의 말투나 아벳의 표정은 <커뮤니티>에서 보여준 그대로다.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것은 만들어진 대본을 보고 해석한 배우들이다. 아벳을 비롯한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이 이야기는 현실로 가정한 허구다. 다시 말해, 허구지만 현실로 가정한 이야기다. 아벳을 연기하는 순간 그는 배우 대니 푸디인 동시에 커뮤니티의 아벳이다. 캐릭터를 이벤트처럼 작품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아벳 식 상상에 익숙해진 까닭일까, 터무니없게도 이들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동안에도 자신들의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결국 나는 코미디 드라마 캐릭터에 대한 글을 쓰다 터무니없이 철학적인 질문까지 도달하고 만다. “실존이란 무엇일까?”
아벳은 <커뮤니티> 에피소드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인물을 관찰하고 해석하며, 상황을 평가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해설자다.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가벼운 웃음 속에 철학적 고민을 숨겨놓는, <커뮤니티>라는 쇼 자체의 상징이자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허구 속 타인들도 그의 생각을 모르지만, 현실의 관객도 아벳이 진짜 무엇인지 영원히 모를 것이다. ‘천재적 상상력을 지닌 필름너드’ 정도로 단순화하면 머리는 덜 아프겠지만 글쎄. 그게 다일까. 제프는 말한다. “Abed, you are a god.(아벳, 넌 신이야.)”(시즌1 17화)